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 정부는 ‘연금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전통적 모수개혁 방식인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조정 외에도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인상, 자동조정장치 도입, 의무가입 상한연령 연장, 국가지급보장 명문화, 크레딧 확대 그리고 퇴직연금을 비롯한 사적연금 활성화를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정부 연금개혁안의 내용과 주요 쟁점들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인상,
형평성 제고 의견 있지만 가입 사각지대도 우려
정부는 현행 9%인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13%로 4%p 인상하고, 명목소득대체율을 42%로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오랫동안 9%를 유지했는데, 이번 개혁을 통해 단계적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보험료율 인상은 그 폭을 두고 이견이 크지만 보험료율 인상의 물꼬를 튼 것은 의미가 있다. 다만 보험료율 인상은 소득대체율 조정과 일련의 조합을 이루게 되는데,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특히 소득대체율 조정을 두고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정부 연금개혁안에서 보험료율 인상, 소득대체율 조정 같은 모수 조정과 의무가입 상한연령 연장은 지난 4, 5차 연금개혁 논의 때도 정책 당국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논의돼 온 사안이다. 그에 반해 세대별(연령별) 보험료율 차등인상(정부 자료에는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속도 차등화’로 나와 있음)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종료 때까지 다뤄지지 않은 사안이었다는 점에서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인상은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할 때, 2025년 기준 50대인 가입자는 매년 1%p, 40대는 0.5%p, 30대는 0.33%p, 20대는 0.25%p씩 인상하는 것으로, 수급 시점에 가까운 세대(가입자)에게 단기간에 더 큰 폭의 보험료율 인상을 적용하는 것이다. 즉 출생코호트(cohort)에 따라 보험료율 인상의 속도를 다르게 적용하는 것인데 공적연금이 성숙한 해외 국가에서는 실행한 적이 없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 같은 방식이 청년을 비롯한 후세대 부담을 낮추게 될 것이라고 봤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세대 간 형평성 제고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같은 연령 내에서도 소득, 노동시장 지위 등 경제적 상황이 이질적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연령기준만으로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자칫 가입 사각지대 확대 등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자동조정장치는 인구구조 변화, 성장률 등 일국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급여를 자동적으로 조정하게 하는 것이다. 정부는 기대여명이나 가입자 수 증감 등을 연동해 급여액 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자동조정장치는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장치로서 이미 일본 등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에서 도입,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공적연금을 통해 노인빈곤을 예방하고 있고 은퇴 후 소득유지가 어려운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장기적 관점에서 검토될 수 있으나, 가까운 미래에 실행하는 것은 그만큼 우려가 크다. 서구 국가들이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게 된 주요 배경은 꾸준히 보험료율을 높여왔음에도 그것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며,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한 이후에 도입했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맥락상 차이가 있다.
의무가입 상한연령 연장 검토하고
가입자 신뢰 제고 위해 국가지급보장 명문화 추진키로
정부는 현재 만 59세인 의무가입 상한연령을 연장해 수급 개시 연령(만 65세)과 일치시키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고령자 경제활동참가율은 매년 높아지는 추세이며, 60세 이후 임의계속가입자 비율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이 방안을 고령자 고용 여건 개선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혔으나, 가입종료와 수급 시점 차이는 향후 더 크게 벌어질 예정이므로 적극적으로 제도개선을 고민해야 한다. 더 오래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고령자 고용 여건은 면밀하게 개선해 나가되, 60세 이후 가입을 계속 이어나가게 하는 조치는 좀 더 일찍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 개혁안은 제도 신뢰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국가지급보장 명문화를 포함했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이 법으로 정부보전금 투입 의무를 명시한 것을 들어 국민연금의 지급보장 명문화 요구는 계속 있어 왔다. 기금 고갈 가능성에 따른 제도 불신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 같은 법 규정 정비는 가입자의 신뢰 제고를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여성, 청년의 가입기간 확대를 위해 출산크레딧, 군복무크레딧을 강화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특히 출산크레딧 확대는 현재 둘째 자녀부터 적용되는 것을 첫째 자녀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여성의 개별수급권 확보 측면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이번 개혁안은 퇴직연금 내실화 등 사적연금 활성화도 포함하고 있다. 퇴직연금은 임금근로자 개인의 노후소득에서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데도 정치권과 정책 당국에서 적극적으로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영역이다. 따라서 중층적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퇴직연금의 의무화와 같은 내실화를 논의하고, 개인연금까지 포함한 사적연금에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시장 왜곡을 정부가 사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퇴직연금의 적립금 누수를 막고 일시금 수급을 연금화하기 위한 조치 역시 중요하다.
한국에서 연금개혁은 정치권과 전문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됐고, 특히 올해는 최초로 연금개혁 공론화를 실시하는 등 사회적 합의와 절차에서 의미 있는 성과들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 연금개혁안이 일부 실효성 있는 개혁 조치들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인상이나 자동조정장치 도입과 같이 사전에 밀도 있게 논의되지 않은 의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논란과 우려가 큰 상황이다. 앞으로의 개혁 논의는 사회적 합의의 절차들을 존중하고, 취약집단의 급여 향상 조치들에 훨씬 더 적극적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