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4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캐나다와 멕시코 관리들이 하루 종일 쉴새 없이 전화를 걸어 관세 문제를 협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당일 발효 예정이던 관세를 조정하기 위한 양국의 노력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들 국가의 설득으로 해당 관세 중 상당 부분은 1개월간 유예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캐나다, 멕시코, 중국 등 일부 국가에 대한 관세 부과를 추진하고 조만간 EU에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고 있지만 진짜 ‘관세전쟁’은 4월부터 본격화될 예정이다. 당초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보편관세를 천명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법적 절차 등 여러 문제로 국가별 상호관세로 전략을 바꾼 가운데 4월 2일경 이를 공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현실화된다면 전 세계 주요국들이 관세전쟁에 돌입하면서 러트닉 상무장관의 핸드폰은 더욱 북새통이 될 전망이다.
정도 차는 있으나 ‘강온 전략’ 병행하는 주요국들,
관세 영향에 대비해 미리 경기부양에 나서기도
사실 주요국들은 트럼프 1기 때의 경험을 감안해 미국의 관세 위협에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다수 국가는 트럼프의 급진적인 정책을 신속히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별도로 구성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소수 각료로 구성된 ‘비밀 핵심각료 회의체’를 구성했으며 EU도 신속대응팀을 가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거나 막대한 무역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트럼프 관세 대응 전략이 강화되고 있는데, 크게 다음 6가지 부문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트럼프와의 소통 강화’다. 트럼프가 자신을 존중하는 상대에 호의적인 성향임을 감안해 각국은 트럼프 개인 및 정부 인사, 트럼프 1기 인사 등을 접촉하며 로비에 전념하고 있다. 일본과 인도는 1기 행정부 시절 양호했던 관계를 이용해 일찍이 정상 회담을 추진했으며, 베트남은 공산당 서기장, 국가주석, 총리 등 권력서열 1~3위 모두가 트럼프에게 대통령 당선 축전을 보내고 골프 외교 의지를 보이는 등 적극적이다. 영국은 트럼프가 왕실과 모친 출생지인 스코틀랜드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점을 이용해 스타머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왕실의 국빈 방문 초청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둘째, ‘관세 측면에서의 대응’인데, 크게 맞관세, 대미 관세 인하, 관세 유예 요구 등 나라별로 온도차가 있다. 현재(3월 11일 기준) 관세를 부과받은 캐나다, 중국은 그에 상응하는 맞관세를 발표하며 강경대응에 나서고 있다. EU도 맞관세를 천명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미국 측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출 것임을 시사했으며, 인도는 이미 미국산 일부 상품에 대한 관세 인하에 나섰다. 반면 영국, 호주 등은 대미 무역 적자 상황임을 강조하며 미국의 관세 적용 예외를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도 일부 품목에 대해 예외를 요구하고 있다.
셋째, 맞관세보다 더 강도 높은 ‘미국 기업 압박’이다. 중국, EU 등 일부 국가들은 관세 대응과 함께 자국 내 미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시사하며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기업들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에 포함하거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을 겨냥한 반독점 조사를 시작했으며, 캐나다도 주 차원에서 미국 기업 제한 조치를 강구 중이다. EU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회원국에 경제 압박을 가하는 국가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반강압대응기구(ACI)를 동원해 미국 빅테크기업 및 금융회사를 위협하고 있다.
넷째, ‘미국산 수입 확대와 미국 투자 확대’다. 일본, 베트남, EU, 인도, 태국 등 대다수 대미 무역 흑자국들은 트럼프가 문제 삼고 있는 흑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 미국산 수입 확대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또한 일본, 대만 등은 미국으로의 생산시설 이전 및 확대, 미국 에너지 프로젝트 참여, 미국 기업 투자 등을 통해 트럼프가 요구하는 미국 내 생산 및 고용 확대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다섯째, ‘무역협정 조정’이다. 트럼프는 대선 때부터 종전의 무역협정 파기 및 재협상을 시사한 바 있어 각국은 시급히 무역협정을 조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트럼프가 1기 시절 체결했던 무역협정(USMCA)에 불만을 드러내자 재협상을 모색하고 있으며 인도, 중국도 무역협정 조정을 위한 준비팀을 구성하고 협상을 추진 중이다.
마지막으로, ‘자국 경기부양’이다. 대다수 국가가 트럼프 취임 전부터 경제성장이 부진한 상황이라 경기부양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캐나다, 멕시코, 중국, 태국 등은 트럼프 정책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금리인하, 재정지출 확대 등 추가 부양에 나서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각국의 트럼프발 관세 대응 행보를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보면 한쪽 끝에는 채찍보다 당근을 우선시해 유화적 대응에 치중하는 일본, 베트남, 대만 등이 있으며 또 다른 한쪽 끝에는 미국의 관세에 상응하는 공격적 대응을 추진하는 중국, EU가 있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주요국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겉으로는 관세에 적극적인 대응을 천명하면서도 물밑으로는 트럼프가 요구하는 무역 흑자 축소, 관세 불균형 해소, 국경안보 강화 등에 대한 유화책을 추진하는 ‘강온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얼마 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옛날 실크로드 상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통치자에게 절하고, 그다음 자신의 길을 가라”는 속담을 거론하며 미국에 완전히 굴복하거나 그 반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전략을 분산하는 한편 겉으로는 티 나게 공물을 바치는 옵션이 대부분의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현명한 전략일 수 있다고 제시했다.
국격과 실리 모두 챙겨야 하는 대한민국···
트럼프의 소통창구 러트닉 상무장관 공략이 중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대내적으로는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3개월 넘게 진통을 겪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이 점증하는 등 내우외환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더욱 커질 트럼프의 관세정책 압박에 대해 국격이라는 체면은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실리를 확보할 수 있는 치밀한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에 ‘양보할 것’과 ‘받을 것’을 점검하고 미국경제에 대한 한국의 기여 논리를 강조하는 한편, 협상 시점과 강온 전략에 대한 철저한 계산이 필요하다. 트럼프의 거래 성향을 파고드는 직접적인 전략도 시급하지만 트럼프의 입과 귀 역할을 하며 전 세계와 통화 중인 러트닉 상무장관에 대한 공략도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