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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팹리스가 성장해야 파운드리·후공정 등도 함께 커갈 수 있는 건전한 생태계 만들어져”
김서균 한국팹리스산업협회 사무총장 2023년 05월호

팹리스라면 반도체 제조는 하지 않고 설계만 하는 업체인가?
90%는 맞다. 반도체를 설계하고 판매·유통까지 하는 회사라고 보면 된다. 딱 하나, 공장만 없다. 그런데 팹리스 중에서도 설계자산(IP; Intellectual Property) 기업은 설계만 하고 IP를 판매해 수입을 얻는다. 팹리스에서 대부분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하지만 메모리를 설계하기도 한다. 

국내 팹리스 업계 상황은 어떤가?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는 기술력·생산량 측면에서 메모리는 세계 1위지만 시스템 부문은 삼성 등 대기업을 제외하면 글로벌시장 점유율이 0.8%에 불과하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팹리스는 대부분 인텔, 퀄컴, 엔비디아 등 미국 업체다.

최근 들어 더 어려워진 건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최근 특히 더 어려워졌다. 10여 년 전에 성장세가 시작되려다 정체됐다. 국내 대기업 납품에 의존하다 보니 대기업의 결정에 기업 운명이 많이 좌우되는 데다, 중소 팹리스의 우수한 기술과 인력이 대기업으로 상당수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제 팹리스 기업들도 중국·미국·동남아 진출 등으로 대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이 코로나19로 셧다운됐었고 지금은 미중 반도체 패권경쟁 속에서 우리 제품에 문을 닫아버렸다. 여기에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투자가 얼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정체됐던 성장세가 이제는 하락세로 바뀌었다.

중국 팹리스 업체들의 성장세가 무섭다 들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많은 투자를 하면서 팹리스 기업 수가 3천 개를 넘어섰다. 반면 우리는 150개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의 기술력은 우리보다 떨어지는데, 최근 중국 기업들이 우리 팹리스 회사의 지분 인수나 지분 투자를 공격적으로 하며 기술 확보를 꾀하고 있다.

팹리스 업계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면 좋을까?
팹리스 기업의 체질이 약해진 주요 원인은 국내 대기업 고객에 크게 의존해 상대적으로 글로벌 진출에 소홀하다 보니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대외 변화에 취약해진 데 있다. 협회에서 중점 추진하는 것은 그동안 문화·언어 등의 문제로 진출하기 힘들었던 유럽시장 공략이다.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와 협력해 유럽 진출 전략을 짜고 있다. 그다음으로 팹리스산업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것은 공공 파운드리 설립이다. 

공공 파운드리라면 국가에서 설립하는 건가? 
국가와 민간이 같이 만들자는 것이다. 국가가 건설비 일부를 대고 운영비를 다양한 형태로 지원하는 식이다. 대만 TSMC는 정부 지분율이 50%다. 자국 팹리스 회사 우선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시제품 생산 등을 지원하고 있다. 대만의 글로벌 팹리스시장 점유율이 20%가 넘는데, 이런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시제품 제작은 팹리스 기업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비용이 몇억에서 수백억 원까지 든다. 특히 최근에는 미세공정이 늘어나고 IP 비용이 증가하며 제작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어 중소업체가 감당하기 어렵다. 또 팹리스 기업이 크려면 칩을 빨리 만들어 테스트해 봐야 하는데 그런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 기술력이 뛰어나고 서비스가 좋은 공공 파운드리가 필요한 이유다. 

최근 삼성에서 용인에 대규모 파운드리를 건설하기로 했는데….
민간 파운드리는 해당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해서 팹리스 기업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종합반도체회사(IDM)는 자체 설계하는 시스템반도체 등을 우선시하다 보니 팹리스 기업에 대한 서비스 중심의 접근이 부족하다. 오히려 물량 등을 기준으로 팹리스 업체를 선별한 후 내부 사정에 따라 생산을 장시간 미룬 적도 있다. 팹리스가 설계하면 개별 파운드리에 최적화하는 작업을 디자인하우스가 해줘야 하기 때문에 생산처를 갑자기 바꾸기 어려워 선별 업체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지만, 민간 파운드리이니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삼성 파운드리가 TSMC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려면 정부가 세제 등 혜택을 주는 조건으로 팹리스에 맞춤형 서비스를 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그 외에 팹리스 경쟁력 강화에 국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검증 및 확인(Verification & Validation) 센터 설립이 시급하다. 설계하려는 반도체의 스펙 검증이 설계 단계부터 이뤄져야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시스템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또한 고급인력 양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석박사 과정을 확대하고 교수 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교수들이 창업해 그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어야 스타 교수도 나오고 고급인력도 양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부는 팹리스 분야 대학 연구개발(R&D)을 확대하고 R&D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창업하는 교수에게 실적에 걸맞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협회의 ‘2030년까지 팹리스 기업 1천 개’ 목표, 달성 가능할까?
사실 매우 상징적인 숫자다. 팹리스 기업 수가 최소 500개는 돼야 시스템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 우수한 인력, 어려운 여건 속에서 반도체산업을 일군 경험 등 시스템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한 기반은 충분하다. 이에 더해 V&V 센터와 공공 파운드리를 통해 지원한다면 팹리스 기업 1천 개 육성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 수 증가는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시스템반도체 환경에서 많은 설계가 이뤄져야만 틈새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또 많은 기업이 서로 IP를 공유함으로써 점점 규모 있는 시스템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글로벌 반도체산업의 중심이 시스템반도체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 70%인 점유율이 90%까지 상승할 것으로 본다. 팹리스는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핵심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아직도 대기업 중심, 메모리나 소재·부품·장비 중심이다. 팹리스 지원책이 나와도 특정 첨단 분야에 집중돼 많은 팹리스 기업이 소외된다. 일시적 지원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대만은 TSMC를 활용해 자국 팹리스 성장 중심의 전략을 펼쳤고, 팹리스 기업 성장과 함께 후공정 기업도 자라나 매우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했다. 팹리스가 커야 파운드리도, 소재·부품·장비도, 후공정도 다 성장할 수 있는 건전한 생태계가 된다. 우리나라도 국내 팹리스 중심의 생태계 구축 전략이 수립되고, 정부 지원에 힘입어 팹리스산업이 낮은 단계부터 기반을 다져 최첨단 부문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드린다. 

 
강지은 『나라경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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