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화로 지역 및 지역대학의 위기가 가속화하면서 최근 우리나라 고등교육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대표하는 주요 정책으로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와 ‘글로컬대학 30’을 꼽을 수 있다. 올해 2월 교육부는 대학지원의 행정적·재정적 권한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위임·이양하는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기존에는 대학에 대한 지원이 주로 중앙정부의 사업 공모와 대학의 참여를 통해 이뤄졌다면, RISE 체계에서는 지자체가 지역 발전계획과의 연계 아래 지역의 고등교육기관을 지원하게 된다는 것이 변화의 주요 내용이다.
또한 ‘글로컬대학 30’은 지역의 산업수요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자체, 지역 산업, 대학의 파트너십 구축을 지원해 궁극적으로는 지역과 대학이 동반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올해 교육부가 발표한 정책이다. 정부는 2026년까지 30개 내외 대학을 글로컬대학으로 지정해 1개 학교당 5년간 약 1천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며, RISE 체계에서 글로컬대학은 지역혁신 선도대학으로서 주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학이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단독 계획이 아닌 지자체, 지역 산업체와의 공동계획 수립을 통해 지역인재 양성 및 산학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정책 역시 대학과 지역 간 상생협력체계를 전제로 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지역혁신 및 지역사회 문제 해결에서 대학의 역할 강조돼
현 고등교육의 정책적 변화는 그간 강조돼 온 대학의 사회적 책임은 물론 지역의 주요 인재양성 기관이자 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앵커기관으로서 대학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물론 지역 속 대학의 역할 확대가 비단 정책적 변화에만 기인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지역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교육여건 및 일자리의 질 문제, 지역의 인프라 문제 등에 대한 대응은 지역의 다양한 주체가 함께 풀어나갈 문제다. 따라서 대학과 지역 유관기관의 협력체계 강화는 지역의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인식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많은 대학이 변화하는 대외적 환경에 따라 대학의 인적·물적 자원과 교육 및 연구 역량을 지역혁신 및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활용하는 등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대학과 지자체를 포함한 지역 유관기관 간 협력체계를 기반으로 한 정책이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RISE 체계 발표 전에 이미 실시되고 있던 ‘지자체·대학 협력 기반 지역혁신(RIS) 사업’과 ‘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HiVE) 사업’을 통해 지역 유관기관 간 협력체계가 일부 지역에서 구현된 바 있으며, 현재도 해당 사업에 참여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협력 모델이 발굴되고 있다. 이들 사업에 참여한 지역에서는 대학, 지역 산업, 지자체가 연합한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역이 지정한 산업 분야의 인력양성 및 지역 산업 발전을 위해 역할을 분담하고 세부적인 사업 수행을 위해 협력했다.
다양한 의사소통 채널 운영, 갈등 조정,
상호 신뢰관계 구축 등에 지역의 리더십 절실
하지만 오랜 기간 중앙정부의 사업 참여를 통해 진행되던 산학협력이나 인재양성 프로그램 등의 체제에 익숙한 상황에서 대학을 비롯한 참여기관들은 지역 주체 간 협력체계로 변모하는 과정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조만간 시행될 RISE 체계와 글로컬대학 사업의 안정적인 운영과 지역 유관기관 간 파트너십 강화를 위해서는 그간 유사한 구조의 사업을 통해 드러난 한계점을 바탕으로 향후 지역과 대학의 상생협력에 대한 세부 과제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지역 주체 간 원활한 협력체계 구축과 기관 간 효과적인 역할 분담 전략 수립을 위해서는 지역의 리더십과 지역 컨트롤타워의 중재 및 지원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RISE 체계와 글로컬대학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지역 및 지역대학은 지역 발전계획과 연계된 실행계획을 사전에 수립하기 때문에 사실상 계획서 준비단계부터 지역 내 상호협력시스템이 작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역 및 대학은 연계 목적 및 비전을 수립하고 기관 간 파트너십 전략을 마련해야 할 뿐 아니라, 선정 후에는 향후 해당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하지만 참여 의지나 유인이 각기 다른 지역 내 기관들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행 과정에서 기관별 인력의 잦은 교체, 조직별 상이한 업무체계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의사소통 채널 구축 및 운영, 갈등 조정, 상호 신뢰관계 구축 등에 있어 지역의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된다.
RISE 체계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 많은 지자체에서 대학지원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비영리법인을 통해 지역 RISE 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지역에서는 이러한 조직이 지역 주체 간 상호협력의 실질적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권한 및 책임을 부여하고 조직의 전문성을 키움으로써 지역 상생협력체계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 파트너십에 필요한 각 기관의 정보를 상호 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는 지역 유관기관 간 신뢰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지역 내 인적·물적 인프라 및 기관 간 협력수요를 파악하기 위한 기본적인 작업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대학, 기업, 지자체 등이 자체적으로 축적하는 DB 이외에 지역 차원에서 유관기관 간 정보를 통합한 플랫폼 구축·운영을 통해 지역 내 정보 및 자원에 대한 매칭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지역 내 파트너십의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역 주체 간 상호협력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현재 이뤄지는 대학·기업·지자체 협력 기반 고등교육 정책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대학 및 지역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한 다양한 사업이나 정책이 존재했으며, 사회적 흐름에 따라 그 방향성이 계속 변해 온 것이 사실이다. RISE 체계와 글로컬대학 사업에서 수립하는 계획은 대학 및 지역 발전의 단기적, 중장기적 계획을 포함하며, 정책의 지속성은 지역의 주체들이 수립된 계획에 따라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추진력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역 주체 간 협력체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인재의 수요와 눈높이를 대학·기업·지자체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과 대학이 나아갈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간 다양한 산학협력 사업이 시행됐지만, 기관 간 협력에만 머무르고 정작 사업의 주요 참여자인 학생과 교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사례도 존재했다. 지역 중심의 대학지원 구조로의 전환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지점 중 하나가 이것이 과연 수도권 집중화와 지역의 청년유출 등으로 대변되는 지역의 위기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새로운 정책의 궁극적 목표인 지역 및 대학의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대학 및 지역 발전의 핵심인 학생들의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의 의견수렴과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실행계획 수립 그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인센티브 시스템 마련 등에 지역 주체들이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