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달성한 한국경제가 발전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최근 관세청이 발표한 무역수지(인도 기준) 추이를 보면 14개월째 적자를 기록하고 수출은 7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상품수지(통관 기준)도 지난해 7월 이후 9월을 제외하고는 계속 적자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오는 4분기에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장담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최근의 무역수지 적자는 코로나19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고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하면서 나타난 단기적 현상으로, 이러한 상황이 정상화되면서 우리의 무역수지도 과거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서비스수지는 선진국이 비교우위 가져야 하는 부문…
무역 중심 경제발전 전략의 전환 고민할 필요
하지만 이 같은 추이는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경제 성장동력의 전환을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 경제구조가 개발도상국형에서 선진국형으로 변화하면서 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발전 전략의 전환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 제품의 국제경쟁력 약화 현상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이제는 수출주도형에서 벗어나 서비스수지 흑자 기조 강화를 통한 선진국형 경제구조로 전환돼야 함을 의미한다.
한 국가의 외환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국제수지표상에서 경상수지라고 볼 수 있다. 경상수지는 상품수지, 서비스수지, 본원소득수지 및 이전소득수지로 구성된다.
무역수지와 상품수지는 최근에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주요 특징을 보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수입액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최근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서 수입이 감소하는 데 비해 수출감소폭은 더욱 커서 상품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수입은 1년 전보다 2.6% 감소했지만 수출은 12.6% 감소했다.
수출현황은 한국경제의 앞날이 밝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장동력 산업인 반도체가 지난 3월 전년 동월 대비 33.8% 하락하고, 화학제품이 17.3%, 석유제품 및 철강제품은 각각 16.6%, 10.8% 감소했다. 국가별로는 같은 기간 중국에 대한 수출이 33.4% 감소하고, 동남아시아 및 일본에 대한 수출도 감소했다. 연도별로 보면 상품수지 흑자폭이 축소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5년 1,203억 달러 흑자를 본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1년과 2022년에 각각 757억 달러, 151억 달러 흑자에 그쳤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서비스수지에서 지속적인 적자를 경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운송, 여행 등 서비스수지는 선진국이 비교우위를 가져야 하는 부문으로 한국의 경제발전 단계에서는 흑자를 거둬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여행수지는 만성적인 적자다. 연도별로 볼 때 1991년 이후 2022년까지 두 해(1998년, 1999년)를 제외하고 모두 적자였다. 최근 경상수지 흑자에 도움이 되는 것은 본원소득수지(급료 및 임금, 투자소득)다. 1991년 이후 지속적으로 적자였다가 2011년 흑자로 전환한 이후 2022년까지 유지돼 경상수지 흑자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 외에 이전소득수지는 1991~1995년을 제외하고 2022년까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국제수지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의 경상수지 악화와 상품수지의 적자 지속은 글로벌 공급망 붕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에 기인하는 단기적 현상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따라서 상품수지에 의존하는 전략에서 더 나아가 서비스수지 흑자를 병행하는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최근 수출이 감소하고 있는 반도체, 석유제품, 석유화학 등 산업이 과거와 같은 국제경쟁력을 갖고 흑자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중국의 기술 수준이 향상되면서 중국과 한국 제품의 국제경쟁력 격차가 많이 좁혀졌다. 더욱이 한국이 중국으로 중간재를 수출하던 공급망 구조였으나 이제 중국 중간재 수준이 향상돼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중국의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축소될 것이다. 특히 최근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주도권 확보 경쟁을 보면 한국의 대중 무역 의존도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를 복합적으로 볼 때 상품수지가 과거와 같은 흑자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둘째, 한국 수준의 경제발전 단계에 이른 국가는 서비스수지 흑자를 통한 국제수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서비스수지에서 만성적인 적자를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295억 달러의 서비스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이 중 여행수지에서 만성적으로 적자를 경험하고 있는데, 일본이 흑자를 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2023년 1분기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은 35만3,611명으로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의 22%에 그쳤다는 것을 봐도 한국 관광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진국일수록 서비스 부문, 특히 여행수지에서 흑자를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각 국가의 서비스산업 정책, 특히 규제완화 정책과 연관이 있다.
서비스산업 규제완화와 이를 통한 투자유치로
서비스수지, 본원소득수지 등에서 흑자 견인해야
셋째, 경상수지 흑자에 공헌하는 또 다른 수지는 본원소득수지다. 비거주자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급료와 임금 그리고 투자에 대한 소득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외투자나 내국인의 해외진출로 벌어들이는 소득이다. 다시 말하면 다국적기업 형태로 외국에 진출해서 벌어오는 소득이 국내 소득보다 훨씬 많다는 것인데, 이는 선진국형 경제구조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국내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과감히 해외로 진출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선진국형 경제에 접어든 한국은 언제까지 상품이나 무역수지의 흑자로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하는 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 이보다는 서비스수지나 본원소득수지와 같은 부문에서 흑자를 견인하는 정책을 과감히 시행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이 서비스 부문의 규제완화와 이를 통한 투자유치다. 이를 통해 최근 한국이 급격히 경쟁력을 키운 문화, 예술, 교육, 의료 등의 분야에서 수익을 확대할 수 있고, 강한 규제로 경쟁력이 높지 않은 금융산업이나 지식창출의 산업화 등에 대한 국제경쟁력을 강화해 그에 따른 흑자도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