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트럼프가 중국을 상대로
관세전쟁을 시작한 2018년 수준으로, 관세인상의 효과가 불확실함에도
트럼프는 관세에 거의 병적으로 집착해
보조금에 기댄 신산업정책으로 제조업 부활을 꿈꾸는 미국
그리고 이를 따라 하기 바쁜 EU, 일본
2025년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단어는 무역전쟁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10~20%, 중국에는 60%의 관세 부과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복귀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고관세 장벽은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을 간신히 빠져나온 세계경제를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내몰 것이다. 1930년대 경쟁적 관세장벽 쌓아 올리기의 비극적인 종말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다시 미국이 위대해지길 바라며
동맹국에조차 고관세 부과하는 트럼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뉴딜정책을 내걸었던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2016년 오바마 대통령까지 80여 년 동안 미국 대통령들은 관세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며 추가적인 관세인하를 위한 국제협상을 추진하려고 노력했다. 미국의 번영과 세계의 번영에 도움이 된다는 신념이 그들을 이끌었고 실증적인 체험이 이를 뒷받침했다. 2017년 집권한 트럼프는 이런 합의를 깬 최초의 이단아였다. 놀라운 점은 2021년 집권한 민주당의 바이든 대통령이 전임자인 공화당의 트럼프가 쌓은 중국을 겨냥한 고율의 관세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이다. 2025년 백악관으로 귀환할 트럼프는 더 전면적이고 높은 관세장벽을 예고하고 있다.
관세장벽을 쌓으면 무역수지 적자가 해소되고, 외국기업들이 고관세를 피해 미국에 투자해서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까? 트럼프가 쌓고 바이든이 유지했던 대중국 고관세에도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2023년 약 3,400억 달러였다. 트럼프가 중국을 상대로 관세전쟁을 시작한 2018년과 거의 변화가 없다. 중국도 보복관세로 맞대응했고, 가격경쟁력이 있는 중국 제품은 고관세에도 미국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누렸다. 관세인상은 수입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가격 부담이 전가되고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진다. 관세인상을 견디지 못한 외국 수출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경우도 있겠지만 얼마나 의미 있는 숫자일지 의문이다. 트럼프가 공약한 10~20% 관세가 그런 효과를 만들어낼지는 가보지 않은 미래의 실험이다.
관세인상이 가져올 불확실한 경제적 효과에도 트럼프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의 관세에 대한 집착은 거의 병적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신을 ‘관세에 홀린 사람(Tariff Man)’이라고 불렀고, 이번 유세 과정에서는 “관세는 영어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까지 했다. 세계는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투하했던 트럼프를 기억하고 있다. 그 근거는 1962년 「무역확장법」의 국가안보 조항.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최고조로 치달을 때 만들었던 법을 21세기에 다시 소환한 셈이다. 동맹국이 수출하는 철강이 어떻게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느냐는 비난과 반박을 트럼프는 비웃었다. 백악관에 푸른색 작업복을 입은 철강 노동자들을 초대해 수입 철강의 고관세정책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제는 트럼프가 자신의 1기 집권 때 실행하지 못했던 자동차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독일, 일본, 한국 등 주요 자동차 수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트럼프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전기차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중국은 어떻게 나올까. 관세와 보복관세는 무역전쟁을 불러올 것이다. 협상으로 가기까지 서로 밀리지 않으려 기세 싸움을 하는 동안 세계경제는 혼돈으로 빠져들 것이다.
트럼프가 국제무대에 처음 등장했던 2016년 말과 다시 권좌에 귀환하는 2024년 말의 세계 정치경제 지형은 다르다. 미중 패권경쟁은 트럼프 1기와 바이든을 거쳐 이제 중반전으로 치닫고 있다. 신냉전이란 단어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노정된 공급망의 교란 속에서 중국에서 조립해 완성하는 제품에 의존하는 전략의 치명적 위험성을 경험한 미국은 서둘러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시작했다. 핵심은 중국의 기술굴기 저지, 그중에서도 반도체다. 20세기 후반 조립공정을 임금이 싼 아시아로 이전하고 원천 기술과 디자인만 가지고 글로벌 공급망을 통제하던 미국은 자국 내에 조립공장을 확보해야만 패권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보조금으로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개도국들의 산업정책을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정책이라고 비웃던 미국이 외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보조금을 쏟아붓기로 작심했다. 이른바 신산업정책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미 의회가 합작한 「반도체법(CHIPS Act of 2022)」,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보라.
보조금에 기댄 신산업정책으로 제조업 부활을 꿈꾸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EU, 일본 모두 따라 하기 바쁘다. 트럼프는 보조금이란 당근 대신 관세라는 채찍으로 외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든다고 장담했지만, 말만 요란하고 실행은 미약한 것으로 그칠 수 있다.
상호의존의 무기화 시대 막을 열 것인가
트럼프가 총력을 기울여 막으려는 중국. 그가 상대해야 하는 2025년의 중국은 2017년의 중국이 아니다. 침체 국면으로 들어선 중국경제의 거시적 위상은 금방이라도 미국을 따라잡을 듯하던 2017년의 기세만큼은 못하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도 첨단 기술 분야에서 놀라운 도약을 거듭하고 있다. 다만 미국이 사활을 걸고 있는 반도체에서는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중국의 기술굴기를 저지하기 시작한 것은 트럼프였다. 그는 5G 통신시스템의 선두주자로 부상하던 화웨이를 미국시장에서 차단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중국은 보복관세 폭탄으로 맞대응하는 수준을 넘을 수 있다. 트럼프의 표밭을 집중 겨냥해 농산물에 보복관세 부과, 희토류 등 핵심 원자재 수출통제, 미국 기업과 개인에 대한 제재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무역이 확대돼 국가 간 상호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양국 관계가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진화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상호의존의 무기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열 것인가.
파격과 힘의 논리에 의존하는 일방주의를 사랑하는 트럼프는 파괴적인 관세인상 공약을 그대로 이행할 것인가. 주요 상대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무역전쟁이 격화되는 경우 글로벌 공급망의 분절화는 얼마나 가속할 것인가. 세계경제는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 불확실성은 이어지고, 그 충격은 상상하기 두렵다.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미국과 중국에의 무역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들에 무역전쟁의 먹구름은 요란한 천둥과 번개로만 그치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