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해외건설산업에서 중동은 핵심 주력시장이면서 보고(寶庫)와도 같은 존재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해외건설산업은 국가경제 부흥의 단초가 됐고, 1970년대 1차 오일쇼크, 1980년대 2차 오일쇼크의 파고를 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에도 그 몫을 톡톡히 해냈다. 열사의 나라에서 모래바람과 싸워가며 피땀 흘린 우리 해외건설 근로자분들에게 각별한 감사를 드린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IHS마킷에 따르면, 올해 세계 건설시장은 지난해 대비 4% 성장한 13조9,824억 달러로 전망되고 있다. 중동 건설시장 규모는 연간 5천억 달러 내외로 세계시장의 5% 선을 밑돌지만, 우리 기업은 초도 진출 이후 현재까지 실적의 절반 이상을 중동에서 수주했을 정도로 그 의존도가 매우 높다. 최근 시장 다변화가 이뤄져 직전 3년만 놓고 보면 35%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우리 건설사들에게 매력적인 시장임이 분명하다.
사우디, 신도시·철도 등에 1조3천억 달러 투자
이라크·리비아 시장도 기지개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세계경제의 약화 우려에도 석유 소비량이 생산량을 초과한다는 점을 들며 올해에도 국제유가가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부분이 산유국인 중동은 유가에 의해 건설시장 판도가 바뀐다.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고유가 현상으로 산유국들의 재정능력이 건실해졌으며, 이는 프로젝트 발주물량 증가로 이어졌다. 일례로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발주처인 아람코는 2020년 2분기 이익이 66억 달러로 대폭 감소했으나, 이후 수익이 점차 확대되며 지난해 2분기에는 484억 달러로 2020년 2분기 대비 7배 이상 증가했다. 이에 따라 기존 400억 달러의 설비투자(CAPEX; Capital expenditures) 계획을 500억 달러로 상향 발표하는 등 메가 프로젝트 발주를 가늠케 하고 있다. 우리 건설사들이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 플랜트 공사 전방산업군인 엑슨 모빌, 셰브론 등 오일 메이저사들도 2022년 2분기 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3~4배 수준으로 급증해 이 또한 CAPEX 확대로 이어졌다. 여기에다 오랜 기간 정세가 불안정했던 이라크, 리비아 등 일부 국가에서도 그간 추진 중이거나 지연된 프로젝트들을 발주할 것으로 예상돼 ‘중동 붐’이라는 키워드를 급상승시키고 있다.
국가별로 들여다보면, 우선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중심의 경제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비전 2030’을 수립, 2030년까지 5조 리얄(1조3천억 달러)을 투입해 네옴 등 신도시와 교통·관광·산업단지, 태양광·수소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부문에 적극 투자할 예정이다. 이 중 교통 부문은 이동성 향상 목적의 철도 프로젝트 발주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일부 대형사업은 유가 하락에 대비하고 재정운용의 탄력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PPP(Public Private Partnership) 등의 투자사업으로 진행된다.
아랍에미리트(UAE)도 석유 및 가스 관련 사업이 보다 활발히 발주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는 석유 생산능력을 일 500만 배럴로 증산하는 목표시기를 당초 2030년에서 2027년으로 앞당기기 위해 향후 5년간(2023~2027년) 1,500억 달러 규모의 지출계획을 승인했다. 더불어 2050년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태양광, 수소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사업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며, 발전 및 해수담수화 등의 분야는 민자유치 형태의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비석유 부문을 기반으로 하는 두바이의 부동산시장도 당분간 안정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쿠웨이트는 탈석유 국가개발계획인 ‘비전 2035’를 실행 중인바 역내 물류허브로의 도약을 위해 100억 달러 규모의 국가철도망, 공항, 항만 등 교통 인프라사업이 활발히 발주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22년 월드컵 개최국인 카타르는 세계 2위의 LNG 수출국으로, 세계 최대 가스 수출국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세웠다. 오는 2027년까지 북부 가스전 확장 1, 2단계 사업을 추진하면서 연간 7,700만 톤인 LNG 생산량을 1억2,600만 톤으로 증산할 계획이어서 관련 플랜트 설비에 강점이 있는 우리 건설사들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카타르는 가스 설비투자를 지속적으로 증강할 명분이 더 커졌다.
한편 이라크전쟁, 재스민 혁명 이후 내전 장기화로 동면에 들어갔던 이라크, 리비아 시장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라크는 2021년 총선 이후 1년여간 정부 구성이 늦춰지면서 그간 추진되던 각종 대형사업이 줄줄이 지연됐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대통령이 선출되고 실권자인 총리가 지명되면서 정치 안정화가 이뤄져 그간 우리 건설사들이 수주를 목전에 두고 성사되지 않았던 대형사업들이 수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보인다. 내전이 종식됐다고 단정하기 곤란한 리비아는 외교부가 지정한 여행금지국가여서 수주활동이 녹록지 않지만, 우리 건설사들이 수주하고 장기간 시공이 중단됐던 현장과 연계한 신규 수주가 임박하는 등 중동 붐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일부 대형사업은 PPP 등 투자사업으로 진행…
정책금융, 치밀한 고위급 외교 등 전폭적인 지원 절실
이제 밑그림은 준비돼 있다. 여기에 어떻게 아름다운 색을 골라 색칠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사실 중동 건설시장은 상당 부분 정형화돼 있고, 우리 건설사들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덧칠해져 있어 붓의 터치감만 더하면 명화가 탄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중동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시장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한 현지화 정책을 펴고 있어 이를 격파하거나 우회하는 전법을 축적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그간 EPC(설계·조달·시공) 중심의 재정사업 발주 트렌드를 보여줬던 중동시장이 최근 일부 대형사업의 투자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어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의 부단한 정책금융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도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협상능력이 뛰어난 아라비아 상류층과 상인들에게 맞서 고위급 외교를 펼쳐야 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처럼 일대일 맞춤외교 전략도 구사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최근 해외건설산업은 경험이 일천한 중소기업은 물론 IT, 스타트업 기업들과 융복합 형태로 진화하고 있어 이들 기업에 대한 멘토링이 필요하다. 다행히 정부와 해외건설협회 등 지원기구가 발 벗고 나서 전방위적인 고위급 외교를 전개하고 있으며, 범정부 수주지원단 발족과 함께 멘토링 시스템도 가동하고 있다. 여기에 여러 정책금융도 나와 있지만 보다 구체화되고 전문화된 역량 강화를 위한 전폭적인 예산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