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은 사이클이 분명한 산업이다. 조선업의 사이클을 만드는 요인에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경기 변동이다. 조선업은 경기에 민감하다. 전방산업은 해운업인데, 전 세계 교역량에서 해상운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85%에 달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 세계 교역량은 경기가 좋으면 늘어나고 경기가 나빠지면 줄어든다. 2002~2010년 세계경제가 약 4% 성장할 때 전 세계 해상물동량은 연평균 4.4% 증가했으며, 2011~2020년 세계 경제성장률이 약 3%로 둔화하자 전 세계 해상물동량 증가율도 연평균 2.5%로 낮아졌다. 해상물동량이 연평균 4.4% 늘어나던 시기에 선박의 공급 증가율은 연평균 5.8%였으나, 해상물동량 증가율이 둔화하자 선박의 공급 증가율도 연평균 4.3%로 떨어졌다.
해운사들의 선박 발주는 경기 전망에 민감하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며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진 2010년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2009년 대비 165%나 증가했다. 반면 2016년 국제유가가 20달러까지 하락하며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선박 발주량은 전년 대비 66%나 감소했다.
조선업 사이클을 만드는 세 가지 요인
경기 변동, 선박 건조기간, 교체주기
두 번째는 선박의 건조기간이다. 해운사와 조선사가 건조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약 1년간의 설계과정을 거쳐 선박 건조를 시작한다. 계약에서부터 선박이 완성돼 인도되는 데까지 약 3년이 걸린다. 3년 후 경기가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해운사는 발주에 나서는데, 다른 해운사보다 늦게 발주할 경우 선박을 인도받는 시점이 늦어진다. 3년 뒤 실제로 경기가 좋아져 물동량이 늘면 운임이 상승할 것이고, 먼저 선박을 인도받은 해운사일수록 높은 운임을 받을 수 있다. 뒤늦게 선박을 받는다면 선박의 공급이 그만큼 늘어 운임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이후 지난해까지 고공행진을 했던 컨테이너선 운임이 올해 들어 급락했는데, 이유는 경기 둔화 영향도 있겠지만 코로나19 직후 대규모로 발주됐던 선박이 올해부터 인도돼 선박 공급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선박의 발주가 특정시점에 집중되는 일종의 양떼효과(herding effect)가 나타난다. 양떼효과는 선박의 건조기간인 3년을 주기로 반복된다. 초기 발주한 해운사는 낮은 선가에 조기 인도라는 메리트를 누릴 수 있지만, 뒤로 갈수록 조선소들이 충분한 일감을 확보했기 때문에 높은 선가를 요구할 것이고, 경제성이 떨어지는 구간에서부터 발주는 둔화 사이클로 접어들게 된다.
세 번째는 선박의 교체주기다. 선박의 물리적 수명은 약 30년이다. 2000년대 중반 조선업은 수퍼사이클이라고 불릴 만큼 발주 호황기가 있었다. 당시 수퍼사이클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73년 제1차 오일쇼크가 있다. 유가가 급등하자 원유를 저장해 두려는 수요가 크게 늘었고, 원유의 물동량이 늘면서 선박의 발주도 급증했다. 현재 국내 조선산업을 주도하는 조선 3사의 설립 연도가 1973년과 1974년인데, 발주가 급증하다 보니 한국의 조선사에도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1973년 대규모로 발주된 선박들은 2000년대 들어서자 여러 가지 사고를 일으켰다. 대표적인 것이 2002년 스페인 앞바다에서 기름유출 사고를 일으킨 프레스티지호 사건이다. 1970년대 만들어진 탱커선은 외벽이 한 겹인 단일선체로 만들어졌는데, 외부 충격이 가해질 경우 대규모 기름유출 사고로 이어졌다. 이에 국제해사기구(IMO)는 단일선체 탱커선의 취항을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었고, 오래된 탱커선들은 이중선체 탱커선으로 교체돼야만 했다.
앞서 언급한 경기 변동과 선박 건조기간은 3년 전후의 단기 사이클을 만드는 요인이며, 선박의 교체주기는 30년 정도의 장기 사이클을 만드는 요인이다.
친환경 추진선으로의 교체 가속화 등으로
2025년 이후 연평균 2천억 달러 규모 발주 예상
현재의 조선업은 어떤 사이클에 있을까? 단기 사이클로 보자면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발주를 관망하는 다운사이클이라 할 수 있다. 장기 사이클 관점에서는 환경 규제가 강화되고, 선박의 연비 효율이 중요시되면서 선박의 경제적 수명이 25년 미만으로 줄어 교체주기의 도래가 임박한 상황이다. 단기 다운사이클을 지나고 나면 장단기 모두 호황 국면에 접어드는 빅사이클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한다.
2020년 팬데믹으로 전 세계 물동량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었다. 그러나 재택근무가 늘면서 오래된 가전, 가구를 교체하려는 수요가 늘었고, 이는 컨테이너 물동량 회복과 운임 상승으로 이어졌다. 2020년 5월 클락슨이 전망한 전 세계 컨테이너 해상물동량 증가율은 -10.6%였지만 2020년 실제 증가율은 -1%에 그쳤다. 운임도 2020년 9.6% 증가한 데 이어 2021년에는 119.4%나 급등했다.
2021년 컨테이너선 발주량은 2,050만CGT로 직전 호황기였던 2007년 1,850만CGT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도 호황은 지속됐는데, 지난해 조선업황을 주도한 것은 LNG선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유럽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요가 늘면서 지난해만 184척의 LNG선박이 발주됐다. 1년에 건조된 LNG선박의 최고기록이 66척이니까 약 3년간 건조해야 할 LNG선이 지난 한 해 동안 발주된 것이다.
2021년과 2022년의 대규모 수주로 조선사들은 2026년까지의 일감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는 수익성이 좋은 선박들만 선별해 수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운사 입장에서도 지금 발주할 경우 2026년 하반기 이후에나 선박을 받아야 되는데,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높은 선가로 선박을 발주하면서까지 리스크를 떠안을 이유가 없다. 선가는 계속 오르고 있으나, 실제 발주로 이어지는 물량은 크게 줄어서 올해 5월까지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6%나 감소했다.
다운사이클은 이르면 올해 말 또는 내년 초부터는 업사이클로 전환할 전망이다. 지난 3년간 탱커선의 발주가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공급이 줄다 보니 탱커선의 운임이 많이 상승하면서 탱커선사들의 발주여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초대형 원유 운반선의 운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대비 139%나 올랐다.
장기적으로도 조선업의 전망은 밝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전 세계 교역량의 증가 속도가 경제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 있겠지만, 2000년대 발주된 선박들의 경제적 수명이 다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IMO나 EU 등의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점도 친환경 추진선으로의 교체를 가속화하고 있다. IMO는 2030년까지 2008년 CO2 배출량의 40%, 2050년까지 70% 감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EU도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2026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해운사들도 환경 규제에 대응해 선박의 교체를 준비하고 있다. 일부 메이저 선사들은 메탄올 등 친환경연료를 사용하는 선박 발주도 완료한 상황이다. 2000년대 중반 발주된 선박들이 많았던 만큼 이들을 교체하려면 2025년 이후에는 연평균 2천억 달러 규모의 발주가 예상된다. 2022년 한 해 전 세계 발주 규모가 1,329억 달러였으니까 2000년대 중반에 나타난 호황과 비슷한 상황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