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지구온도 상승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 평균온도는 19세기 중반 산업혁명기와 비교해 섭씨 1.48도 올랐다. 그런데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를 기준으로 하면 자그마치 1.64도까지 상승했다. 과학자들이 예상하는 1.5도 임계점을 넘나드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1만여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가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를 지질연대기상 홀로세(Holocene)라고 부른다. 고대의 기후 상태와 변화를 연구하는 고기후학자들은 지금의 지구온도가 홀로세 기간 중 가장 높다고 말한다. 또한 현재의 탄소배출 추세를 유지한다면 2100년 지구의 평균온도는 지난 100만 년 중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200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지구온도는 섭씨 1.5도 상승을 향하고 있으며, 같은 기간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ppm에서 427ppm으로 증가했다. 빙하를 관찰하는 기후연구자들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550ppm을 넘어서는 순간, 지구상 모든 빙하가 녹아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앞에 놓인 비용청구서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급격한 기후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제공하고 있다. 2014년 IPCC가 펴낸 제5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인간의 경제활동이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인자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extremely likely)’하며, ‘거의 확실’하다는 표현은 확률 95% 이상을 의미한다고 적시했다. 2021년 제6차 보고서에서는 99% 이상 확률을 시사하는 ‘자명하다(unequivocal)’라는 표현으로 강도를 높였다.
산업혁명 이후 약 200년 동안 세계경제 규모는 100배 커졌다. 근대 인류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한 물적 토대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라는 화석연료의 대량 생산과 소비였다. 인류의 축복이었던 화석연료가 어느 순간 인류의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인간의 경제활동이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는 명제가 ‘참’으로 규명된 이상, 한국 경제학계가 기후위기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경제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연금 고갈의 파국적 상황을 우려하듯이, 기후변화로 인해 한국경제에 닥칠 거대한 위험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리고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
기후변화의 파급력은 환경과 경제가 얼마나 밀접히 맞물려 있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어느 한쪽만 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수단은 두 가지다. 첫째, 뜨거워진 지구에 맞춰 살아가는 적응(adaptation)이고, 둘째, 기후변화의 원인 물질인 온실가스를 줄이는 완화(mitigation)다.
적응은 기후피해가 야기하는 물리적 리스크에 대한 대응이다. 전 세계적으로 폭염과 가뭄, 홍수와 산불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가 영남 지역을 강타하면서 포항시를 가로지르는 냉천이 범람했다. 상류에서는 주거지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기면서 비극적인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하류에서는 우리나라 대표 제조 기업인 포스코 공장 일부가 4개월 동안 홍수 피해에 노출됐다. 협력업체를 포함해 2조2천억 원에 달하는 매출 손실을 겪어야 했다. 물리적 리스크는 국가·지역·기업·개인 등 전 단위에서 발생할 수 있다. 극한기상 현상에 따른 다층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기후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완화는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환 리스크와 직결돼 있다. 이산화탄소 감축을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실현하는 국가와 기업이 있는 반면, 성장경로 특성과 장기간의 정책 실패로 인해 많은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발생하고 갈등을 피하지 못하는 경제도 존재한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에너지 집약적 제조업을 유지해 왔으면서도 탄소감축을 유도하기 위한 전기·에너지 가격정상화는 한 번도 시행하지 않았다. 우리 기업에 에너지 고효율 공정기술을 개발할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우리 국민에게 에너지 절약의지가 없어서도 아니다. 한마디로 그럴 유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환 리스크가 극대화된 비용 청구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제는 식량과 에너지 문제를 아우르는
기후 안보 위협에 대응해야
오늘날의 국가 안보는 군사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이른바 ‘신안보(emerging security)’ 이슈가 커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기후환경 변화에 따라 사이버 테러, 감염병 팬데믹, 식량 및 에너지 위협, 난민 문제가 지정학적 요인과 맞물려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기후위기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기후 안보’다. 기후 안보의 핵심 분야로 식량 안보와 에너지 안보를 들 수 있다. 식량 문제는 적응정책과, 에너지 문제는 완화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IPCC 최신 보고서에서 제시한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에 따르면 향후 10년 이내에 전 세계 농업생산성이 50% 급락할 위험이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는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된다. 개도국에서의 식량 공급 절대 부족과 국제 농산물 가격 폭등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등장한 용어가 식량발 기후 인플레이션(climateflation) 혹은 식량 인플레이션(food inflation)이다. 올 3월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참여한 학술연구에서는 2035년까지 예상되는 다양한 지구온도 상승을 전제로 전 세계적으로 식량 및 헤드라인(전체 항목) 인플레이션 상승이 각각 연평균 0.92~3.23%p, 0.32~1.18%p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식량 부문의 경우 평균값을 기준으로 매년 2%p 넘게 물가상승률이 오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곡물자급률이 20% 미만으로 식량 안보가 취약한 나라 중 하나다. 특히 축산 사료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민 1인당 육류 소비가 연간 60kg이 넘는 나라에서 기후위기는 바로 식량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 앞으로 우리 국민의 영양과 건강, 생명을 위해 촘촘한 농축산물 공급 전략을 수립, 추진할 필요가 있다. 과수 재배지 변화에 따른 기후적응형 품종 개발은 물론, 대체육과 인공육, 곤충의 식량자원화와 스마트팜 확대 등 모든 가용 기술과 정책을 점검하고 평가해 전략산업화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은 화석연료 위기 시대에 가장 합리적이고 검증된 에너지 정책이다. 이에 전 세계가 태양광과 풍력 설비 확대를 국가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이 신규 설치한 태양광 발전 설비용량만 217GW다. 같은 해 전 세계 신규 설비의 52%가 중국에 설치됐다. 반면 우리나라의 누적 태양광 설비용량은 25GW에 불과하다. OECD 38개국 중 대한민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0% 미만으로 압도적인 꼴찌다. 격차가 커도 너무 크다.
탄소중립 전략의 성패에 따라 우리 경제의 생존과 발전이 결정된다. RE100, ESG 경영,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화하면서 향후 10년 내 탈탄소 무역규범이 새로운 글로벌 시장 질서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급격한 전환은 한국 경제와 기업에 실재하는 위협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