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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트럼프발 관세가 만들어낸 국가별 가격 경쟁력 차이는 위기 아닌 기회
심종선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국제통상그룹 파트너 2025년 04월호
구매 측면에서 중국, 러시아 등으로부터 조달하고 있는 원자재나 소프트웨어는 없는지 식별하고 이를 다른 공급자로 대체하는 한편, 판매 측면에서는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군사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품목의 종착지가 미국이 지정한 적성국은 아닌지 감지하고 이러한 거래선을 끊을 수 있는 내부 프로세스 역시 갖춰야

설마 했던 미국의 관세폭탄 예고들이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관세가 부과되기에 앞서 미국 현지 법인과 본사 간 이전가격을 낮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룹 차원의 현금 유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기업들의 기본 생리가 반영된 행동이다. 기업들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이미 수립된 이전가격 정책과 상관없이 무작정 낮춘 가격은 미국 세관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특수관계자 간 거래에서는 제조원가나 운반비의 하락과 같은 타당한 원인을 확보해 놓아야 한다. 원재료 조달부터 제품생산 그리고 최종 소비국인 미국으로 들어가는 물류 흐름상 기업의 활동과 원가를 분석해 이전가격 인하를 정당화할 타당한 이유들을 찾아내는 작업이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

한국 기업들, 관세 부과 대비해 이전가격 낮추려 하나
제조원가·운반비 하락 등 타당한 원인 있어야


하지만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기업활동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전가격을 낮춘다고 해도 현금 유출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은 2023년 3.28%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3% 수준에 불과한 이익을 내고 있으니 25% 관세가 추가되는 상황은 그저 두려울 따름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공포에 질린 채 관세 부담을 어떻게든 내부적으로 흡수하려 든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중국에 따라잡힌 것이 우리가 가격경쟁에 내몰리게 된 원인이다. 트럼프발 관세는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맙게도 중국에 비교우위를 갖출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통령 취임 이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트럼프의 수많은 협박 혹은 경고성 발언에도 정작 현실화된 것은 중국에 대한 20% 추가 관세밖에 없다. 

철강을 예로 들면 이미 2018년부터 부과한 「무역법」 301조 보복관세 25%, 국가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 조치인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 25%, 펜타닐 유입을 막기 위한 긴급 조치로서의 20%까지 총 70%의 관세가 중국산 제품에 추가로 붙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8년 미국과의 협상으로 철강에 적용받던 연간 263만 톤가량의 면세 쿼터(수량 제한)가 풀리는 대신 2025년 3월 12일부터 25%의 관세가 부과되기 시작한 것뿐이다. 여전히 중국과 우리의 철강 제품은 45%의 관세율 차이가 존재한다. 기업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만들어낼 수 없었던 가격 경쟁력의 차이를 트럼프 행정부가 만들어준 셈이다. 이를 기회로 삼아 가격을 인상하고 판매량을 증대해 수익성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의 오랜 우방국에도 예외가 없다. 비록 유예 상태이긴 하나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트럼프 1기 시절과 바이든 행정부까지 미국은 스스로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진행했다. 2017년 21.6%로 정점을 찍었던 미국의 대중국 수입의존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2024년에는 13.2% 수준까지 낮아졌다. 중국의 빈자리는 멕시코, 캐나다, 베트남이 채웠는데, 이들 국가의 중국산 수입이 크게 증가해실상 중국산 제품이 이들 국가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 혼자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추진해 봐야 동맹국들을 그대로 둔다면 실질적인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동맹국들까지 압박하게 된 것이다. 즉 미국 스스로가 수행한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1단계라면, 2단계는 동맹국까지 함께 중국에 대해 디커플링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미 상당수 원자재를 중국산으로 대체해 놓은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다시 되돌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미국은 동맹국에까지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 압박···
밸류체인 사전 관리해 관세면제 정당화 명분 획득해야


트럼프 행정부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미국과 미국의 우방국가로부터 조달한 원재료로 미국인을 고용해 제품을 만들라는 것.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국 역시 모든 수입품에 관세가 부과되고 그로 인해 미국인들이 높은 물가에 고통스러워하는 사태까지는 가지 않기를 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여러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물가였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 때 치솟은 물가 때문에 미국 국민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린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국가와 기업들이 관세면제 조치를 요청하며 달려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관세면제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명분을 준비하면 된다. 이를 위해선 반드시 선행돼야 할 작업이 밸류체인 관리다. 구매 측면에서는 중국, 러시아 등으로부터 조달하고 있는 원자재나 소프트웨어는 없는지 식별하고 이를 다른 공급자로 대체해야 한다. 판매 측면에서는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군사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품목의 종착지가 미국이 지정한 적성국은 아닌지 감지하고 이러한 거래선을 끊을 수 있는 내부 프로세스 역시 갖춰야 한다. 이들 전제조건이 충족된 다음에야 관세면제 조치가 필요함을 주장할 수 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업의 모든 밸류체인에서 중국 등과 지금 당장 완전히 분리돼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은 미국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2017년에 비해 미국의 대중 수입의존도가 많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나 감소 추세가 확연히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기업이 미국의 제재를 위반했다면 그 사실을 스스로 발견해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한편, 지속적인 임직원 교육과 시스템 개선을 통해 재발을 방지할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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