‘인도·태평양’은 아직까지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지역 개념은 아니다. 정확한 공간적 정의는 없지만, 한국을 비롯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한 대부분의 국가가 미국의 서부 해안에서 동아프리카까지로 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이 갖는 경제적 가치를 발표한 정부나 연구기관의 자료를 보면, 전 세계 GDP 및 인구의 60% 이상, 물동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인도·태평양은 가장 많은 무역협정이 체결되고 협상이 이뤄지는 지역이기도 하다. 세계 3대 메가 FTA 또는 지역협의체가 중첩돼 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가 그것이다. 이들은 각각 세계 GDP의 12.8%(10조8천억 달러), 30.8%(26조1천억 달러), 40.9%(34조6천억 달러)를 차지한다.
인도·태평양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구가하는 아시아 신흥국들이 있어 세계경제의 성장동력이 되면서도 미중 패권 충돌의 한가운데 위치한 데 따른 위험 요소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향후 세계경제의 향방을 가늠하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 약 6%, 아세안 약 5% 성장률 전망돼…
통화긴축, 지정학적 불안정은 성장 제약 요인
보다 구체적으로 인도·태평양은 세계 여타 지역에 비해 인구가 비교적 젊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코로나19가 강타한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시현해 오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강국인 인도가 현재 세계 5위 경제국인데 수년 내 세계 4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으며, 아세안 10개국은 인도를 이은 세계 5위 경제블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33개 메가시티 중 20개가 인도·태평양 지역에 있다.
한편 인도·태평양에도 세계경제 성장 둔화의 여파가 미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고금리와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민간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있지만 정부의 통화정책 시행 여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세계 다른 지역보다는 심각성이 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및 식품 가격 상승으로 물가상승률은 2022년 3.7%보다 소폭 증가한 4.0%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국제 원자재 가격은 고점을 지난 것으로 평가되나, 생산 및 무역 중단, 지정학적 긴장, 계속되는 대러시아 제재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월 발표한 아시아개발은행(ADB) 경제전망에 따르면, 인도는 2020년 -6.6% 성장 이후 2021년 8.7%, 2022년 7.0%에 이어 2023년에도 7.2% 성장해 몰디브, 피지 같은 소규모 도서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 정부의 투자환경 개선 노력과 더불어 인도시장이 중국시장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2021 회계연도에 인도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836억 달러의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유입됐고 2022 회계연도에도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마이너스 성장의 기저효과가 사라지고 높은 인플레이션과 주요국의 통화긴축, 지정학적 불안정 등이 하방 요인으로 작용해, 실제 경제성장률은 6%에 다소 미치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인도는 국내 원유 수요량의 8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2023년에도 원유와 석탄 수입이 인도 전체 무역수지의 적자폭을 키울 가능성이 남아 있다. 세계적인 곡물 및 원자재 공급 불안정이 지속되면 인도 중앙은행이 물가안정목표치인 4(±2)% 안에서 물가를 관리하기 위해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것이고 이로 인해 민간 소비 및 투자가 경직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아세안은 올해 하반기부터 코로나19 관련 이동제한 조치 완화와 민간소비 증가 그리고 자원부국들의 원자재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경기가 회복세를 보였다. 국경폐쇄 조치가 완화되고 관광활동이 회복되면서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은 성장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2023년 글로벌경제의 다양한 위험요인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경제의 수출과 생산에 모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5.0%, 4.7%, 6.3%로 전년보다 하향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 등 선진국의 과감한 통화긴축으로 신흥국에서 자본유출이 일어나면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같이 단기자본 유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직접적인 물가상승 압력을 받고 있고, 라오스와 같이 국가부채 규모가 큰 경우 대규모 외부자금 조달로 인한 위험도가 높아진 상황이다. 다만 베트남의 경우 세금 감면과 같은 다양한 재정정책을 추진해 경기 회복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요인을 종합할 때 2023년 아세안경제는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 재발하지 않는다면 5%에 가까운 성장률을 시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 수혜 입기 위한 국가별 경쟁이
비즈니스 환경 개선으로 이어질 것
2023년 인도·태평양의 통상환경에는 여러 변화가 예상된다. 대표적인 것이 무역협정의 증가다. 지난 10년간 자유무역협정을 외면했던 인도는 올해 호주, 아랍에미리트(UAE)와 FTA를 체결한 데 이어 영국, EU, 캐나다 등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올 1월 세계 최대 메가 FTA인 RCEP을 발효시킨 아세안은 중국, 호주, 뉴질랜드와의 FTA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IPEF에는 2023년 11월 출범을 목표로 인도와 동남아 7개국을 포함해 총 14개국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IPEF는 기존의 FTA와 달리 관세 인하와 같은 전통적인 시장접근 방식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디지털 무역을 비롯해 지역 국가들의 관심이 높고 실질적인 성과가 예상되는 분야에서 협상이 진전된다면 이 지역의 역동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역내 기업의 90%가 넘는 중소기업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다.
또한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가시화되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의 수혜를 입기 위한 국가별 경쟁은 비즈니스 환경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인도는 2020년 생산연계 인센티브 제도(PLI)를 도입해 반도체, 전기전자 등 투자기업을 중심으로 100억 달러 규모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아세안 역시 외국인투자자를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 도입, 경제특구 설치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세계 인구 1위의 인도(14억 명)와 6억7천만 명의 아세안이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지속 달성할 때, 우리의 미래가 이들과의 협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