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불황의 터널을 지나 비상하려 하고 있다. 성장의 축을 수출과 내수로 나눠볼 때, 이미 수출 경기는 회복 기조로 접어들었다는 점에 이견은 없다. 내수도 지난 1분기 GDP 통계에서 보면 소비 부문은 예상 밖으로 선전하고 있다. 1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전분기 대비 0.8%로 2022년 3분기 이후 가장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다만 소비 회복세가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투자 경기는 여전히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전분기 대비 -0.8%였다. 건설투자는 전분기 대비 2.7%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으나, 최근 건설수주가 부진한 상황에서 건설수주와 건설기성(건설투자)의 시차를 고려할 때 곧 감소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내수 회복의 세 가지 걸림돌
내수 회복의 걸림돌이 되는 요인은 고물가, 고금리, 불확실한 시장 수요다. 우선, 고물가 요인은 소비 활성화에 치명적이다. “몇 년 전에는 마트에 가서 10만~20만 원이면 카트에 가득 담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금액으로는 카트 바닥에 겨우 깔릴 정도”라는 소비자들의 푸념이 이를 대변한다. 그런데 일부 공산품을 제외하고 물가 자체가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부가 말하는 ‘물가안정목표’는 물가상승률의 하락이지 물가의 하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소비 회복은 지금의 물가 수준에 가계가 적응하는 시간에 달려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서울 지역 자장면 한 그릇의 평균 가격은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2월 5,154원에서 2024년 4월 7,146원으로 약 38.6% 올랐다. 만약 같은 기간 소득이 38.6% 상승했다면 자장면을 먹는 횟수는 줄어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기간 국민의 소득이 그만큼 늘지 않았다. 당연히 자장면을 사 먹는 횟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를 전체 소비활력으로 확대하면 실물 지표인 소비가 좋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비가 살아나려면 높아진 물가, 즉 7천 원이 넘는 자장면 가격을 정상 가격이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소비의 가격 민감도가 낮아져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그때까지는 과거와 같은 저물가 시대의 소비활력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둘째, 고금리는 소비와 투자 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금융 자산 중에서 예금 형태의 자산을 가진 가계에는 지금의 고금리가 더없이 고마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계는 부채를 갖고 있으며 자산이 부채보다 많은 가계도 예금보다는 주식, 채권, 부동산 등의 비중이 높아 현재와 같은 고금리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즉 고물가로 실질구매력이 떨어진 가계에 고금리의 충격이 더해지면서 소비가 회복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고금리의 폐해는 투자에 훨씬 치명적이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자기 돈으로만 투자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그리고 신기술·신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산업 지형이 급변하는 산업 대전환 시기라는 것을 고려하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가 기업에 필요할 것이다. 이는 금융·자본 시장에서 충분한 자금 조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고금리 상황에 직접금융시장은 물론 간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의 이동이 원활히 이뤄지기는 어렵다. 고금리란 유동성의 기회비용이 높다는 뜻인데, 그 기회비용을 상쇄할 수준의 확실한 투자 수익 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글로벌시장이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의 두 축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은 금리를 낮추고 있고, 일본도 8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끝냈지만 완화적 통화정책은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보다 금리 수준이 높지만 정부 재정지출로 기업들의 신산업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은 고금리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에 손을 놓고 있다.
마지막으로, 불확실한 시장 수요가 소비와 투자에 심리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출 경기가 좋아지고 있지만 완연한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 경기의 회복이 내수로 확산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미국의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과 트럼프 후보가 경쟁적으로 중국 견제 정책을 내놓고 있어 글로벌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다.
국내의 경우 고용시장은 아직 괜찮은 편이나 질 좋은 일자리가 크게 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내수시장이 자력으로 회복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하반기 경제 환경이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가계가 지갑을 닫고 기업이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 투자 지원에 대한 정치적 합의 필요
내수 회복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한다면 처방은 간단하다. 금리를 내리고 재정을 풀면 된다. 그러나 현재 통화·재정 정책의 변화를 통해 유동성을 확대하기는 쉽지 않다. 글로벌시장의 동조성이 강한 데다 미국 달러화 중심의 금융시장 구조가 매우 견고하기 때문에 그 어느 나라도 독립적인 통화·재정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
따라서 미국이 현재의 긴축적 거시정책에서 완화적 정책으로 기조를 바꿔야 우리의 경제에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정책 기조의 변화가 언제 시작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미시적인 방법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소비 측면에서는 최근 호조의 원인을 세심히 살펴보며 활력이 강한 부문에 대한 세제 지원 등의 혜택을 통해 실질구매력을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경제가 어려울 때 상대적으로 고통이 큰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 안전망 강화 등을 통해 소비 저변의 위축을 막아야 한다.
아울러 경제가 호황이든 불황이든 미래 성장잠재력에 대한 확충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이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정당 간의 좁혀지지 않는 정치철학적 이견으로 기업 투자활력을 높이기 위해 만든 여러 경제정책의 제정 또는 개정이 보류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과 민주당이 기업 투자에 대해서만은 ‘made in America’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도 기업 투자에서만큼은 정치철학을 떠나 미래 세대를 위해 지금 세대가 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의무’임을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