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이후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액(전년 동월 대비)이 줄곧 감소세를 나타내더니, 급기야 올해 3월에는 그 감소폭이 33.1%에 이르렀다. 지난해 3월 156억 달러에 이르렀던 월간 대중 수출이 3분의 2 규모인 105억 달러로 줄어든 것이다. 이와 같은 부진은 4월에도 계속 이어져 대중 수출증가율은 연간 누적 기준 –29%를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 대중 수출 실적이 워낙 좋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와 반도체 등 우리나라 주력 상품들의 수출 단가 하락이 겹쳐 증폭된 측면이 크지만, 중량 기준으로도 –12.7%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대중 수출이 큰 어려움에 처한 것은 분명하다. 참고로 올 4월까지 한국의 전체 수출은 중량 기준으로 0.8% 증가, 금액 기준으로는 13.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많은 언론이 대중 수출 부진의 심각성과 함께 우리 수출의 대중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특정 국가 비중이 크다 보니 해당국 경기나 교역 환경 변화의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뜻이다.
교역 편중의 두 얼굴
우리나라 수출이 상위 5개국에 집중된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특히 대중 의존도의 경우, 홍콩 등 중화권까지 포함하면 이미 오래전부터 3분의 1 수준을 훌쩍 넘었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지난 5년 새 상당 부분 완화됐고, 올해는 드디어 20% 아래로 내려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표 1〉 참고). 즉 대중 수출이 부진하다는 점에 주목하면 ‘큰 문제’로 보이지만, 수출 의존도가 낮아졌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개선 중’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무역 의존도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를 보여주는 개념인 만큼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배경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인접국들과 교역이 활발한 것은 국제무역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사례로 ‘자연적 무역 상대국(natural trading partner)’이라는 용어까지 존재한다. 미국도 줄곧 멕시코 및 캐나다와의 수출입이 가장 활발했으며, 태평양 건너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컸던 시기가 오히려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2017년 21.6%를 기록했던 미국의 대중 수입 의존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견제가 본격화되고 코로나19, 바이든 정부의 공급망 안정화 정책 등이 연이어 영향을 미치면서 계속 낮아져 올해는 4월 누적 기준 13.3%까지 하락했다. 그 결과 같은 기간 26.2%까지 내려갔던 멕시코 및 캐나다로부터의 수입 비중은 29.3%로 회복됐다(<표 2> 참고).
이와 같이 한국과 미국 모두 동일하게 인접국 의존도가 높고, 대중 교역 비중이 작아지고 있음에도 유독 우리나라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는 것은 양국 대중 교역구조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대중 수입은 최종 소비재, 수출은 자본재 비중이 큰 반면 한국은 수출과 수입 모두 중간재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최종 소비재는 중국에서 다른 나라로의 수입선 대체가 손쉽지만, 중간재는 상호 긴밀한 공급망을 바탕으로 교역이 이뤄져 해당 기업들의 글로벌 생산지 전략을 함께 수정해야 하는 만큼 훨씬 신중할 수밖에 없다.
경제안보와 공급망 안정성을 중시하는 최근의 분위기 역시 중간재 교역 비중이 큰 국가에 불리하다. 전략 물품의 특정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으로 중국에 집중돼 있던 글로벌 생산지가 이동하는 상황에서 자본재 수입선을 바꾸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거래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중간재 공급선은 물류비 등의 부담이 적은 지역으로 변경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입장을 바꿔서, 한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국이나 베트남의 선택도 우리에게 득보다 실이 더 클 전망이다. 미국과 EU가 비용 부담 증가를 수용하면서까지 공급망 다변화를 밀어붙이듯이 중국 역시 한국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나 업종에 대해서는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처럼 자본재 수출 비중이 큰 국가는 최근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자연스레 수출시장 다변화로 이어지지만, 중간재 위주 수출국에는 기존 수출시장이 줄어드는 효과만 확실할 뿐 대체 시장 확보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수출시장 다변화 후보국의 지정학 전략 살펴보고
접근방식 탄력적으로 달리해야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 노력을 집중해야 할까? 자유무역이 무엇보다 우선되던 시기에는 수요와 공급 측면을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생산하기만 하면 시장의 조정 기능에 따라 자연스레 거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지정학적 고려를 앞세워 자국우선주의와 공급망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는 만큼 비가격 요인에 대한 고려가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모든 상품이나 서비스가 그런 변화에 직면한 것은 아니다. 미중 간 전략 경쟁에서 한발 비켜나 있는 일반 범용 제품들은 여전히 가격과 품질 위주로 새로운 시장 발굴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상품과 서비스 및 해당 품목들과 공급망이 겹치는 업종들이 계속 늘어날 전망인 만큼 이와 관련된 검토 범위 역시 계속 넓혀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수출시장 다변화 후보 국가들의 지정학 전략을 살펴봐야 한다. 해당 국가가 미중 사이에서 특정 진영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는지, 아니면 양국 모두와 거래를 계속 이어나가며 중립노선을 고수하는지 등에 따라 우리의 접근 방식도 탄력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다음으로, 공급망 협력이 가능한 국가를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경쟁력 있는 입지에 ‘단일 공장’을 세워 전 세계로 공급하는 사업방식은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워진 만큼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생산해 공급하는 방식이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중국의 빈틈(post-China)’을 차지하기를 원하는 동남아, 동유럽, 중남미의 여러 나라들과 생산 협력을 전제로 한 수출시장 확대를 검토해 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이런 변화에 부응해 과거에는 원자재 수출에 머물렀던 다수의 자원부국이 1차 상품의 고부가가치화 기회를 더욱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신중하게 고려해 볼 수 있다. 특히 원자재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낮추기 위해 ESG,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선진국 주도의 새로운 진입 장벽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을 한국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중 간 경쟁 심화는 우리에게 위험과 기회를 함께 가져왔다. 지난 30년간 익숙해진 WTO 기반의 자유무역체계가 흔들리고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한다는 점은 큰 위험이지만, 외부 요인에 의해 중국과의 거리가 조금이나마 벌어졌다는 점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도록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달려나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