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정부 출범 2개월 만에 100건이 넘는 행정명령이 발동됐지만 이는 결국 관세 부과와 유예로 요약된다. 중국, 캐나다, 멕시코도 보복관세로 맞대응해1930년 「관세법」, 일명 ‘스무트-홀리 관세법’ 제정 당시를 방불케 하는 관세전쟁이 불 붙고 있다.
트럼프 집권 1기와 비교해 집권 2기 관세정책은 두 가지 큰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는 철저하게 목표 달성 지향적이라는 점이다. 관세 부과와 유예, 관세 폭이 불법이민 색출이나 펜타닐 유입 억제 등 해당국과의 당면 현안 해결 진전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다른 하나는 관세 부과 대상이 특정 국가가 아닌 전세계라는 점이다. 집권 1기에 비해 미국의 무역 적자에서 중국 비중이 줄어든 반면 멕시코, 캐나다, 한국 등 FTA 체결 국가와 아일랜드, 일본, 대만, 독일, 프랑스 등 전통적 동맹국의 비중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위안화 절하로 관세 무력화된 트럼프 1기···
2기엔 대대적으로 환율 조작국 지정 나설 전망
미국의 예고대로 4월 2일에 주요 무역 적자국에 상호관세가 부과되면 1단계 관세 조치는 마무리된다. 문제는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제 무역 이론상 관세는 대표적인 가격 할증 정책이다. 이는 관세 피해국이 가격 할인 정책의 일환으로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해 대응하면 무력화되는 맹점을 갖고 있다.
집권 1기 때도 당시 국가무역위원회(NTC) 초대 위원장이었던 피터 나바로가 대외정책을 주관하며 펼쳤던‘나바로 패러다임’에 따라 중국에 강공 일변도로 관세를 부과했다. 예상치 못했던 것은 중국이 보복관세로 맞받는 한편 위안화 가치를 15% 이상 절하시켜 대응한 것이다. 그 결과 관세 충격은 70% 이상 경감되면서 오히려 중국이 미국과의 경제력 격차를 10년 이내로 축소하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됐다.
이번 관세 조치 1단계가 마무리되면 미국은 집권 1기 때 뼈아픈 실수를 바탕으로 곧바로 환율 문제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버락 오바마 시절에 만들어진 환율 조작국 지정 요건[BHC(베넷·해치·카퍼) 조항]이 너무 엄격해 무역 적자만으로 해당 국가를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 1기 때도 환율 조작국을 한 건도 지정하지 못했다.
트럼프 2기 정부도 BHC 조항이 포함된 「무역촉진법 2015」를 과감하게 폐지하는 대신 1988년에 제정된 「종합무역법」을 부활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종합무역법」은 무역 적자만으로 환율 조작을 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들어 한국을 포함한 미국과의 무역 흑자국이 대거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됐던 것이 이 법에근거해서다.
교역국이 환율 조작국에 지정되면 「무역법」 301조, 일명 ‘슈퍼 301조’에 따라 미국 대통령이 최대 200%에 해당하는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사실상 대미 수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의도다. 이미 환율 주무 부처인 미국 재무부의 스콧 베센트 장관이 지난 2월 4일 중국에 추가 관세 10%를 부과한 이후 중국의 위안화 절하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관세에 따른 불확실성이 주가 변동성 키우는 주요인,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되는 경제지표도 속속 등장
한동안 지칠 줄 모르고 오르던 미국 증시도 갑작스럽게 변동성이 극에 달하는 전형적인 ‘워블링 장세(wobbling market)’로 바뀌고 있다. 과거 미국 증시 흐름을 추적해 보면 최근과 같은 장세 이후 주가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예상된다. 하나는 조정을 거친 후 재차 뛰어오르는 급등장(skyrocketing)과 다른 하나는 다시 한번 추락하는 폭락장(flash crash)이다.
두 흐름 중 어느 쪽으로 갈지 가늠해 보려면 주가가 흔들리는 원인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미국 주가가 고평가돼 있어 조정은 시간 문제일 뿐 언젠가는 필요하다는 시각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비롯한 모든 평가지표를 잣대로 볼 때 미국 증시는 거품이 낀 것으로 판단된다.
관세에 따른 불확실성도 주가의 변동성을 키우는 가장 큰 요인이다. 단지 국제법에 의존하지 않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과 ‘홍수 전략(flood strategy)’을 통해 쏟아내는 관세정책은 주식 투자자가 가장 싫어하는 롱테일 리스크다. CNN 공포·탐욕 지수(Fear & Greed Index) 등과 같은 주식투자 심리지표는 극단적인 공포 단계로 떨어진 지 오래다.
통화정책도 그렇다. 지난해 9월 뒤늦게 추진됐던 미국 연준의 피벗(pivot) 부작용으로 인플레이션 재발 조짐이 뚜렷하다. ‘볼커의 실수(Volker’s failure, 1980년대 초 당시 연준의장이었던 폴 볼커의 섣부른 금리인하로 인플레이션 재발)’가 우려될 정도다.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앞두고 피벗과 관련해 지속, 속도 조절, 종료 여부를 놓고 논쟁이 심했다. 앞으로도 어느 시각이 부상하느냐에 따라 주가 움직임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펀더멘털 요인도 전환점을 맞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대부분 예측기관은 올해 미국경제가 물가 하락 속에 성장률이 잠재 수준을 웃도는 골디락스 국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발표되기 시작한 경제지표를 보면 경기 둔화를 넘어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우려될 정도로 나빠지고 있다.
가장 먼저 발표된 지난해 4분기 미국 성장률이 직전 분기 3.1%에 크게 못 미치는 2.3%로 나와 올해 미국경제 흐름이 심상치 않을 것을 예고했다. 곧이어 발표된 지난 1월 소매판매증가율이 지난해 12월 0.7%에서 -0.9%로 급락한 반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대에 재진입했다. 올 2월 들어서는 소비심리지수가 민주당 지지층의 경우 지난달(65.0)보다 약 14포인트 감소해 대공황 이후 최저 수준인 51대로 급락했지만 1년 후 기대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무려 4.3%까지 치솟았다.
최근과 같은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국면이 증시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재정정책 면에서 침체되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트럼프 풋’이 임박했다는 기대와 통화정책 면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파월 콜’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양대 정책 간 충돌은 주가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주도주 역시 흔들리고 있다. 미국 증시를 이끌어 왔던 엔비디아를 비롯한 빅테크 7개 기업 ‘M7’(애플, 아마존, 알파벳,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테슬라)의 주가는 지난해 말을 정점으로 15% 넘게 급락했다. 이달 들어서는 비상장 기업 ‘미래 M7’(스페이스X, 오픈AI, 스케일AI, 데이터브릭스, 패너틱스, 스트라이프, 리플링)이 부상하는 가운데 미국 증시를 떠나 시진핑 주석이 아낌없이 지원해 주고 있는 ‘레드테크 M7’(알리바바, 텐센트, BYD, 샤오미, SMIC, 레노버, 메이투안)이나 ‘테리픽
10’(알리바바, 텐센트, BYD, 샤오미, SMIC, 메이투안, 지리차, 바이두, 넷이즈, 징동닷컴)으로 갈아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전쟁에 이은 환율전쟁은 승전국이 전리품을 모두 가져가는 ‘카르타고식 평화 방안’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이 방식을 주도했던 미국은 대공황이란 혹독한 시련을 치렀고 그것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승전국, 패전국 모두가 이익이 되는 ‘케인즈식 평화 방안’으로 세계경제 발전을 위해 관용을 베풀면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달성이 빨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