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은 노동력이 거래되는 보이지 않는 시장을 뜻한다. 노동과 자본은 시장경제시스템의 근본 요소로, 안정적인 노동시장을 만드는 것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다. 다만 우리 노동시장은 오래된 병폐가 치료되지 않은 채 상처로 남아 있다. 바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서로 다른 노동조건이 동시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노동조건이 좋고 고용이 안정적인 노동시장과 그렇지 못한 노동시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둘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 이동도 쉽지 않아 차별을 극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소기업 임금, 대기업의 56.8% 수준
사용자 책임 사각지대 놓인 노동자는 320만 명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예는 임금격차가 대표적이다. 2022년 기준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 시간당 임금의 70.6%에 머물러 있다. 기업규모에 따른 임금격차는 더욱 커서 300인 미만 기업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300인 이상 기업 노동자 시간당 임금의 56.8%에 불과하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성별 임금격차를 봐도 남성 대비 여성의 상대임금은 69.8%에 머물러,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크다.
고민해 볼 것은 고용형태별, 기업규모별, 성별 임금격차가 차별적인지, 아니면 정당한지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남성과 여성 간에 일이 구분돼 있지 않으며 같은 일을 한다면 고용형태나 기업규모와 무관하게 같은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다른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여성과 남성 간의 임금 차이는 10~20%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훨씬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은 첫째, 임금에 직무가치가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개별 노동의 직무가치가 객관적으로 평가돼 보수가 결정되기보다 근속, 기업의 지불능력, 노동조합의 교섭력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는 데서 비롯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이 정규직에 비해 낮은 이유는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기간이 32개월로 정규직의 근속기간(평균 98개월)보다 짧아 경력을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시간당 임금이 중소기업보다 높은 이유는 회사의 지불능력도 감안해야 하지만 노동조합이 회사에 높은 보수를 지불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즉 회사의 지불능력은 노동조합의 지불하게 만드는 능력으로도 볼 수 있다.
둘째,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사용자가 그 책임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자라는 이유로 임금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혹은 수요-공급의 시장 거래만으로 임금이 결정된다면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초기 자본주의의 혼란은 대공황 이후 복지국가 모델을 도입하고 노동자들에게는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부여해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수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근로계약 체결 시 사용자가 여러 의무를 져야 함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노동관계법의 준수 및 사회보험 분담과 교섭에 응할 의무 등이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실질적인 사용자 역할을 하면서도 이를 회피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선호한다. 대표적으로 사내하청이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의 경우 원청 혹은 계약기업이 보수 등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사용자 책임은 면제돼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 수가 100만 명에 이르고 특고가 220만 명 이상에 달하므로 적어도 320만 명 이상은 자신의 보수에 대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통로가 제한돼 있는 것이다.
셋째, 기업별 교섭체계를 가진 노동조합의 한계다. 노동조합이 조직된 경우 사용자와 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지만 작은 사업장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조합 조직이 어려운 것은 임금격차가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도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은 외국의 경우 기업을 넘어서는 초기업 수준의 교섭을 하고 있으며 교섭 결과가 조합원만이 아니라 비조합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소규모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지 않더라도 프랑스나 호주 등에서는 교섭 결과가 동일 산업이나 업종 노동자에게도 적용되고 있으며, 스웨덴 등은 산업별 노동조합이 소규모 사업장까지 폭넓게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다.
넷째,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종합적인 전략의 부재다. 정부는 양질의 노동시장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궁극적인 책임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2002년 비정규직 통계 정비와 특고 보호 관련 대책 수립, 2007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 2014년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의 규모를 줄이거나 노동시장 내 차별을 완화하지 못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종합적인 대책이 중요한데, 지나치리만큼 사용자를 고려하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결과를 크게 우려했기 때문이다.
초기업 교섭 확대 통한 부의 재분배 실현도 대안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근본대책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동안 근본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것은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제대로 시도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첫째, 동일가치 노동 동일임금의 법제화와 직무가치를 반영한 임금체계를 안착시켜야 한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법제화는 당장 임금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은 아닐지라도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임금에 대안적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나아가 직무가치를 바탕으로 한 임금체계는 직무 난이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맞는 임금체계를 개발하는 것인데, 노사의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둘째, 초기업 교섭의 확대를 지원해야 한다. 임금격차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교섭을 통한 부의 재분배를 실현하는 것이다. 초기업 교섭은 같은 업종과 산업 내 임금의 평준화를 이룰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건설이나 화물연대 안전운임제, 공공부문인 교육공무직 등에서 초기업 교섭이 활용되고 있다. 초기업 수준의 교섭은 사용자의 개념을 사업자 단체 등으로 확대해 추진할 수도 있다. 이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제30조3항)을 통해 초기업 교섭을 지원하는 내용이 명시된 만큼 정부는 초기업 교섭을 확대하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셋째, 산업정책과 노동정책의 병행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산업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임금격차 축소는 기업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비용 지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업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대안을 내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따라서 기업을 설득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축소하기 어렵다. 오히려 정부가 정책 설계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이 경쟁·대립하지 않도록 국정 목표를 명확하게 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소와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통합적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