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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회가 지속적으로 창출되는 열린 사회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장 2023년 01월호


요즘 우리는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40여 년 만의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진단이 등장하는가 하면, 이보다 더 자극적인 퍼펙트 스톰이라는 용어도 회자된다. 여기에 더해 우리를 둘러싼 대외 환경도 그 어느 때보다 긴장도가 높아진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세대 및 계층 간 갈등 역시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의 심각성을 토로하는 것만으로는 작금의 어려운 국면을 헤쳐나갈 수 없다. 우리는 조금 냉정하고 차분하게 현재의 경제상황을 파악하고 바람직한 정책방향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생산성 높이려면 규제합리화와 노동시장 개혁 통해
민간 스스로 경쟁력 강화할 수 있어야


현재 세계경제의 가장 큰 이슈는 인플레이션과 이에 대응한 고금리 정책이다.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은 코로나 충격으로부터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추가적인 대규모 부양정책이 지속된 것이 그 발단이다. 수요는 급속도로 팽창하는데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으로 공급 측면이 기대만큼 받쳐주지 못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한 것이다. 이에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 금융시장은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됐고, 실물경제 역시 상당히 위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그 심각성은 다소 약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경기회복과 함께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이에 대응한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이 진행 중이다. 이와 같은 최근의 경제상황은 공급 측면의 생산성을 개선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요 측면만 자극해서는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국가가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기엔 우리 경제가 이미 고도화됐다. 이제는 민간 스스로 자신들의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대신 정부는 국민 개개인의 창의력이 충분히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우선 경제적·사회적 장애요인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하지 못하는 상황을 줄여야 한다. 아울러 개인의 개발된 능력이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기득권의 벽에 가로막혀 구현되지 못하는 경우는 더욱 적극적으로 타파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열린 사회를 만들어나갈 때 우리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규제합리화와 노동시장 개혁을 이뤄낼 필요가 있다. 규제개혁이 경제·사회의 발전속도를 따라가는 데 있어 정부 주도 개발정책의 레거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버’, ‘타다’ 사태와 같이 기술환경 변화에 대한 탄력적 적응을 제약하는 규제, 대형 소매업 영업규제와 같이 시장진입을 제한하는 규제 등이 그러한 예에 해당할 것이다. 이와 같은 규제들은 민간 스스로의 창의력이 발현될 기회를 제약할 뿐 아니라 급속히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공간을 제한하고 있다. 

최근에는 규제의 비용과 편익을 과학적인 방식으로 평가하는 대신, 정치적 진영논리를 앞세우는 규제들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러한 비합리적 규제들은 노동시장에서 특히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같은 경직적 근무시간제는 다양한 형태의 근로를 제약한다는 점에서 고용주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기회도 제한하고 있다. 또한 경직적 임금체계인 호봉제는 생산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는 젊은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며, 고령 근로자의 은퇴연령을 연장하는 데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아울러 경직적 고용은 아직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좋은 직장’을 찾지 못한 근로자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제2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이는 ‘공정한 기회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노동시장이 경직적일수록 첫 직장이 평생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럴수록 대학 입시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은 사교육비 부담을 증가시켜 가계의 윤택한 소비생활을 제약하는 동시에 경제력의 대물림이라는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생산적 교육에 더 많은 복지재원 투입해
자신의 능력 개발할 기회 폭넓게 줘야 


결국 모든 국민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제공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전반이 보다 유연해지고 적극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능력을 발휘할 기회뿐 아니라 스스로 능력을 개발할 기회 또한 보다 폭넓게 제공돼야 한다. 우선 형편이 어려운 유아 및 학생들의 생산적 교육에 복지정책 재원의 보다 많은 부분이 투입될 필요가 있다.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충만함에도 재원 부족으로 사업기회를 잃는 일이 없도록 신생 기업에 대한 과감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이처럼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공정하고 폭넓게 제공될 때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질 것이다.

한편 공정한 기회의 제공은 사회적 이동성을 제고해 역동적인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결코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장애인, 고령층과 같이 원천적으로 기회를 활용하기 어렵거나 스스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 요인에 의해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층을 두텁게 배려해 함께 성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사회를 통합하고 체제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함께 잘 사는 사회’는 모두의 이상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성장을 우선할 것이냐, 분배 혹은 복지를 우선할 것이냐의 오래된 논쟁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에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효율과 분배를 동시에 가로막고 있는 부분들을 우선적으로 찾아 개선하는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시스템을 구축함과 동시에 성장유인을 저해하지 않는 복지정책을 우선적으로 확대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함께 잘 사는 사회’에 성큼 다가선 우리 사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를 둘러싼 외부환경은 매우 불안하다. 우리는 위기극복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와중에도 위기 이후 어떤 모습의 경제·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실제 우리가 외환위기 때 다시는 유사한 위기를 겪지 않기 위해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견뎌낸 결과, 우리의 경제체질이 극단적인 외부 충격에도 버텨낼 정도로 강화됐다. 덕분에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라던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우리 경제가 비교적 잘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 위기극복 과정에서는 어떤 변화를 추구해야 할까? 이번 위기가 생산성 향상을 동반하지 않은 수요 자극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줬다는 점에서, 향후에는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변화의 핵심 의제가 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국민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제공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규제합리화, 노동시장 유연화, 교육개혁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들은 특정 이해집단의 저항을 초래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난 반세기 동안 위기를 겪을 때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우리 사회를 업그레이드했던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우리는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데에 모두의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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