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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경제안보의 시대, 기존의 통상 문제 해결방식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 2023년 06월호

미국 주도의 ‘경제안보’ 아닌 아시아 지역 차원의 ‘경제안보’ 위한 신통상질서 구축할 수 있도록 IPEF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코로나19 이후 세계무역은 2021년 성장세로 급반등하며 2022년 상반기까지 성장률에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2022년 세계무역 성장률은 당초 전망됐던 3.5%보다 낮은 2.7%를 기록했는데, 이는 2022년 하반기 이후 세계경제의 위축을 초래한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른바 ‘3고(高)’에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 

WTO에 따르면 2023년 세계무역은 1.7%의 성장이 예측된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무역이 약 10년간 평균 2.6%의 성장률을 보인 것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며, 사실상 25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GDP 성장률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하는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이로 인한 글로벌 원자재 가격의 상승,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GVC)의 경색과 단절 등이 직간접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반도체 등 첨단기술의 이전을 막기 위한 수출규제 조치의 확산 및 자국 시장과 공급망 진입의 규제 조치로서 주요국이 도입하고 있는 친환경 기준의 강화 등도 국제통상 환경을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GVC 참여율, 2011년 이후 52% 수준으로 정체…
역내 국가 간 지역 공급망은 더욱 공고화 


지난 30여 년간 글로벌 통상 환경은 자유무역주의 기반의 다자무역체제와 국제 분업체계를 기반으로 한 GVC의 확산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 추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 GVC 참여율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확대 추세가 둔화하기 시작하면서 2011년 이후 52% 수준에서 계속 정체돼 있는 상황이다. 또한 세계 GVC 무역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세계 중간재 교역의 비중 변화를 보더라도 2012년 이후 지속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GVC를 구성하고 있는 각 지역 공급망(RVC)을 중심으로 무역이 재편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특히 2017년 기준으로 북미, 유럽, 아시아 지역의 3대 RVC 간 연계가 과거에 비해 더욱 약화돼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자유무역주의와 세계화의 확산에 크게 기여해 온 다자무역체제는 WTO 다자무역협상의 부진 속에서 새로운 통상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는 다자무역규범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분쟁해결 기능의 약화로 규범력과 실효성마저도 상실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 간 체결되는 지역무역협정을 통해 디지털 무역, 보조금, 환경, 노동 등에 대한 신무역규범이 수립되고 있으며 역내 국가 간 RVC를 더욱 공고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글로벌 성장 정체와 함께 확산하는 보호무역주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무역의 성장 정체 및 주요 교역국들의 자국 산업·시장 보호를 위한 통상정책은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를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급증한 수입규제 조치는 대중국 무역적자 문제 해소와 자국 제조업 고용 창출을 목적으로 도입됐으나 중국뿐 아니라 동맹국·우방국과의 통상관계도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통상정책의 기조 변화는 상호주의(reciprocity)에 입각한 양자 협상을 추구하고 있어 다자무역체제의 약화를 가져왔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더욱 효과적인 중국 견제를 위해 변함없는 자국 우선주의 기조하에 국내 제조업의 산업경쟁력 강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주요 정책수단으로서 산업보조금  지원 정책, 공급망 재편 및 리쇼어링(reshoring), 기술이전 차단을 위한 수출통제 및 외국인투자 규제 강화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전 정부에 비해 동맹국·우방국과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으나 동맹국을 고려하지 않는 차별주의적인 통상 조치도 시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반도체 등 첨단기술에 대한 강화된 수출통제 조치는 자국 기업뿐 아니라 외국 기업에도 역외(extraterritorial) 적용되면서 전반적으로 글로벌 교역과 공급망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며 국제통상 환경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현재 심화되고 있는 미중 패권 경쟁이 일정 부분 해소되지 않는 이상 국제통상 환경은 한동안 주요국의 ‘경제안보’ 논리가 우선시되며 보호무역주의 기조의 통상정책이 확산하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자국의 공급망 안정성 강화를 위해 첨단기술 및 전략적 산업에 대한 대규모 보조금 지원이 주요국 간 상호 경쟁적으로 추진되면서, 상대적인 우위 확보를 위한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국은 자국의 미래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산업보조금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자국의 국내산업 보호와 역량 강화를 위해 무역·투자 상대국에 대한 차별적인 통상 조치를 무분별하게 도입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오늘날의 국제통상 환경은 ‘패러다임 변화’를 겪고 있다. 그동안 다자무역체제의 틀 내에서 국가 간 통상 문제를 해결하던 기존의 방식은 사실상 폐기되고 상호주의적으로 시장개방과 무역자유화를 추구하던 ‘FTA의 시대’도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다자무역체제는 서로 다른 경제체제를 지닌 일부 회원국들이 불공정한 무역행위를 통해 경쟁적 혜택을 누리고 있음에도 이를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한 점에 대해 적실성(relevance)과 정당성(legitimacy)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듯하다. 이를 방치한 결과 현 WTO 체제의 규범력이 크게 약화됐으며, 기존의 다자무역체제를 대체하기 위한 지역 차원의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의 주도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는 지역 또는 소다자적(minilateral) 형태의 새로운 국제통상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IPEF는 비록 시장개방을 약속하지 않는, 규범력이 약화된 형태지만 기존의 FTA가 담아내지 못했던 공급망 재편과 디지털경제, 탈탄소화, 반부패 및 거버넌스 강화 등 오늘날의 통상 환경을 반영하는 새로운 통상질서의 형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미국 주도의 ‘경제안보’가 아닌 아시아 지역 차원의 ‘경제안보’를 위한 신통상질서를 구축할 수 있도록 IPEF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그뿐 아니라 국제통상 환경의 전반적인 변화 기조에 발맞춰 전략적 산업 분야에 대한 경쟁력 강화 전략을 세우고 적극적인 통상외교 협상을 통해 우리의 경제안보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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