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는 여전히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종식되지 않고 변종 바이러스가 계속 생겨나고 있어 위드 코로나가 불가피한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를 상황이다.
세계적인 식량 및 에너지 위기는 물론 글로벌 공급망 개선 지연 등에 대한 우려도 불식되지 않고 있다. 각국의 강력한 통화긴축에도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유럽경제는 위기로 내몰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긴축발작(선진국의 긴축으로 신흥국의 통화·주가 약세가 발생하는 현상) 등 신흥국 금융위기 가능성도 큰데, 중국경제마저 경착륙하게 되면 글로벌 경제위기의 재현은 불가피해진다. 특히 미중 패권경쟁 심화와 새로운 군비경쟁으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30년 전쟁 후 양국 모두 패망의 길을 걸은 상황과 같은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에 미국과 중국이 빠지면, 세계는 경제뿐 아니라 안전보장 측면에서도 회복 불가능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이처럼 세계경제는 아직도 코로나19 팬데믹, 전쟁, 인플레이션, 미중 패권경쟁 등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올해 세계경제 전체로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선진국과 개도국 중 일부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중첩된 위기 속 방향성 잃어가는 한국경제,
저성장·고물가 함께 나타나는 슬로플레이션 지속될 전망
국내 경제는 중첩된 위기로 방향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대외 여건도 문제지만, 대내적으로도 현실화할 경우 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는 각종 리스크 탓에 비관적인 전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의 올해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이미 1%대 중후반대로 낮아진 상황으로 그나마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분간 산적한 대외 불확실성과 이로 인한 수출의 성장기여도 하락,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에 따른 경제주체들의 심리 악화와 내수 부진 등으로 경기 둔화세가 장기화되는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 상황은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리스크도 매우 큰 상황이다. 국내 건설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중소 금융사 및 중소·벤처 기업을 중심으로 한 자금 조달 환경 역시 녹록지 않다. 특히 가계를 중심으로 한 민생 부문은 3고 현상과 함께 부동산 및 주식 등 자산시장 불안정, 가계부채 부실화, 실질임금 상승세 둔화 등으로 실질소득이 크게 낮아지면서 생활고가 가중되는 이른바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이 지속될 것이다.
당연히 거시경제와 금융시스템 전반의 안정적인 운영과 취약계층에 대한 안전망 강화 등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지속돼야 하겠지만,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한 통화 및 금융 정책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재정정책도 이러한 딜레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이 정도면 다행이라는 안도감으로 위안을 삼아서도 안 되고, 1%대로 떨어질 위기에 놓인 잠재성장률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위기극복을 위한 잠재력과 국가 역량을 모을 수 있는 리더십 발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경제의 위기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를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들의 과도한 위기의식에 따른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위기극복 리더십을 제대로 작동시킴으로써 정부 및 공공 부문의 정책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정부 및 공공 부문과 민간이 원팀이 돼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동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늘 강조하는 것이지만 정부와 공공 부문은 현장 중심의 신속하고 합리적인 정책 의사결정과 실행 및 관리에 철저해야 하고, 민간 부문은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긴요하다.
갈등관리 역시 매우 중대한 과제로, 실패하면 위기극복은커녕 국가 역량 결집조차 불가능해진다. 위기극복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양극화의 확대와 산업재해를 포함해 우리 사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갈등관리 능력이 반드시 발휘돼야 한다.
공공은 현장 중심의 신속하고 합리적인 정책 실행·관리가,
민간은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노력이 긴요
국내 거시경제와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직간접적인 시장개입 등 비전통적인 방법을 포함한 모든 가용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만큼, 범부처 차원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정책 조합(policy mix)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국내 여건의 안정화 기반이 마련되면 위기극복과 성장 잠재력 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시장 기회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별로 보면 ‘놀라운 아시아(amazing Asia)’로 칭송받는 동아시아 지역은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지역으로 부상하면서 급성장하고 있고, 중동 등 주요 산유국들은 막대한 오일머니로 산업화와 도시화 및 탈전통에너지화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들 지역에 대한 상품 및 서비스 수출 기회는 밝아 보인다.
산업과 기술 측면에서도 충분한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각국의 탄소제로 전략, 기업의 ESG 경영 확산은 친환경 에너지와 관련된 산업과 기술, 시장 확대를 촉진할 것이 분명하고, ‘소비자 입장에서 좋고 지구환경에도 좋은 소비(good for me & the planet)’ 트렌드 정착에도 기여해 막대한 시장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지금까지 중시돼 온 것처럼 규제 혁신, 혁신을 통한 주력산업의 세대교체, 노동의 유연성 확보, 인적자본의 고도화 등은 중장기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핵심 과제임과 동시에 단기적으로도 위기극복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이라는 점 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