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일명 ‘돈나무 언니’라고 불리는 캐시 우드(Cathie Wood) 아크 인베스트먼트(ARK Investment) 대표가 올 1월 「Big Ideas 2024」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지난 125년간 평균 3%에 머물렀던 전 세계 실질 경제성장률이 AI를 통한 지식근로자의 생산성 향상을 통해 향후 7년간 연평균 7%로 급등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담겨 있었다.
이러한 전망과는 다르게 현재까지 AI가 생산성을 높였다는 증거를 발견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1987년에 로버트 솔로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 교수가 컴퓨터에 적용했던 ‘생산성의 역설(productivity paradox; 높은 디지털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둔화가 지속되는 현상)’이 AI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1995~2005년 기간 중 연평균 2.9% 성장했으나 2005~2022년에는 연평균 1.5% 성장에 그쳤다.
AI, 일자리를 구성하는 직무 간 보완성 높여
고용의 질 제고
AI 낙관론자들은 현재 AI 기술이 ‘생산성 J-곡선’의 최저점(생산성이 급격히 증가하기 전 초기에 떨어지는 지점) 부근에 있다고 주장한다. AI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합한 비즈니스 프로세스,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보완적인 인적자원, 성능 좋은 하드웨어 등이 갖춰져야 하는데 이러한 보완적인 투자가 현재 진행 중이며 향후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 효과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하는 것이다. 반면 AI 비관론자들은 디지털 신기술의 범용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AI에도 적용되고 있으며, 인구구조·교육·부채·불평등 네 가지 역풍으로 인해 앞으로도 두드러진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동안 도입된 범용기술은 생산성을 높여왔으며, 궁극적으로 일자리의 숫자를 줄이지 않았고 일자리의 직무 구성을 바꾸며 신산업, 신직종을 창출했다. 이번에는 과연 다를까?
고학력자, 고임금 근로자를 대체할 수 있는 생성 AI의 급속한 확산은 탈숙련화 관련 우려를 증폭하며 미래 일자리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으로 연결되고 있다. 올해 세계경제포럼에서는 AI로 인해 향후 5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전체 고용의 2%에 해당하는 1,400만 개의 순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고, 골드만 삭스의 보고서는 생성 AI로 인해 EU와 미국에서 3억 개의 일자리가 증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IMF는 전 세계 일자리의 40%가 AI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AI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심화학습한 AI가 영상의학자를 5년 안에 대체할 것이라고 2016년에 예측한 바 있다. 그러나 2021년 기준으로 영상의학자는 오히려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다. AI의 보급은 영상의학자라는 직업을 대체하지 않고 영상의학자의 일부 직무를 대체했다. 다시 말해 AI의 확산은 일자리를 대체해 고용을 줄이기보다 특정한 일자리가 수행하는 여러 가지 직무 중 일부만을 AI가 대체하게 되는 것으로, 일자리를 구성하는 직무 간의 보완성을 높여 고용의 질을 제고하는 효과를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발전해야
생성 AI가 고용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일련의 연구들에서는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과 낮은 직업을 비교·분석해 AI로 인해 대체될 일자리의 규모를 추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은행은 AI 노출도가 높아 대체될 수 있는 국내 일자리의 규모를 341만 개(전체 일자리의 12%)로 추정했다.
그러나 모든 연구가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의 고용과 임금이 전반적으로 감소한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직종 내 업무를 AI가 수행하는 업무와 사람이 수행하는 업무로 재구성해 서로 보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우에는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의 임금이 올라가거나 고용안정성이 높아진다는 연구들도 나오고 있다.
향후 모든 직종에서 AI 노출도는 상승할 것이다. 현재는 생성 AI의 확산으로 화이트칼라 직종의 노출도가 올라가고 있지만, 생산업에서 AI 로봇 등이 보편화되면 블루칼라 직종의 노출도도 커질 것이다. AI가 과거의 범용기술처럼 생산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줄이지 않으며 고임금을 견인하려면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증폭 혹은 증강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사용자의 능력이 필요조건이 될 것이다. 또한 인간과 유사한 AI를 개발하는 데 집중한 까닭에 AI가 인간의 능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의미하는 ‘튜링의 함정’에서 벗어날 유인을 정책적으로 제공할 필요도 있다.
계속 하락하고 있는 출산율과 높은 고령화로 인해 노동인구가 부족해지는, 구조적으로 ‘견고한’ 노동시장(structurally tight labor market)이 예상되는 한국의 경우 AI의 높은 노출도에 따른 대체효과를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체효과가 크게 나타나더라도 오히려 향후 인력부족률을 낮추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 일자리보다는 생산성을 고려해 AI의 도입을 가속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