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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대한민국 의료 정상화를 위한 의료개혁 4대 과제
강준 보건복지부 지역의료정책과장 2024년 04월호
한국전쟁 후 국제 원조를 통해 의료 인프라를 구축했던 대한민국 의료는 단기간 내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고,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를 바탕으로 세계가 부러워하는 높은 수준의 의료 접근성을 갖췄다. 그러나 치료할 의사가 없어 재이송 중 사망한 응급환자가 2017년부터 5년간 3,752명에 달한다는 통계는 우리 의료의 어두운 이면을 극명히 보여준다. 지역은 더 심각하다. 전국 226개 시군구 중 1시간 내 응급처치를 받을 수 없는 응급의료 취약지는 98곳에 달한다. 지역 암 환자의 30%가 서울에서 치료받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고령화로 폭증할 의료 수요 감당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의사 수 확보


빠른 경제성장과 고령화, 전 국민 건강보험 등으로 의료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와 의료계는 의사 인력을 늘리거나 전달체계를 개선하는 근본 대책보다는 병상을 늘리는 손쉬운 방식을 택했다. 진료권 규제 해제, 병상 허가권 지자체 이양 등은 병상 경쟁을 부채질했다. 수도권 대형병원의 치열한 병상 경쟁은 지역의 의사와 환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지역의료가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건강보험 수가 결정체계도 보상의 불공정성을 키웠다. 치료에 필요한 자원의 소모량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숙련된 의료인의 행위보다는 장비를 사용하는 진단·검사에 대한 보상이 더욱 커졌다. 수가 결정의 핵심인 업무량 산정 권한을 위임받은 대한의사협회가 내부 조정에 실패하며 진료과목 간 불균형도 심화했다. 불균형을 신속히 시정할 책임이 있는 정부도 지난 20년간 불과 3차례 조정을 시행해 보상 왜곡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관대한 보상구조를 가진 실손보험은 비급여시장의 과도한 팽창을 유인해 건강보험 급여 진료보다 비급여 진료가 더 많이 보상받는 불합리를 초래했다. 왜곡된 의료체계를 바로잡지 못한 채 급격하고 광범위하게 추진된 보장성 강화는 병들어가는 의료체계에 쐐기를 박았다.

고령화에 대비해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린 미국, 일본, 독일 등과 달리 우리는 갈등을 핑계로 27년간 의대 정원을 늘리지 못했다. 인구 1천 명당 활동 의사 수는 OECD 꼴찌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2035년에만 2만3천 명의 베이비부머 의사가 대거 은퇴하기 시작한다. 고령화로 폭증할 의료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은 예정된 미래다.

정부는 이러한 필수·지역 의료의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이고 종합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올해 2월 1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통해 의료개혁 4대 과제를 발표했다. 

첫째, 필수의료를 포함한 사회의 의사 수요가 충족되도록 충분한 의사 수를 확보한다. 의사 양성 기간을 고려해 10년 후 의사 수급 공백을 방지할 수 있도록 2006년부터 동결된 3,058명의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부터 2천 명씩 5년간 늘린다. 정원 확대와 함께 의학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대폭적 투자와 주기적 의대 정원 조정시스템 구축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풍부한 임상경험을 갖춘 의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턴제를 포함한 전공의 수련체계 전반을 개편하고 전공의의 장시간 근로도 개선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병원이 전공의 의존에서 벗어나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인력구조를 혁신해 의료 질 향상과 좋은 전문의 일자리 확대를 견인한다. 이와 함께 기본적 진료역량을 갖춘 후 개원을 허용하는 개원면허제와 주기적 면허 갱신제도 도입을 검토한다.

둘째, 지역완결 필수의료 확립을 위해 지역의료 강화를 추진한다. 대학병원부터 동네의원까지 각자의 역할에 맞게 협력 진료할 수 있도록 의료제도와 건강보험 수가체계 등을 대폭 개선한다. 협력 진료를 총괄하는 국립대병원 등 권역 책임의료기관을 필수의료 중추로 육성하고 지역의료기관과 협력하는 체계를 만들어 중증·응급의 지역 완결성을 높인다. 전국 70개 중진료권별로 소아·분만·응급·외과수술 등 필수의료 특화 지역병원을 거점화해 충분한 인력 확충을 바탕으로 골든아워 내 적절한 치료가 이뤄질 수 있는 의료체계를 만들어나간다. 아울러 지역 병의원 간 협력 진료가 대폭 활성화될 수 있도록 대학병원부터 동네의원까지 촘촘히 연결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지역의료혁신 시범사업을 추진해 권역별 3년간 최대 50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역의료의 핵심인 충분한 의사 수 확보를 위해 의사들이 지역의료에 비전을 갖고 필수의료에 종사할 수 있도록 전 주기에 걸친 지원을 강화한다. 지역 의사로 남을 가능성이 높은 의과대학 지역인재 전형과 지역병원 수련을 확대하는 한편, 충분한 수입과 주거 등 파격적 정주 지원을 통해 지자체와 의사가 지역 필수의료기관 장기 근무 계약을 맺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도입도 추진한다. 지역의료에 대한 투자도 충분히 이뤄지도록 한다. 행정적 경계를 넘어 실제 의료 수요·공급을 반영한 ‘지역의료지도’를 개발해 취약도에 따라 지역 수가가 조정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수가로 해결이 어려운 인력·인프라 지원에 대해서는 재정 당국과 협력해 ‘지역의료발전기금’을 신설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해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필수의료 보상에 5년간 건보재정 10조 원 이상 투입


셋째, 의료인과 환자 모두를 위한 의료사고 안전망을 구축한다. 국민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 인력이 과중한 민형사상 부담으로 진료 현장을 떠나는 안타까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추진한다. 특례법은 모든 의료인의 의료사고 책임보험 가입과 의료분쟁 조정·중재 절차 참여를 전제로 도입된다. 이를 통해 환자의 권리는 충분하게 보장되고, 의료인은 과도한 걱정 없이 소신껏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새로운 의료사고 처리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현행 의료분쟁 조정 제도의 대폭적 개선과 함께 실효적 보험상품 개발, 권리구제를 지원하는 ‘의료기관안전공제회’ 등 공공인프라도 구축할 계획이다. 아울러 현재 3천만 원 한도인 불가항력 분만 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한도도 실제 민사 손해배상액을 고려해 현실화할 예정이다.

넷째,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이 우대받는 공정한 보상 체계를 만든다. 앞으로 5년간 10조 원 이상의 건강보험 재정을 긴급 수혈해 수술 등 저평가된 필수의료 수가를 집중 인상한다. 또 난이도, 숙련도, 위험도, 대기시간 등 필수의료 특성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공공정책 수가를 도입해 보완한다. 행위별 수가제로 보상이 불가능한 영역을 지원하기 위해 필수 인프라 유지, 네트워크 협력진료 등을 보상하는 대안적 지불제도도 확대한다.

이와 함께 보상체계의 공정성을 저해하고 의료체계의 왜곡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큰 비급여시장을 적극 관리한다. 도수치료 등 과잉 우려가 큰 비급여는 건강보험 청구가 가능한 진료와 같이 이뤄지지 않도록 혼합진료를 금지한다. 무엇보다 실손보험이 과잉 비급여 양산의 온상이 되지 않도록 금융당국과의 협의시스템을 구축해 상품개선에 착수하고자 한다. 아울러 미용 의료 분야도 환자 안전 측면을 고려하고 해외사례 등을 참고해 종합적 제도 개선 및 관리 강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는 ‘필수의료를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지난해부터 필수의료 강화 방안을 마련해 왔다. 대통령부터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현장과 소통하며 관련 대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대책을 통해 시행된 수가 인상액만 1조 원에 달한다. 일례로 분만 수가는 80만 원에서 256만 원으로 3배 넘게 인상했다. 앞으로 다른 필수의료 분야에도 획기적 보상을 할 것이다. 최선을 다한 진료를 보호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계획을 밝혔고 그 초안도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의료개혁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의료의 특성상 우리 의료가 처한 구조적 문제의 해법을 찾는 고차방정식은 의료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만 풀 수 있다. 의료계가 개혁에 동참하지 않고 환자 곁을 떠나 투쟁하는 낡은 관행을 끊어내야 할 때다. 개혁의 대상은 의사가 아니라 낡고 불합리한 의료시스템이다. 너무나 오래 미뤄온 의료개혁을 이번에도 미룰 수는 없다. 정부는 흔들림 없이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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