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저, 전 세계 최저. 우리나라의 출산율에 따라 붙는 수식어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1960년부터 작성된 세계은행 통계의 최저치(2021년 홍콩 0.77명)를 경신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는 0.68명, 내년에는 0.65명으로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이러한 초저출산 위기는 노동시장 문제와 직결돼 있다. 이는 필자를 비롯한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연구진이 저출산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2023년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저출산의 주원인은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으로 요약된다. 그 핵심에 노동시장 문제가 있는데,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취업 경쟁과 고용 안정성 부족, 워라밸 부족이 경쟁압력과 고용·양육 불안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장래 결혼의향 36.6%에 그쳐…
가정 형성의 격차로 연결되는 일자리 격차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치열한 취업 경쟁과 낮은 청년 고용률이 늦은 결혼 또는 포기로 연결되고 있다. 안정된 일자리는 결혼과 출산의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일자리 경쟁이 치열할수록 취업 준비를 더 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혼과 출산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럼 과거에 비해 청년들의 일자리 경쟁은 더 치열해 졌을까? 실제 조사를 보면 그렇게 나타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신입사원 채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입 채용경쟁률은 2008년 26.3 대 1에서 2017년에는 35.7 대 1로 높아졌다. 이후 조사치는 없는데 경력직 수시채용이 늘면서 조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최근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어렵게 느끼는 부분이 경력직 위주의 채용으로 신입 채용 기회가 줄고 있는 점이라는 사실에 비춰보면, 청년들의 취업난은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결혼 연령도 확연하게 늦춰지고 있다. 남성의 초혼 나이는 1990년 27.8세에서 2023년에는 34.0세로, 여성은 24.8세에서 31.5세로 모두 6세 이상 높아졌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고용 사정은 과연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나쁜 걸까?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양호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고용률로 보면 이는 틀린 말이다. 우리나라 15~29세 인구의 고용률(취업자 수/인구)은 2022년 46.6%로 OECD 평균(54.6%)보다 크게 낮다. 결혼 적령기라 할 수 있는 25~39세 고용률을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75.3%로 OECD 평균인 87.4%에 비해 12.1%p 낮다. 고용의 질 역시 좋지 않은데, 국제비교가 가능한 임시직 비중을 보면 2022년 우리나라 전체 임금근로자 중 임시직 비중은 27.3%로 OECD 34개국(평균 11.3%) 중 두 번째로 높아 고용의 질이 좋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둘째,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가정 형성의 격차로 연결되고 있다. 앞서 신입 채용경쟁률이 올라갔다고 했는데, 자세히 뜯어보면 대기업-중소기업 간 차이가 극명하다. 300인 이상 대기업 취업경쟁률은 2008년 30.3 대 1에서 2017년 38.5 대 1로 올랐지만, 중소기업 경쟁률은 8.4 대 1에서 5.8 대 1로 오히려 떨어졌다. 대기업으로만 청년이 몰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처우의 격차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질의 1차 노동시장(대기업, 정규직)과 열악한 2차 노동시장(중소기업, 비정규직) 간 격차가 확대되는 것을 노동시장 이중구조라 한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제조업체 임금격차는 2000년 1.5배에서 2023년에는 1.9배로 확대됐다. 또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도 2004년 1.5배에서 2023년 1.9배 수준으로 더 벌어졌다. 국민연금 가입률도 정규직은 2023년 88.0%, 비정규직은 38.4%로 차이가 크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격차는 결혼할 의향과 실제 결혼확률에 영향을 미친다. 2022년 한국은행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25~39세 미혼남녀 1천 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경우 ‘장래에 결혼할 의향이 있다’라고 답한 비중이 36.6%에 그쳐 취업자 전체의 결혼의향(49.4%)보다 크게 낮았다. 반면 고용 안정성이 높은 공공기관 근무자나 공무원의 결혼의향은 평균 58.5%로 나타났다. 실제 결혼확률을 추적 분석한 문헌에 따르면 특히 남성의 경우 비정규직의 결혼확률이 정규직보다 유의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육아휴직 실이용기간 짧을수록 출산율 떨어져
셋째, 장시간 근로와 워라밸 부족이 출산 기피로 이어졌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매우 긴 편에 속한다. 2022년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37개국(평균 1,752시간) 중 다섯 번째로 높다.
일과 삶의 균형 중 특히 육아와 관련된 워라밸이라 할 수 있는 육아휴직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육아휴직 실이용기간(법정 가능기간×실제 사용률)은 OECD 평균의 5분의 1에서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환경에서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실제 2000~2021년 OECD 35개국 패널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육아휴직 실이용기간이 짧을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같은 데이터를 이용한 시나리오 분석에서는 우리나라 육아휴직 실이용기간이 OECD 34개국 평균 수준으로 늘어날 경우 출산율이 약 0.1명 증가할 수 있음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경우 가사와 육아 부담까지 떠안게 되면서 결혼의향이 저하되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나라를 OECD 29개국 중 ‘일하는 여성에게 환경이 가장 열악한 나라’로 지목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조사를 시작한 2013년부터 올해까지 12년 연속 한국은 유리천장지수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하위지표 중 남녀 간 소득격차는 OECD 최고 수준이며(여성 소득이 남성 대비 31.2% 낮음), 여성 임원 비율도 최하위권에 있다.
가정과 육아에서도 여성에게 주어지는 부담이 적지 않다. 인구학 석학인 마티아스 도프케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동료 교수와 함께 남성의 가사·육아 분담률이 낮을수록 출산율도 떨어진다는 논문을 2019년 발간했다. 분석대상 27개국 중 남성의 가사·육아 분담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 이렇게 차별적인 노동환경 속에서 가사와 육아의 부담까지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는 상황은 미혼 여성들이 결혼에 대한 마음을 닫아버리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2022년 25~39세 미혼자 1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미혼 여성 중 장래에 결혼할 의향이 있는 비율은 42.8%로 남성(51.1%)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노동시장과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점이 전대미문의 출산율 수치를 통해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이를 간과하면 노동인구 부족으로 노동시장에 불균형이 심화하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 자체가 지속 불가능하게 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