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계부채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등 양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장기간의 통화정책 완화와 자산시장 호황을 배경으로 급증세를 이어왔다. 2021년 하반기 이후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함께 1년여 정도의 조정기를 거쳤지만, 이후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다시 증가세로 전환됐다. 향후 추세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겠지만 그간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가 여전히 경제규모(명목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과 고금리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바가 크다.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비은행권·변동금리 비중 높아 우려 더욱 커
국내 가계부채와 관련된 거시건전성 차원의 위험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첫 번째가 전체 가계부채 규모이고, 두 번째는 증가속도 측면이며, 세 번째로는 부채의 질과 관련된 것이다. 팬데믹 이후 고금리·고물가 시기를 지나면서 규모와 속도 측면은 어느 정도 조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여전히 100%를 상회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는 차주들의 원리금 상환부담을 증가시켜 가계의 소비 여력을 위축하고, 나아가 구조적으로 내수가 둔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더불어 가계부채의 질적 측면은 더욱 우려된다. 은행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리 수준이 높은 비은행권 가계대출 비중이 여전히 크고, 금리변동에 취약한 변동금리 대출 비중도 70%를 상회하는 등 가계부채의 질적 측면이 크게 개선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대응방향은 이러한 가계부채 취약 요인들이 민간소비 등 경제 전반의 활력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고, 차주의 상환능력 및 거시건전성 차원에서도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는 대책들이 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책 중에는 가계부채 총량 관리,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도 개선 및 고정금리대출 비중 확대 등 가계부채의 양적·질적 개선 방안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정책당국은 DSR 산정 시 향후 금리변동 위험을 반영해 변동금리대출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스트레스 DSR 제도를 도입해 차주의 상환능력 범위 내 대출 원칙을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나아가 다양한 채널로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제성장률 이내로 관리해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을 하향 안정화하겠다는 정책의지를 표명했다. 이러한 가계부채 관련 정책 대응에 더해 거시건전성 차원에서 몇 가지 정책적 제언을 담는다면 다음과 같다.
먼저, 고금리 상황에서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는 원리금 상환부담을 통해 민간소비 위축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이에 더해 당분간 가계부채를 명목 GDP 증가율 이내로 관리하는 정책은 추가적인 내수 둔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 특히 경기둔화가 우려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경기 위축의 영향이 더 크게 체감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경기 보완적 차원의 재정의 역할이 필요할 수 있다. 물론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국가신인도 유지와 미래 성장동력 여력의 확보 차원에서 재정건전성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 다만 경기 하강의 충격이 경제주체별로 불균형하게 나타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한계 상황에 직면한 취약 차주들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선별지원을 위한 재정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둘째,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가 주로 정책금융지원 강화 및 정책모기지 공급 확대, 다주택·임대사업자 대출규제 완화 등의 공급요인과 주택가격 상승(가계부채와 주택가격 간 상관관계는 0.83) 기대에 따른 수요요인이 중첩됐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이에 대한 정책조정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금융기관 자율에 맡겨진 차주의 생애주기(또는 연령)별 기대소득 흐름에 기초한 대출 만기구조 설정 방식을 정책당국의 규제체계 내로 흡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DSR 산정의 예외적용 범위 점진적으로 축소할 필요
셋째, DSR 제도의 본래 취지인 ‘상환능력 범위 내 대출’ 원칙이 정착할 수 있도록 DSR 산정의 예외적용 범위를 점진적으로 축소해 나갈 필요가 있다. 현재 차주별 DSR 산정에서 예외 항목(1억 원 이하 대출차주의 대출, 중도금대출, 전세대출, 정책모기지 등)으로 빠져 있는 대출 비중이 전체 가계대출의 약 70% 정도에 달할 정도로 과도하게 높은 수준이다. 또한 DSR 적용의 회피 및 우회경로로 활용되는 등 풍선효과를 유발하는 수단으로도 작동하고 있어 DSR 제도의 본래 의미인 상환능력 범위 내 대출관행 정착이란 본래 취지가 무색한 상황이다. 따라서 DSR 산정 예외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전세보증금대출 및 보증금을 DSR 산정에 반영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임차인 DSR 산정에는 상환이자만 반영하고 실질적 차주인 집주인(임대인) DSR 산정에는 적정한 만기 설정을 통해 대출원금을 포함[현재는 임차보증금을 집주인의 주담대 담보인정비율(LTV) 산정에만 반영]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만 임대차계약 시 집주인이 전세보증금대출을 받은 임차인을 배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출이 아닌 임차보증금 자체를 반영하는 산정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넷째,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DSR 상환원리금 산정에 적용되는 대출상품별 만기구조와 대출금리도 보수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현행 DSR 산정 방식에는 변동금리대출의 금리변동 위험이 반영되지 않는 등 대출상품별 리스크 적용이 차별화되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DSR 상환원리금 산정 시 변동금리대출에 가산금리를 부과하는 스트레스 DSR 제도의 도입은 금융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비용을 금융거래 주체에게 직접 부과한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조치가 될 수 있다.
다섯째, 금리변동으로 인한 차주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저리의 고정금리 주담대 공급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장기 고정금리 대출 공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금조달 만기와 대출 만기가 매칭될 필요가 있는데, 현재 국내 은행이 발행하는 최장기 자금조달 수단이 5년 만기 은행채뿐이어서, 민간 금융기관들이 커버드본드(금융기관들이 중장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우량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와 같은 다양한 만기의 장기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커버드본드는 우선변제권, 이중상환청구권, 자산의 재무제표상 부내(on-balance) 유지 등의 특성으로 주택저당증권에 비해 신용리스크가 낮고, 저금리 발행이 가능하며, 담보자산의 교체·추가가 가능해 장기간 담보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다양한 이점이 있으므로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책당국은 대내외 여건상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인 선제적 지침(포워드 가이던스)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 통해 당분간 투자 목적의 주택 구입 및 위험자산 매입이 수익성 차원에서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주택가격과 10년물 국채금리 간 상관계수는 –0.79)는 시장경고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가계 차주들도 과도한 부채를 동원해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신용상, ‘다시 증가하는 가계부채, 향후 관리 방향에 대한 제언’, 한국금융연구원 브리프 논단, 2023.10.24. 내용을 수정·보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