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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 위한 굳건한 토대 마련을
이태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2023년 01월호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 1998년 김대중 정부 들어서 ‘생산적 복지’라는 국정기조가 천명된 이후 역대 정부 대부분이 수용한 중요한 정책기조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에서 이 용어가 좀 더 분명히 드러난 이후 이명박 정부의 ‘능동적 복지’에서도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은 기본이 됐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와 복지가 선순환하는 창조경제’를 언급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와 복지, 고용의 선순환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물론 정부마다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에 담은 정책의지와 비중, 무엇보다 구체적인 정책고리들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의 정치적 수사(rhetoric)로 끝난 경우도 없지 않다.

복지·경제의 선순환에 대한 이론적 논쟁 있지만 
역사적으로 복지 확대가 성장과 동조한 사례 많아


한국 사회에서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이 등장한 근본적인 배경에는,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고도 경제성장 시대에 일관되게 관철돼 온 ‘선성장 후분배’ 논리에서 벗어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복지에 정책적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동원한 ‘복지정당성’의 논리가 있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복지도 확대하게 되면 이들이 서로 교호(交互)작용을 해 결국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이 논리는 정치권 차원에서 외면하기엔 너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학술적 차원에서는 이 논리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특히 복지가 경제를 성장시키고, 다시 경제의 성장이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지는 이론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논쟁의 소재임이 틀림없다. 

복지의 확대는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조세부담으로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며, 시장의 착란요인을 증대해 국가경제적으로 재정여력을 없애버리기 때문에 결국 경제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통적 주류경제학의 논리다. 다른 한편에서는 복지의 확대는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이고, 유효수요의 확대정책이며, 민간일자리 축소를 대신해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로서 유효할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과 실업에 대한 자동안정화 장치의 기능도 있다고 주장한다. ‘제3의 길’ 등장 이후 2000년대에는 사회적 투자라는 말로 함축해 복지의 사회적·경제적 의미를 나타내기도 했다. 

실재 세계에서는 워낙 시공간의 스펙트럼이 커 한 가지로 결론이 나지 않는다. 복지국가가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기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일쇼크까지의 전 세계적인 황금성장기, 19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부터 2007~2008년 금융위기까지, 그로부터 현재까지. 이렇게 시기가 크게 네 단계로 나뉘는데 각 시기마다 특징이 다를 수밖에 없다. 

피터 린더트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2004년 출간한 저서 『공공의 성장(Growing Public)』에서, 18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실로 100년이 넘는 장대한 기간 동안 주요 선진국의 사회지출이 지속적으로 확대돼 온 추이와 경제와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복지국가 정책이 1인당 GDP에 악영향을 주지 않은 국가의 경우 조세와 복지급여의 설계가 성장과 조화를 이루도록 조세 민주주의와 보편주의가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은행이나 OECD는 불평등의 축소, 빈곤층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성장을 이끈다고 결론 내리며 선진국에 재정확장 정책을 권유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유럽대학연구소의 안톤 헤머릭 정치사회학 교수와 로빈 위그노 노엘 박사후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공동저서 『회복력 있는 EU 복지국가(Resilient Welfare State in the European Union)』에서 과거 금융위기 당시 과감한 재정정책을 쓰지 못해 불평등이 양산됐다는 자성이 코로나19 위기 때 서구 국가들이 유례없는 재정투여를 감행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역사적으로 그리고 선진국들의 경험에서 복지의 확대가 성장과 동조한 경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은 매우 중요한 정책기조임이 분명하다. 지난해 5월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도 ‘생산적 맞춤복지’를 제시하면서 “복지지출은 인적 투자로서 사회적 생산성을 높이고, 기회의 사다리를 놓는” 방식이 돼야 하고,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복지재원을 확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갈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어 7월에 열린 ‘2022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주요 분야별 재정투자 방향에서 ‘복지투자 혁신 및 지출 효율화를 통한 복지-성장 선순환 전략’을 언명하고, 복지투자 혁신, 성장 친화적 복지전략, 취약계층 맞춤형 지원, 새로운 복지수요 적극 대응, 지출구조 개혁 등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생산성·혁신역량 높이는 방향으로 전 계층에 복지투자,
사회통합 통해 갈등비용 줄여 성장동력 만들어낼 것


사회서비스 부문을 주목하고 돌봄과 교육, 건강 부문에서 국민의 필요와 욕구에 걸맞은 양의 서비스가 양질로 공급될 수 있는 기반을 제대로 만들기만 해도 새로운 일자리와 그로 인한 유효수요 창출, GDP 증대 등 상당한 효과가 유발될 것임은 자명하다. 다만 이 일자리들이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가 되지 않아야 매우 훌륭한 선순환 전략이 될 수 있다.

또한 여성의 양육과 부양이라는 돌봄부담을 줄여 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적·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고용률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10~20%p 높일 수 있는 엄청난 경제성장의 기반이 된다. 초고령화 추이 속에서 고령층이 지금과 같은 저소득에 머물지 않고 노인 친화적 직종에서 적정 임금을 받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선순환의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생산성을 제고하고 혁신역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 계층에게 ‘복지투자’를 하는 것은 경제성장의 성과를 전 국민이 골고루 향유하는 사회통합의 길임과 동시에 갈등비용을 줄여 성장동력을 낳는 길이기도 하다. 

린더트 교수는 빈곤층에 대한 지원이 도덕적 해이와 노동력 감소로 이어져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논리에 의거해 빈곤층 지원을 경계하는 ‘로빈 후드의 역설(paradox of Robin Hood)’을 언급하며 그러한 역설이 빈곤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국가에선 오히려 재정투여가 적고 그렇지 않은 선진국에선 더 많은 ‘기이한’ 현상을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에서 강조하는, ‘약자에게 두텁게 지원’하는 것이 선순환의 주요한 고리 중 하나로 작동할 것을 기대해 본다. 새 정부 5년 동안 복지와 경제가 선순환하기 위한 굳건한 토대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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