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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우리 삶을 바꿀 ‘게임 체인저’, 양자 그 100년의 역사
김태희 동아사이언스 과학동아 기자 2025년 05월호
올해는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다. 최초로 양자 현상을 수학 공식으로 설명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이 만들어진 지 100년이 된 해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양자역학이 수학으로 정식화되면서 물리학은 고전역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작했다. 

1900년 하나의 가설에서 시작해 
1925년 진짜 이론으로 도약한 양자역학


양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 단위다. 이 양자는 1900년, 어떤 가정에 의해 처음 제기됐다. 19세기 말 물리학자들은 ‘자외선 파탄’이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뜨거운 물체가 어떤 빛을 얼마나 내보내는지(흑체 복사)를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과 고전역학을 이용해 계산하고자 했으나, 자외선 영역에서 계산과 실험 결과가 달랐다. 이를 자외선 파탄이라 불렀다. 

고전역학이 실제 자연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막스 플랑크는 양자의 존재를 최초로 가정한 가설을 내놓았다. 흑체가 뿜어내는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은, 아주 작은 덩어리로 나온다는 것이다. 이로써 자외선 파탄 문제가 해결됐다. 그뿐 아니라 자연이 불연속적인, 즉 양자화된 성질을 가진다는 것이 처음 인정됐다. 

이후 물리학에서 양자 개념이 퍼져나갔다. 양자역학의 발전이 본격화된 것이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광전 효과를 설명하며 빛이 양자화돼 있다고 주장했으며, 1913년 닐스 보어는 전자가 양자화된 궤도를 따라 운동한다는 원자 모형 가설을 제안했다. 루이 드 브로이는 1924년 그동안 입자라 여겼던 전자 등의 물질도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증명하며, 이에 ‘물질파’란 이름을 붙였다. 이처럼 1900년대 초 빛과 원자 구조, 입자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 쏟아졌다. 다만 각각의 현상에 관한 설명이었다. 

1925년 양자역학은 물리적 모델에서 수학적 틀을 가진 ‘진짜 이론’으로 도약했다. 모든 양자 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수학적 이론이 최초로 탄생한 것이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직접 관측할 수 있는 스펙트럼의 진동수와 세기, 에너지 준위 간의 전이 등을 활용해 수학식을 만들었다. 이때 하이젠베르크는 원자의 상태가 다른 상태로 전이되는 과정, 여러 상태 간 상호작용을 표로 정리해 제시했는데 이로써 그동안 수학 내에서만 활용되던 행렬이 물리학의 도구로 처음 사용됐다. 또한 행렬역학은 연산의 순서가 달라지면 결과가 다르다는 비가환성이 나타나 기존 고전역학과는 완전히 다른 자연의 새로운 특징이 정립됐다.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이 만들어진 뒤 약 5년간 양자역학은 매우 빠르고 정교하게 정리됐다. 1925~1930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물리학의 모습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1926년 에르빈 슈뢰딩거는 입자의 상태를 파동으로 설명하는 ‘파동역학’을 발표했다. 이후 파동역학이 앞선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수학적으로 같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리고 같은 해 막스 보른은 파동함수로 확률적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제시했다. 확률이 수학적으로 엄밀하고 실험으로도 검증 가능하다는 것이 이로써 입증됐다. 1927년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발표됐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양자역학이 빠르게 완성되는 시기, 당시 물리학계에선 많은 논쟁이 오갔다. 특히 자연이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관해서 큰 충돌이 있었다. 1927년 5차 솔베이 회의에서의 논쟁이 대표적이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며 양자역학을 비판했지만, 보어는 “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며 자연이 확률적으로 작동하며, 측정 행위가 현실을 결정한다는 ‘코펜하겐 해석’으로 맞섰다. 이 회의에서 보어가 양자역학의 철학적 주도권을 잡았고 이후 코펜하겐 해석이 물리학계의 주류가 됐다.



물리학에서 과학·공학 모든 분야로 뻗어나간 양자···
트랜지스터부터 양자 컴퓨터·통신까지 개발


양자역학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과학과 공학, 모든 분야로 뻗어나가 학문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 근간에는 1928년에 발표된 ‘디랙 방정식’이 있다. 폴 디랙은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결합한 상대론적 양자이론을 정리했다. 디랙 방정식은 그전까지 양자역학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던 전자의 행동이나 스핀을 아울렀을 뿐 아니라 반물질을 최초로 예측하기도 했다. 이후 디랙 방정식은 양자전기역학과 표준모형 등의 기반이 됐다. 

1935년은 입자물리학과 현대 핵물리학의 시발점이었다. 1930년대 초 원자핵 안에서 양성자와 중성자가 붙어 있는 현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양성자는 서로 밀어내는 힘이 작용하기에 전기력보다 강한 힘(오늘날의 강한 핵력)을 가정해야 했다. 1935년 유카와 히데키는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에 새로운 입자(중간자)가 강한 핵력을 매개한다고 주장했다. 중간자 이론은 입자가 힘을 매개하는 존재라는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이 개념으로 입자물리학에는 소립자 시대가 열렸으며, 핵물리학은 핵을 구성하는 힘을 수학적으로 다루게 됐다.

양자역학은 인류의 지식을 깊고 넓게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47년 미국 벨 연구소에서는 양자역학에서 제시된 파동함수와 에너지 준위 개념을 근간으로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다. 트랜지스터는 전류의 크기를 조절하는 장치다. 기존에 진공관이 하던 일을 반도체 재료를 이용해 대체한 것이다. 현재 모든 전자기기에는 수백에서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가 있다. 트랜지스터의 개발은 현대 전자기기의 소형화, 고속화, 고성능화를 가능케 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양자 얽힘, 비결정론적 특성 등 양자역학의 여러 특성을 활용해 정보를 처리하는 새로운 기술이 발전했다. 바로 양자정보과학기술이다. 

1981년 리처드 파인만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컴퓨터인 양자컴퓨터를 제안했다. 미국 MIT에서 열린 한 물리학회에 참석한 파인만은 고전컴퓨터로는 자연을 제대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양자역학적으로 동작하는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터는 허황된 주장이 아니었다. 1964년 존 스튜어트 벨이 양자역학의 비결정성과 비국소성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벨의 부등식을 1982년 알랭 아스페가 실험으로 검증하며 양자 얽힘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얽힘 기반의 정보 처리가 가능하다는 게 과학적으로 보장된 것이다.

양자정보과학기술은 양자컴퓨팅, 양자암호통신, 양자센서 등의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의 묵자호 위성은 2016년 양자통신에 성공했고, 구글이 개발한 양자컴퓨터 시카모어는 2019년 특정 계산에서 양자컴퓨터가 고전컴퓨터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증명했다. 

오늘날 양자정보과학기술은 인류의 삶을 또 한번 바꿀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양자역학이 100년의 역사를 지나 200년, 300년의 역사를 쌓아가는 과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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