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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워라밸 중요해진 지금, 유연한 근무방식의 확산 노력 필요
손연정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2024년 05월호
 

최근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와 그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에 큰 위기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정부가 저출산 현상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선 지 20여 년이 됐지만 결혼과 출산을 기피 또는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경제 구조와 인식으로 저출산 현상은 계속해서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최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이 일·생활 균형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며 오랜 기간 한국 사회에서 지속돼 온 장시간 근로의 개선 및 근로자의 시간 주권 확립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더욱 커지고 있다. 

OECD 평균보다 연간 155시간 더 일하는 대한민국 

일·생활 균형이 우리 노동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고 최근 이에 대한 논의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사회적 관심에 비해 한국의 일·생활 균형 수준은 현재까지 매우 초라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2023년 기준 국내 취업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1,874시간으로 OECD 국가 평균인 1,719시간보다 155시간이 많다. 국가 간 국민들의 행복도 비교에 자주 활용되는 OECD ‘더 나은 삶 지수’에서도 2022년 기준 한국은 38개국 중 32위를 기록했으며, 특히 주관적 지표인 삶의 만족도(2019~2021년)는 10점 척도에서 5.9점으로(OECD 평균 6.7점) 최하위권에 속해 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초저출산 현상은 이러한 경제·사회 여건 속에서 개인들이 합리적 선택을 한 총체적 결과임을 생각할 때, 저출산 대응책의 열쇳말은 개인의 ‘삶의 질 보장’이 돼야 함을 알 수 있다.

일·생활 균형은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기본 전제라는 점에서 주요한 국정 의제로 다뤄져야 마땅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고용노동정책에서 일·생활 균형을 위한 뚜렷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해 3월 근로시간 개편방안을 발표하며 노동자의 시간 주권 확보를 강조했지만 연장근로 단위를 유연화하려는 계획이 ‘장시간 집중 노동’을 가능케 한다는 논란이 일면서 그해 11월 현행 주52시간 틀은 유지하되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노사정 대화를 통해 근로시간을 유연화하는 근로시간 개편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노사정 대화라는 단서를 달고 일부 업종과 직종으로 범위가 좁혀지긴 했지만, 향후 주52시간제 유연화의 확산을 야기하고 현실에서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하다. 한편 지난 3월 주52시간 상한제가 합헌이라고 판단한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는 장시간 노동 관행을 깨기 어려운 사회 구조, 사용자와 노동자가 대등하게 협상하기 어려운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주52시간 상한제의 강제 적용이 필요하다고 적시한 바 있다. 이러한 헌법재판소 판결의 배경에는 한국의 장시간 노동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고 해석된다. 일·생활 균형 실현을 위해서는 적정한 노동시간을 유지하고 나머지 시간을 가정생활과 여가활동에 적절히 배분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 확보가 기본 전제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일·생활 균형은 워라밸이라는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한국인의 삶의 지향점이 바뀌고 있는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일·생활 균형 실현을 위한 정책의 비전, 목표, 계획 및 지침을 명확히 설정하고 지속적·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법·제도의 개선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먼저 근로시간 제도와 관련해 근로자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서 근로일 간 최소 휴식시간 제가 일반적으로 도입돼야 한다. 또한 출퇴근시간 기록 의무를 도입해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자의 실근로시간을 면밀히 기록·관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용자의 근로시간 규제 준수 의식을 높이고 근로시간에 대한 근로감독을 용이하게 해 실근로시간 단축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근로자의 생활시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근로시간 이외의 시간에 문자메시지, SNS 등을 통한 업무 지시를 제한하는 연결차단권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공짜 야근’과 과로의 주범으로 지적되는 포괄임금에 대한 제도 개선 및 법적 규제방안도 논의돼야 할 것이다.

과정에 대한 통제보다는 결과를 강조하는
직장문화 구축 필수


일·생활 균형 실현을 위해 근무시간과 장소에 있어 근로자의 재량권과 통제권을 확대하는 유연한 근무방식의 확산 노력도 필요하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유연근무제의 긍정적 효과가 실증적으로 검증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들은 유연근무제 도입에 미온적이다.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임금근로자의 유연근무제 활용률은 2016년 4.2%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2021년 16.8%까지 증가했으나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인다. 한편 2023년 조사에서는 현재 유연근무제를 활용하지 않는 임금근로자 중 47%가 유연근무제 활용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생활 균형의 증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유연근무제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에 따라 계층화돼 있다는 사실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유연근무제 활용 근로자 가운데 상당수는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로 나타나 2차 노동시장에 속한 근로자들에게는 유연한 근무방식에 대한 선택권이 대단히 제한적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유연근무제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유연근무제가 일·생활 균형 실현을 위한 제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들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업무 과정에 대한 통제보다는 업무 결과를 강조하는 직장 문화 구축이 필수적이며, 조직 내 신뢰 구축이 전제돼야 유연근무제의 도입·유지가 가능하다. 둘째, 자녀가 있거나 돌봄 책임을 지고 있는 근로자들의 경우 일과 생활의 경계 없이 이중적 부담을 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촘촘한 양질의 돌봄서비스 제공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유연근무제가 노동자 스스로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늘리는 자기 착취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유연근무제의 낙인효과를 막고 유연근무제가 근무방식의 표준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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