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는 붕괴했다. 이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피부과나 성형외과는 넘쳐나는데 응급실이나 수술실, 지방에는 의사가 없다. 필수의료과 의사가 부족한 이유는 명백하다. 일은 고되고 진료 난도는 높은데, 보수는 적고 지원은 미미하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매년 2천 명씩 늘려서 이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 중 82%는 지역 의과대학에 배정했다. 여기에 수가 조정, 보상 확대, 정부 지원을 통해 필수의료에 생긴 공백을 메우겠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필수의료 공백이 ‘절대적인 의사 수’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논쟁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격화하고 있다. 의대생 ‘2천 명’ 증원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의 쟁점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1천 명당 활동 의사 수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치나
미·일 등 의료시스템 유사국 대비 적지 않단 의견도
첫째, 의사 수 부족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부족하다는 논리가 있고 충분하다는 논리도 있다.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자료가 OECD 통계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천 명당 활동 의사 수가 2.6명으로 OECD 평균(3.7명)에 훨씬 못 미친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2.0명으로 최하위다. 반면 병상 수는 OECD 평균(인구 1천 명당 4.3개)의 3배 수준(12.8개)이다. 의사가 충분하다는 진영에서는 OECD 평균이 아니라 한국과 의료시스템이 비슷한 일본(2.6명), 미국(2.7명)과 비교하면 한국의 의사 수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자료에 인용된 38개 나라 중 국가가 의료를 책임지는 나라들과는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의료 접근성과 이용률은 세계 최고이고, 국민건강지표(기대수명, 주요 질환별 사망률 등)도 최상위권이라는 통계도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근거라고 말한다. 의사들의 말처럼 병원 접근성이 높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국민 1인당 외래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5.7회로 OECD 평균(5.9회)의 2.6배다. 전문가들은 이 횟수가 ‘기형적’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논쟁에서 중요한 사안은 시간이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다. 전체 인구는 줄지만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의료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35년에 약9,654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1만650명(한국개발연구원), 1만816명(서울대)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 등의 추계 결과가 대표적이다. 3명의 연구자가 개별 연구를 했는데 2035년에 의사가 1만 명 정도 부족할 거라는 공통 수치가 나왔다.
둘째, 증원 수가 적정한가? 보건의료 정책에 정통한 박은철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의사 증원에는 공감한다. 2040년까지 의료 수요 대비 의사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2천 명’이라는 증원 숫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히며 2천 명이라는 숫자에 난색을 표했다. 현재 정원의 65%에 해당하는 인원을 갑자기 늘려 버리면 의료교육의 질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이들의 공급을 받쳐줄 대학병원, 종합병원의 고용이 같이 늘어날 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증원 없이 이대로 가더라도 2051년부터는 다시 공급이 의료 수요를 넘어서고 2070년에는 의사의 32%가 잉여인력이 된다”며 “의대 최대 증원 수를 매년 1천 명으로 잡고 5년마다 추계를 보며 재조정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가 2천 명 증원의 근거로 쓴 3개의 보고서에서도 연구자들은 점진적 증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의사 수만 늘리면 해결될까? 의료계가 반발하는 이유는 또 있다. 정부가 수가 조정, 필수의료 인력·인프라 확충 및 역량 강화 지원 등을 이행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정 논의가 필요한 사안은 정책 방향만 제시됐을 뿐 사회적 합의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의사들은 필수의료 공백의 본질적인 문제가 ‘숫자’가 아닌 ‘구조’에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문제는 건강보험 수가다. OECD 자료에 따르면 ‘GDP 대비 건강보험 수가’는 미국을 100으로 했을 때 OECD 평균이 72, 한국은 48이다. 한국보다 의료수가가 낮은 나라는 헝가리, 폴란드, 체코, 러시아 등이었다. 한국은 의료행위별로 수가를 매긴 뒤 이에 맞춰 급여를 지급한다. 수술이나 진료 난도는 높은데, 보상은 적은 과가 발생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의사들의 부담과 낮은 처우에 어느정도 공감했다. 그래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의대 정원 증원과 함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들고 나왔다. 여기에는 수가 인상이나 의사·환자들의 사법리스크 완화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그동안 의료계가 필수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두 가지 해법이다. 정부는 2028년까지 10조 원 이상을 투입해 필수의료 분야 수가를 집중 인상하기로 했다. 우선 진료량에 따라 보상받는 행위별 수가제를 대폭 개편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행위별 수가제에 칼을 댄 건 인기과와 기피과의 불균형이 진료 ‘횟수’로 보상하는 제도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행위별 수가는 크게 수술·입원·처치·영상·검사 등 5가지 분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수술과 입원, 처치는 저평가된 반면 영상이나 검사 분야는 고평가돼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난이도, 위험도, 숙련도, 대기·당직 시간 등을 고려한 상대가치점수를 재조정하기로 했다. ‘공공정책 수가’와 지역의료에 부여하는 ‘지역 수가’도 신설할 방침이다. 불가피한 의료사고에 대한 사법 부담을 덜어주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도 제정하기로 했다.
의사 늘면 과잉 진료로 의료비 증가한다는 의료계…
보사연 “의료비 증가의 주요인은 수가 인상”
넷째, 의대 증원이 건강보험 재정 부실로 이어질까? 의료계는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비가 늘어나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의료시장은 서비스 공급자인 의사와 수요자인 환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큰 만큼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유인수요’ 가설에 기반한 주장이다. 의사 수를 늘리면 경쟁이 치열해지고 ‘과잉 진료’가 늘며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유인수요론은 1970년대에 나온 낡은 이론”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2~2022년 의료비 증가 요인을 분석한 결과 해당 기간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된 의료비 연평균 상승(7.9%) 요인 중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수가 인상(2.6%), 고령화(2.1%), 약가 상승(1.6%)이었다. 의사 수 증가가 포함된 ‘기타’ 요인은 0.7%에 불과했다.
다섯째, 보험료율이 인상될까?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 우려를 표하는 쪽도 설득력이 있다. 건강보험 적립금은 추가적인 지출 없이도 고갈 위기에 빠져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 당기 수지는 올해 2조6,402억 원 흑자에서 2026년 3,072억 원 적자로 돌아선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폭증, 필수의료·요양급여 등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추세로, 재정 효율화와 수입을 늘리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다면 적자 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이 흔들리면서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모이고 있다. 건강보험료율은 2023년 7%를 넘었다. 법에서 정한 보험료율을 상한인 8%까지 올려도 2030년에는 그동안 쌓였던 누적준비금이 소진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