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우리 수출에 훈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IT 경기 위축, 중국 경기 회복세 둔화 등으로 팬데믹 이후 다시 한번 수출 감소를 경험했지만, 빠르게 회복하는 추세다. 매일 수출입 통계를 관찰하는 필자는 7개월 연속 플러스 성장 곡선이 반갑다.
수출 회복세가 가장 두드러진 품목은 단연 반도체다. 전체 수출의 약 19%를 차지하는 반도체는 4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52% 증가하며 수출 경기를 주도했다. 올해 AI산업이 지속해서 확장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우리 기업이 선두를 지키고 있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반도체가 사상 최대 수출실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지난해 역대급 수출을 이뤄낸 자동차는 올해 역기저 효과, 전기차 캐즘(chasm;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소개된 뒤 대중화되기까지 수요가 정체되는 현상) 등의 영향으로 역성장 우려가 있었지만 전년 동기 대비 4.7% 증가하며 선방하고 있다. 그 외에도 선박(+49.1%), 디스플레이(+13.4%), 컴퓨터(+36.4%) 등 우리 13대 주력 품목 중 9개가 전체 수출을 주도했다. 그리고 그 반등 속도 역시 주요 무역경쟁국 대비 빠른 편이다.
중국, 화학·철강·자동차 등에서 수출자립도 커지고
IT기술에서도 우리보다 앞서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서 수출을 빼놓을 수 없지만 올해는 유독 그 역할과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내수와 소비가 아직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한 상황에서 수출이 원톱으로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올해 수출 목표를 7천억 달러로 다소 공격적으로 잡은 것도 그 일환으로 풀이된다.
현재까지의 수출 흐름으로 볼 때 7천억 달러 달성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지난해 대비 10.8%의 증가율이 필요한데 올해 4월까지의 수출증가율이 9.6%다. 다행히 올해 대외여건이 그리 나쁘지 않다. IMF, WTO 등 국제기구들은 올해 세계 무역성장률이 지난해 대비 크게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OECD는 경제전망에서 한국과 중국, 미국, 유로존 등 주요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상향 조정했다. 세계경제가 역동적일수록 우리 수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안심할 수만은 없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미중 갈등과 세계경제 블록화, 중국의 첨단산업 굴기, 미국 대통령 선거 등 수많은 불확실성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어느 하나 만만치 않다. 첫 번째 불안 요인은 지난해 말부터 이어오고 있는 중동 지역의 긴장이다. 특히 지난 4월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로 유가가 한때 배럴당 90달러까지 치솟았고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에 근접하기도 했다. 최악의 사태는 면했으나 호르무즈해협과 홍해를 둘러싼 중동 지역 갈등은 여전히 세계경제의 위협 요소로 남아 있다.
두 번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성 없는 무역전쟁’이다. 최근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 태양전지, 반도체 등 첨단 공급망 관련 품목에 현행 대비 최대 4배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비시장적 불공정 관행이 미국경제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이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이번 조치가 촘촘히 얽혀 있는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 위험도 있다. 한편 상대국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법안을 통과시킨 중국의 반격 수위와 그 여파도 세계 교역에 불확실성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압박 역시 우리 업계에는 큰 부담이다.
세 번째, 중국의 기술자립은 중장기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된다. 미국의 견제에도 중국은 자국의 첨단산업을 상당한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2010년대 후반부터 중국의 수입물량지수가 실질 GDP를 크게 하회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경제성장을 위해 수입에 의존하던 것들을 자체 조달로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최근 화학·공업 제품, 철강·금속, 자동차, 전기·전자 등에서 중국의 수출자립도가 증가했고 무역수지도 개선되는 추세다. 첨단반도체와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친환경선박 등 일부를 제외하면 중국의 기술력은 우리를 따라잡았거나 이미 앞서고 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은 2022년 기준 중국의 IT기술 수준이 한국보다 앞선다고 평가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올 11월에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와 그 결과는 우리 무역업계에 적잖은 변수가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와 과학법」, 친환경·보조금 정책, 동맹국과의 공급망 구축 등이 통상정책의 핵심인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과 친환경 정책 폐지, 10% 보편관세 부과, 극단적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 중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국내 산업계의 이해득실이 엇갈릴 전망이다.
특히 변칙 플레이에 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면 ‘윈-루즈(win-lose) 게임’을 위해 자국 무역 장벽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산 수입 확대,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 등을 한국에 요구할 수도 있다. 물론 대선 결과에 따른 영향은 당장 올해보다는 내년 이후 본격화될 것이다.
수출이 한국 경제성장의 주요 엔진으로서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비교적 명확하다. 글로벌시장에서의 핵심 키워드인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고 강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첨단산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선 가운데 한국도 R&D 투자, 금융·세제 지원 확대, 국내 기술인력 양성 및 해외인재 유치 등 미래산업 육성과 기업 친화적 경영 여건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기술경쟁력 확보에는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핵심원료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과도한 우리에게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 대체재 개발 등이 시급한 이유다.
급변하는 대외 무역환경 속에서 수출의 체질개선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이 뒷걸음질할 때 자동차가 전체 수출을 이끈 것처럼 앞으로 제3, 4의 ‘신수출성장동력’을 키워야 한다.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대비한 민관 수출협력 체계 재정비도 필수다. 정부와 무역 유관기관, 산업계가 팀을 이뤄 통상현안에 적극적이고 일관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내수와 소비 회복이 더딘 가운데 올해 한국경제는 수출 성장세에 의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사상 최대 수출실적 달성과 질적 성장을 위한 무역업계의 도전은 더욱 의미가 크다. 이 과정에서 수출이 우리 경제와 사회 전반에 온기를 불어넣는 활력소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