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전망하고 한국의 대응 방향을 모색해 보자. 먼저 재정정책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대규모 재정적자를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 직전 한국은행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민주당의 해리스 후보가 당선될 경우 향후 10년간 재정적자가 3조5천억 달러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반면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에는 이 숫자가 7조5천억 달러로 더 커질 것이라고 봤다. 이는 주로 트럼프의 대규모 감세 공약 때문인데, 그가 공언한 관세 증가분을 감안해도 적자를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2기, 대규모 감세로 재정적자 커질 것···
트럼프가 원하는 저금리 정책엔 제약 요소 많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화정책은 재정정책보다 더 불확실해 보인다. 트럼프가 저금리를 선호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저금리가 실현되는 데는 여러 제약이 있다. 트럼프의 대표 공약인 관세 인상과 불법 이민자 추방은 각각 수입물가와 노동 비용을 상승시켜 미국의 물가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 물가가 안정되지 않는 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트럼프가 원하는 만큼 금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트럼프는 미국 내에서 규제 완화로 석유 시추를 확대해 에너지 비용을 내림으로써 물가를 잡겠다고 했으나 그 효과가 충분할지는 미지수다. 또 연준이 금리를 대폭 내린다고 하더라도 재정적자로 국채 발행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시장금리가 내려가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정책조합은 코로나19 이전, 길게 보면 1990년대 이후의 ‘대안정기(Great Moderation)’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즉 보수적 재정정책과 완화적 통화정책의 조합과는 사뭇 다르다. 2022년 10월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선진국들이 과거와는 반대로 확장적 재정정책과 긴축적 통화정책의 조합을 활용하는 상황을 보면서 ‘정책 대역전(great policy reversal)’이 일어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주요국에서 코로나19 대응과 에너지 비용 상승에 따른 보조금 지급 등으로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는 한편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를 올리는 방식의 정책조합이 광범위하게 관찰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 대역전 현상은 끝나고 다시 과거의 통화완화-재정긴축 기조가 재현될 것인가. IMF는 지난해 10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주요국이 통화완화-재정긴축 정책 기조로 전환(pivot)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특히 재정긴축에 대해서는 ‘긴급히 긴축(tighten urgently)’하라고 할 정도로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권고를 따르거나 따르겠다고 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IMF의 재정전망을 보면 주요 선진국의 GDP 대비 구조적 재정적자 비율은 2019년보다 2029년에 오히려 더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의 경우에도 이 비율이 여전히 6%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IMF는 주요국에 재정긴축이 시급하다고 권고하면서도 이들이 재정적자 비율을 낮출 것으로 예측하지는 않고 있다.
통화정책 부문에서도 주요국 명목금리는 내려가지만 인플레이션율이 더 많이 떨어지면서 실질금리가 오히려 더 높아지는 비재량적 긴축 상황이 발생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통화완화 기조가 실질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즉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은 쉽지 않고 재정이 큰 역할을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트럼프 2기에도 쉽게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과거처럼 작동해서 물가안정에 도움을 주지 않는 한 IMF가 바라는 방향의 정책 전환은 쉽지 않아 보인다.
환율 평가절하로 대응해도 관세 효과가 압도하면
수출 개선 어렵고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도
그러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정책 기조가 나타날 것인가. 여기서 중요한 변수는 관세전쟁이다. 만약 트럼프 2기에 실제로 관세전쟁이 격화하면 미국으로 수출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은 환율전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즉 관세로 높아진 수출 상품 가격을 환율 평가절하를 통해 다시 낮춤으로써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때 트럼프 정부가 환율전쟁 시도를 환율조작국 지정 등의 수단으로 막고자 한다면 환율 평가절하로 대미 수출을 늘리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과거에는 주요국이 통화완화와 재정긴축을 통해 ‘환율전쟁 모드’가 되면 한국이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환율 평가절하의 효과를 트럼프의 관세 부과 효과가 압도하게 되면 수출이 대폭 증가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대신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가 오르면서 내수가 위축되는 부작용은 커진다. 최악의 경우 수출은 늘지 않고 물가가 오르며 내수가 부진해지는 일종의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 거시경제의 안정적 성장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중국의 부진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압력이 약해지면 물가상승 압력은 완화될 수도 있겠지만 한국경제의 경기 하방 위험은 더 커진다고 볼 수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경제가 살기 위해서는 어떤 재정·통화 정책을 써야 할까. 미국과 엇갈리는 정책조합을 사용해 환율 평가절하와 수출 증대를 기대해야 할까. 아니면 주요국들처럼 재정을 확대해 내수를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할까. 만약 환율을 평가절하한 효과가 크다면 통화완화와 재정긴축, 즉 환율전쟁 모드로 수출을 크게 늘리면서 그 온기가 내수로 연결되도록 노력하는 정책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화의 후퇴 흐름을 감안할 때 수출드라이브 효과는 예전만 못할 가능성이 크고, 수출이 내수로 연결되는 낙수 효과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내수를 살리면서 수출의 질적 경쟁력과 기술력을 높이기 위한 산업정책을 펴는 것이 더 긴요해 보인다. 통화정책은 운신의 폭이 좁지만 거시경제 및 금융 부문의 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만약 트럼프 2기의 무역정책이 극단적이지 않고 한국의 대미 수출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으로 전개된다면 선택의 폭은 더 넓어질 것이다. 다만 그 경우에도 미국의 중국 견제에 따른 제약은 강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상황은 녹록지 않을 듯하다.
트럼프 2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경제가 성장해 왔던 방식이 근저에서부터 흔들리는 불확실성의 시기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에는 여러 제약이 가해지는 어려운 시기다. 이런 때일수록 쉬운 처방보다는 경제의 근본적인 경쟁력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