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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대 증원이 되려면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2024년 04월호

정부, 의협은 물론이고 환자단체, 시민사회까지
참여해 적정한 의사 정원을 논의하는 사회적 협의
체가 우리에게도 필요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 비율 5.4%로 OECD 평균
52.9%에 비해 너무나 적어…공공병원 확충 없는
지역·필수 의료 강화는 불가능


“경남 119에서 환자를 받아줄 수 있는지 전화가 왔어요. 어떻게 할까요?” 며칠 전 당직을 서고 있는데 응급의학과 교수가 물었다. 경남 산청 인근에 사는 환자로 코와 입에 출혈이 심해 경남지역 대학병원 응급실에 문의했지만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약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환자를 태운 119 구급대가 병원에 도착했고, 곧바로 응급 처치에 들어갔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가까운 거리에 산청 보건의료원이 있지만, 의사 선생님도 적고 진료과가 몇 개 없어요.” 겨우 안정을 찾은 환자의 말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 서울 3.4명 vs 경북 1.3명…
수도권·지역 간 의료격차가 지역소멸 가속


이처럼 지역의 의사 부족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경남 18개 시군 중 14개 시군이 응급의료 취약지이며 10개 군 통틀어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한 명도 없다. 전국의 35개 지방의료원 중 의사 정원을 채운 곳은 11개에 불과하다. 이처럼 농어촌 지역의 필수의료 현실은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다. 전국 250개 시군구 중 118개가 소멸위험 지역이며 수도권과 지역의 의료격차가 지방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

필자가 오래전부터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낸 이유다. 가까운 곳에 수술받을 병원이 없어 2~3시간 거리의 대구까지 오는 경북지역 환자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응급실을 1시간 안에 이용한 의료 이용률을 보면 서울은 90.3%지만 경북은 53%였다. 실제로 서울의 인구 1천 명당 활동 의사 수는 3.4명이지만 경북은 1.3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들려온 의대 증원 소식이 너무나 반가웠다.

얼마 전 정부에서 다소 파격적인 2천 명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얼마나’보다 ‘어떻게’가 의대 증원에서 더 중요한 문제인데, 정부가 단순히 의사 수만 많이 늘려놓으면 저절로 지역·필수 의료로 유입될 것이라 기대하는 듯해 안타까웠다.심각한 지역·필수 의료 붕괴 위기의 근본 원인은 지나치게 ‘시장’적인 우리의 보건의료체계에 있다. ‘시장실패’로 초래된 지금의 의료 공백을 또다시 2천 명 의대 증원이라는 ‘시장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시장의 방식을 벗어난 ‘공적 통제 기전’을 전제로 한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장치인 의무 복무 기간에 대한 규정마저 없다면 어떻게 지역·필수 의료의 공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물론 정부에서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도 함께 발표했다. 고심한 흔적이 보이고 의미 있는 내용도 일부 있지만,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대책이 한 줄도 없다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언제 어디서나 공백 없는 필수의료 보장’은 지난해 10월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 전략’의 핵심 내용
이다. 이는 ‘의료체계의 공공성’이 강화돼야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이번 의대 증원 역시 ‘의료의 공공성 강화’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추진돼야만 한다.

의사 수 늘리는 것만으론 지역의료 강화에 역부족으로
‘지역의사제’ 도입, 공공의대 설립 등 필요


지역·필수 의료에 의지가 있는 지원자를 선발해 국가와 지자체가 장학금을 지원하고 교육 및 수련을 마친 후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지역에서 복무하도록 하는 ‘지역의사제’의 도입이 필요하다. 2000년대 들어서며 의사 부족 문제를 겪었던 일본도 ‘지역 정원제도’를 시행해 의사들과의 갈등을 조정하며 의사 정원을 늘릴 수 있었다. 9년간 의무 복무한 의사의 지역 정착률도 90%를 넘는다.

공공의대 설립 또한 꼭 필요하다. 졸업 후 일정 기간 의무 복무를 조건으로 하는 공공의대를 우리나라 지리적 중심인 세종시에 설립하고 매년 300~500명의 ‘공공의사’를 안정적으로 배출한다면 의료 공백 해결과 함께 공공의료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배출될 의사들이 활동할 공공병원이 많이 설립돼야 한다. 공공병원 확충 없는 지역·필수 의료 강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1차 대유행 당시 전체 입원 환자의 70~80%를 전국의 공공병원에서 감당했다. 그러나 현재 전국의 공공병원은 코로나19 회복기 지원 예산 삭감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던 울산의료원 설립은 경제성 논리로 폐기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공공의료기관 비율은 5.4%로 OECD 평균인 52.9%에 비해 너무나 적다. 전국 70개 중진료권 중 공공병원이 없는 지역에 서둘러 공공병원을 설립해야 하는 이유다.

2천 명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사단체가 맞서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적정 의사 수 결정은 우리 공동체 모두의 몫이다. 필요하다면 ‘사회적 논의’를 거쳐 의사 수를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어야 한다. 의사들이 허락하고 대한의사협회가 동의해야만 의사 수를 늘릴 수 있다는 일각의 생각은 옳지 못하다. 일본에서는 정부, 의사단체, 병원협회, 의대 교수, 시민단체, 언론까지 참여해 의대 정원을 조정하는 ‘의료 인력 수급 분과회’를 두고 적정 의사 수를 논의하고 있다. 정부는 오랜 기간 의정 협의를 거쳤다고 주장하지만, 의대 증원을 앞두고 정작 환자와 시민이 논의에서 배제됐다. 정부, 의협은 물론이고 환자단체, 시민사회까지 참여해 적정한 의사 정원을 논의하는 사회적 협의체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전공의 공백’이 한 달 이상 이어지며 암 수술이 연기되는 등 환자들의 불편과 고통이 점점 커지고 있다. 대다수 국민이 의사 부족으로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의대 증원 자체를 반대하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특히 응급실, 중환자실까지 떠나는 의사의 파업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의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 병원의 ‘필수 영역’부터 복귀해야 한다.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파업 시기에도 전공의들은 ‘참의료진료단’을 꾸려 병원의 필수 영역을 지켰다. 환자 곁을 지키며 시민과 대중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설득해야 정책의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정부 역시 ‘법정 최고형’을 운운하거나 ‘의사 면허 정지’ 처분과 같은 강경 대응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대화에 나서야 한다. 정책 목표가 정당하더라도 추진 과정에서 국민에게 미치는 의도치 않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제때, 최적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역 의료를 강화하겠습니다.” 지난 3월 14일 보건복지부의 정례브리핑 내용이다. 그러나 브리핑 이틀 전 경남 산청보건의료원에서 응급실을 담당하던 공중보건의 2명이 서울 대형병원의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차출돼 정부의 약속이 무색해졌다. 산청 보건의료원은 몇 해 전 의사 모집 공고를 6번이나 낸 끝에 연봉 3억6천만 원의 조건으로 전문의를 겨우 채용했던 공공병원이다. 경북에서도 23명의 공중보건의가 서울 등 수도권으로 파견돼 의료 취약지인 농어촌의 의료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보건지소의 공보의마저 빼내 가면 우리 같은 시골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요?” 지역·필수 의료 강화를 말하는 정부는 경북 봉화군 한 주민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의료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환자들이 겪게 될 피해는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 고통 속에 있는 환자들, 불안한 시민들을 생각해 이제 더 이상의 파국은 막아야 한다. 이제는 의사 증원 숫자에 국한된 논의를 넘어서야 한다. 정부, 의사단체, 시민사회가 ‘논의의 장’에서 만나 머리를 맞대고 진정한 의료개혁이라 할 수 있는 ‘생명과 지역을 살릴 의대 증원 정책’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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