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은 타인에 대한 불신이 19.5%p 늘었고
입법부 신뢰 24.7%, 사법부 신뢰 48.5%로 정부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으며,
사회관계 측면에서도 자원봉사·기부단체 참여 비율이 6.8%로 크게 떨어지는 등
이견이나 이해관계 차이를 조정하면서 협력을 통해 경제적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낮아져
한국경제는 20세기 후반 수출 주도로 높은 성장률을 보였지만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성장 속도가 둔화했다. GDP 성장률의 변화를 분석하면 2000년 이후 5년 단위로 1%p 안팎씩 낮아졌다. 2000년대 전반 평균 5%대였던 성장률은 2000년대 후반 평균 4%대로 낮아졌고, 2010년대 전반 3%대까지 떨어졌다. 2010년대 후반 이후에는 연평균 성장률이 2%대까지 낮아졌고, 올해는 1%대 중반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타인 신뢰하면 사회 갈등 줄어 투자·생산 증가,
결국 사회자본 확충이 잠재성장률 높이는 중요한 조건
한국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가라앉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것인지 기로에 있다. 현재 한국경제의 내외적 조건은 녹록지 않다. 내적으로는 저출산 고령화의 부담 증가, 구조개혁의 지연, 산업 경쟁력 약화와 재정수지 악화에 직면해 있다. 외적으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임 이후 관세 압박이 심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조건에서 경제성장률을 장기적으로 높이려면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한다.
이 글에서는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중요한 조건으로 사회자본의 확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자본이란 사회적 관계나 사회구조의 특정한 측면 혹은 속성이 사회적·경제적·정치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긍정적 결과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회 질서가 잘 유지되거나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하거나 경제성장을 통해 번영을 누리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Robert D. Putnam)은 시민들의 사회적 참여가 활발하면 민주주의가 잘 작동한다는 것을 비교역사적으로 보였으며, 사회평론가인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Yoshihiro Fukuyama)는 신뢰 수준이 높은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린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결국 사회자본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 및 동료 구성원들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한 결과 사회적·경제적·정치적으로도 바람직한 결과를 얻는다는 선순환의 논리에 기반해 있다. 그렇다면 사회자본은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 구성요소들은 무엇인가? 바람직한 사회적 관계와 구조란 무엇이며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지금까지의 사회자본 연구를 종합한 다음 <표>가 해답을 제시한다.
경제성장과 발전에 사회자본이 기여하는 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회 구성원들이 고립돼 경쟁만 하지 않고 서로 네트워킹하고 도우면 사회적 신뢰가 싹트게 된다. 서로 신뢰하는 개인이나 조직 간에는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갈등의 소지가 줄어든다. 내가 먼저 호의를 베풀면 나에게도 호의가 되돌아올 것이라는 호혜성에 대한 믿음이 존재하면 의심과 불신이 줄어든다. 경제적으로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 관계들에서는 경제주체 간의 거래비용이 낮아져 자발적 협력이 활발해진다. 또한 정부를 신뢰하고 타인을 믿으면 사회적 갈등이 줄어들어 투자와 생산이 늘어난다. 반대로 정부를 믿지 못하고 타인이 나를 이용하려 한다는 의심과 불신이 많으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지키는 데 급급해진다.
지난 10년간 갈등의 경제적 비용 연간 233조 원···
지도층 책임 강화, 취약층 지원 등으로 불신 넘어야
그러면 현재 우리 사회의 사회자본 수준은 어떤가? 한국행정연구원에서 실시한 ‘2023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타인에 대한 신뢰를 물은 결과, 믿을 수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2023년 47.3%로, 2013년의 27.8%에 비해 19.5%p 늘었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한국은 일반화된 신뢰의 수준이 낮은 편에 속한다. 정부에 대한 신뢰 역시 낮아서 2023년 행정부 신뢰는 53.8%, 입법부 신뢰는 24.7%, 사법부 신뢰는 48.5%였다. 결국 한국 사회는 서로 신뢰가 없고 정부도 믿지 못해서 협력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의심이 높아져 의견이 엇갈리거나 이해관계가 어긋나면 갈등이 생기기 쉽다. 국무조정실 의뢰로 갈등의 경제적 비용을 추정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년에 걸쳐 갈등으로 발생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233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사회자본을 높여서 갈등이 줄어든다면 지불하지 않아도 될 비용이다.
한편 사회적 관계 측면에서도 개인화와 사회적 고립의 정도가 높아졌다.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에서 몸이 아플 때 집안일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는 응답은 26%, 낙심하거나 우울할 때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응답은 20.2%였다. 둘 다 2013년에 비해 늘어났다. 사회참여와 관련해 같은 해 실시한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도 자원봉사나 기부단체에 속해 활동하는지를 물어본 결과 참여 비율이 6.8%에 불과했으며, 이는 2013년의 11.9%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사회적 관계에 소극적이고 사회적 참여가 줄어들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함께 일을 도모하려는 의욕도 낮아진다. 이견이나 이해관계 차이를 조정하며 협력을 통해 경제적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경제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자본의 확충을 위해서는 무엇이 시급한가? 첫째, 사회적 신뢰를 저해하고 공공의 규범을 무너뜨리는 행위를 엄격히 제재하고, 공공기관의 책임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특히 사회 지도층에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 둘째, 사회적 신뢰와 협력을 높일 수 있도록 격차를 좁히고 차이를 극복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혹은 정치적 양극화는 사회자본에 가장 해로운 영향을 끼치므로 미래세대와 취약계층에 보다 적극적인 손길을 내밀어야만 관계의 결핍이나 협력에 대한 불신을 넘어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