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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업이 연구하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잠재력도 깨어난다
이동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장 2025년 03월호
우리 경제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성장잠재력이 점점 약화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 그리고 지식을 활용한 기업 혁신을 촉진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혁신이란 연구개발(R&D)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쌓고 아이디어를 실현해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활동을 말한다. 혁신은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에 기여한다. 직접적으로는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생산과정을 개선함으로써 기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간접적으로는 기술발전으로 기대수익이 증가하면서 자본투자가 확대되고 신산업이 등장하며 글로벌 가치사슬이 재편되는 등 경제구조를 업그레이드해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R&D 지출 OECD 2위, 특허 출원 건수 세계 4위···
혁신활동 양적 성과에도 기업 생산성 크게 둔화


그동안 우리나라는 혁신활동 측면에서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R&D 지출은 GDP 대비 5.2%로, 2001년 2.3%, 2011년 3.6%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이스라엘(6.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또한 미국 특허청에 출원된 특허 건수도 꾸준히 증가해 2020년 기준 세계 4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렇게 혁신활동지표가 양적으로 개선됐음에도 기업의 생산성 성장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둔화한 상황이다. 필자가 참여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1~2010년 연평균 6.1%에서 2011~2020년에는 0.5%로 급격히 떨어졌다.

이처럼 2010년대 들어 기업의 생산성이 둔화한 주된 이유로는 혁신활동의 양적 성과와 달리 질적 성과가 미흡한 점, 중소기업이 혁신활동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 혁신잠재력을 가진 신생기업의 등장이 줄어든 점 등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우리나라 기업의 생산성이 둔화한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은 R&D 지출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많이 증가하면서 혁신활동의 양적인 성과는 늘었지만 질적인 성과는 개선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정 특허가 후속 혁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특허 피인용 건수(특허가 출원된 후 5년 이내 다른 연구나 특허에서 인용된 횟수)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2011~2015년 중 특허 한 건당 1.4건에 머물렀다. 미국(5.0건), 네덜란드(3.7건), 스위스(2.8건)와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특히 국내 대기업은 미국에 출원된 우리나라 특허의 약 95%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특허를 내고 있지만 특허 피인용 건수는 중소기업과 별 차이가 없다. 이는 대기업도 혁신의 질적 향상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의 질적 성과가 미흡한 이유는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 비중이 줄어든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응용연구는 혁신실적의 양을 늘리는 데 효과적인 반면, 특정한 응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기초연구는 혁신실적의 질적 향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대기업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기초연구의 성과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어서 기초연구가 대기업의 혁신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기초연구 지출 비중은 2010년 14%에서 2021년 11%로 감소했다. 이러한 변화가 혁신실적의 질적 개선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중소기업이 혁신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도 기업의 생산성이 낮아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최근 ‘한국기업혁신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혁신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외부자금이나 내부자금 부족을 가장 많이 꼽고 있다. 자금 부족으로 중소기업의 R&D 투자 증가세가 대기업에 비해 크게 더딘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혁신자금 조달이 어려운 이유는 다양하지만 특히 벤처캐피털에 대한 기업의 접근성 부족과 기업 인수·합병(M&A), 상장(IPO) 등 투자회수시장 발전 미흡이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혁신적이지만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벤처캐피털 투자를 얼마나 받기 쉬웠는지를 평가하는 벤처캐피털 접근성이 좋아질수록 기업의 특허 출원 건수와 피인용 건수가 늘어나며 양적·질적 혁신성과가 모두 개선된다. 특히 벤처캐피털 접근성과 혁신의 상관관계는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투자회수시장이 발달할수록 뚜렷한데, M&A 거래 및 IPO 공모 규모 상위 국가 그룹에서 양적·질적 혁신성과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투자주체별로는 민간 벤처캐피털이 정부 벤처캐피털보다 혁신실적을 높이는 데 더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대 들어 벤처캐피털 접근성이 낮아졌고 M&A와 IPO시장의 발전은 더디며 민간 부문의 역할 또한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혁신잠재력을 가진 신생기업의 시장 진입 감소도 기업생산성을 낮추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신생기업은 설립 초기 단계에서 공정 개선보다는 신제품 개발 같은 파괴적 혁신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대 들어 설립 직후 미국 특허를 출원할 정도로 혁신 역량을 갖춘 신생기업의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며, 따라서 혁신신생기업의 평균 업력이 높아지는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혁신신생기업의 진입이 줄어든 배경에는 혁신 창업가가 제대로 육성되지 못한 점이 크게 작용한다. 미국에서는 대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창업가들이 어릴 때부터 인지능력이 뛰어나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성향의 ‘똑똑한 이단아’ 유형이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똑똑한 이단아들이 창업보다 안정적인 취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실패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교육환경과 사회여건이 혁신 창업가 육성을 방해한 결과다. 우리나라 시가총액 상위기업 대부분이 1990년대 이전에 설립된 제조업 대기업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기초연구 강화, 벤처캐피털 전문성·접근성 제고, 
도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중요


이와 같은 우리나라 기업의 생산성 둔화 원인을 종합해 볼 때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혁신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후속 혁신 파급력, 범용성, 독창성 등과 밀접히 관련된 기업의 기초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 내부의 기초연구를 장려하는 인센티브 제공, 산학협력 확대, 혁신클러스터 활성화 같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 중소기업이 혁신자금을 더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벤처캐피털의 전문성과 접근성을 높이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투자금의 중간 회수가 원활하도록 M&A 및 IPO 시장을 활성화해야 하며, 민간 벤처캐피털이 더 적극적으로 혁신자금 공급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셋째, 똑똑한 이단아와 같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의 인재들이 혁신 창업가로 성장하려면 실패에 대한 사회적 리스크를 줄이고, 고수익·고위험 혁신활동을 장려하는 새로운 교육 및 사회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여러 번의 도전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구조로의 변화를 통해 창업에 대한 장벽을 낮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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