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에 매달리던 전 세계가 일상적 경제활동으로 복귀하면서 만난 것은 커다란 위기를 극복한 후 가져야 하는 희망이 아니라 훨씬 복잡한 어려움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기후위기, 인구, 저성장, 에너지, 양극화, 질병과 재난 등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풀어야 할 문제가 많았고 헤쳐나가야 할 길은 어지러웠다. 그러나 2023년을 시작하는 상황은 어려움을 넘어 고약해 보인다.
하나의 큰 시장으로 움직이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세계는 멈추고 마치 판게아가 갈라져 이동해 대양을 사이에 두고 각 대륙으로 나눠진 것과 같이 ‘경제판게아’가 갈라지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유불리는 모호하고 셈법은 복잡해졌다. 게다가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으로 에너지와 식량 문제가 덮치고 인플레이션, 환율, 이자율 등 금융까지 요동치고 있다. 때가 어려워지니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많은 문제가 앞다퉈 한꺼번에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야말로 ‘모든 문제’ 시대다.
획기적인 고기술·고생산성 산업구조로의 전환은
국가경쟁력 향상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
이렇게 복잡한 문제들이 뒤엉켜 만들어낸 복합위기를 앞에 두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1960년대 이후 석유파동, 냉전 붕괴,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저성장 뉴노멀 등 지금까지 여러 위기를 겪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성장을 이어온 우리는 알고 있다. 위기는 위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위기는 기회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본은 결국 탄탄한 국가경쟁력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국가경쟁력=인구×생산성’, 즉 인구가 만들어내는 생산성을 국가경쟁력으로 볼 수 있다.
감소하는 인구는 우리나라에 정해진 미래다. 이미 2021년 우리나라 총인구는 처음으로 감소해 2040년에 5천만 명 이하로 줄고 2070년에는 3,800만 명으로 현재의 73%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전체 인구에서 15~64세 경제활동인구 비중이 2020년 72%(약 3,700만 명)에서 2040년에 57%(약 2,800만 명), 2070년 46%(약 1,700만 명)가 되고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까지 늘어나는 구조적 난관이 예고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함수의 다른 변수인 ‘생산성’이다. 지금과 같은 수준의 국가경쟁력을 가지려면 생산성을 최소한 2040년에 1.8배, 2070년에 2.2배로 높여야 한다. 획기적인 고기술·고생산성 산업구조로의 전환이 절체절명의 필수과제다.
생산성은 구조적이다. 우리나라의 생산성이 크게 증가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산업개발 시대에 만들어진 노동 투입 중심의 구조를 큰 사회적 희생을 대가로 치르면서 외부의 충격을 통해 바꿨다. 생산성 변화는 기존 산업의 혁신과 고생산성 신산업의 성장으로 이뤄졌다. 특히 기존 산업 중 제조업에서 기술 수준이 높은 부문에서 생산성 증가가 뚜렷했다.
신산업으로는 ICT산업의 성장이 생산성 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실질 GDP의 ICT 비중이 2000년 1분기 4.3%에서 2018년 4분기 11.7%로 확대됐고, 특히 GDP 대비 ICT 수출은 2000년 약 3.2% 수준에서 2018년 약 18.9%에 달했다. 기존 산업과 신산업 모두 고기술 산업이 생산성 증대와 경제발전에 주는 영향을 증명했다. 이후 2010년대 중반 정체 내지 감소세를 보이던 제조업 생산성이 최근 스마트제조 정책으로 증가세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산업은 200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저부가가치 구조에 고착돼 제조업과 비교하면 상대적 생산성이 실질적인 하향세에 있다.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기존 산업 분야의 생산성 혁신을 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중장기적 생산성의 획기적 증대는 과거 ICT산업의 역할에서 볼 수 있듯 새로운 첨단기술을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의 진입과 성장을 끊임없이 촉진하는 일에 달려 있다. 이러한 방향을 만드는 첫걸음은 혁신인재들이 혁신 기술기업을 만들어 새로운 산업으로 키워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벤처붐은 20년에 한 번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혁신의 활력을 불어넣도록 벤처붐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
혁신 첨단기술을 활용한 고생산성 신산업은 산업적 측면뿐 아니라 인구감소, 즉 경제활동인구 감소 대응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특히 지금의 20~30대가 2040년 경제활동의 중심축이 되는데, 이들에게 일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그 결과가 치명적일 것이다. 고생산성 신산업을 일으키는 일은 새로운 교육을 받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갈 다음 세대에게 사회적 성장을 이루며 역량을 키울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동시에 충분하지 않은 혁신인재를 확보할 방법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벤처기업을 통해 세계로 나아가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해외에서 우리나라로 벤처사업을 하러 오도록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보통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는 인재들은 역량 이 훌륭하고 성취 욕구가 크다. 먼저 우리나라로 유학 온 해외 우수인재들이 공부를 마치고 바로 귀국하기보다 우리나라에서 벤처사업을 하며 투자를 받아 자국으로 진출할 수 있게 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 혁신의 길을 터야 도태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
이에 더해 고생산성 산업으로의 전환은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던 인구군을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편입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여성이 해당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일하는 시간의 양에 큰 영향을 받는다. 고생산성 산업으로 체질을 개선해 적은 시간의 투입으로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다. 특히 여성 일자리 비중이 높은 서비스산업을 변화하는 첨단기술산업과 결합해 고질적인 저부가가치에서 전향적으로 벗어나도록 함으로써 생산성 높은 좋은 일자리로 전환해 가야 한다.
서비스산업의 체질 개선은 고령인구군이 생산가능인구의 역할을 하게도 만들 것이다. 초고령화를 앞둔 우리나라로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다행히 청년층·여성층·고령층 중 많은 인구가 고등교육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드문 강점이다. 저출산·고령화에 의한 인구문제에 대응하는 일은 더 이상 사회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이다.
자유로운 연구개발 지원과 전략적 국가임무를 구분해 다루는
국가혁신시스템 필요
고생산성 혁신기업과 신산업을 키워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가장 큰 밑거름은 과학기술 혁신이다. 눈앞에서 경제판게아는 갈라지고 기후변화를 늦추려는 국제사회의 규범은 강력해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사회 질서의 판이 바뀌고 있는 상황을 반영해 국가전략성을 포함한 과학기술 혁신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혁신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 시스템에서는 자유로운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보편적 혁신의 자유와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에 대한 전략적 국가임무를 이중화해 다뤄야 한다.
혁신성장을 넘어 전략성장을 꾀해야 한다. 지난 60여 년간 응축한 위기극복과 기회로의 전환 역량을 발판 삼아 과학기술 혁신을 넘어 국가혁신을 이뤄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이 글로벌 복합위기의 파고를 넘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