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다. 1900년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양자(量子, quantum)’ 개념을 도입해 뜨거운 쇠붙이에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을 설명한 바 있지만, 1925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이 행렬식을 도입해 현대적인 양자역학 이론을 정립했기 때문에 그로부터 100주년이 된 해를 기념하는 것이다. 동시에 향후 100년간 양자과학기술이 펼쳐갈 미래에 대한 기대도 반영하고 있다.
양자기술의 이론적 원리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만
실현하는 기술은 전혀 다른 차원의 도전
양자역학은 원자와 분자 같은 물질의 구조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물질의 창조와 응용을 가능하게하며 현대 문명의 기반을 이뤘다. 반도체와 레이저 기술은 나노 및 디지털 기술과 융합돼 디지털컴퓨터와 광통신 등 정보통신기술 혁신을 이끌었다. 이러한 물질과 하드웨어의 발전을 ‘1차 양자혁명’이라 부르며, 현재는 중첩과 얽힘 같은 양자 특성을 활용하는 양자기술이 ‘2차 양자혁명’으로 주목받고 있다. 2차 양자혁명은 단순히 디지털 기술보다 좀 나은 정도가 아니라 디지털로는 불가능한 것을 성취하는 것이 목표다.
종종 “아인슈타인조차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오해가 있지만, 그는 양자역학의 핵심을 잘 알고 있었으며 단지 비결정론적인 측정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그는 양자역학의 확률론적인 면에 대한 불만을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가 제안한 사고실험은 슈뢰딩거에 의해 ‘얽힘(entanglement)’이라는 이름으로 확장됐고, 202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얽힘을 실험적으로 입증함으로써 양자역학의 정당성을 확인했다.
양자기술의 이론적 원리는 대학생 수준에서도 대부분 이해할 수 있지만, 이를 실현하는 기술은 전혀 다른 차원의 도전이다. 디지털컴퓨터가 0과 1의 비트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양자컴퓨터는 이 둘이 중첩된 양자비트(큐비트, qubit)를 이용해 병렬 계산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컴퓨터는 비트 10개로 표현 가능한 1,024(210)가지 경우의 수를 각각 다뤄야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큐비트 10개로 그 모두를 동시에 다룰 수 있다. 이는 양자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디지털컴퓨터에 비해 지수적으로 커지고 빨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자컴퓨터의 계산 능력은 기존의 암호체계를 위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청이 불가능한 양자암호통신, 정밀한 양자센싱 및 계측 등 새로운 양자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양자기술은 단지 ‘기존보다 조금 더 나은’ 기술이 아니라 기존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양자컴퓨터는 신약 개발, 신물질 설계 등 인류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며, 2030년대에는 수천조 원 규모의 시장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기대를 실현하려면 큐비트 수 확장과 양자오류 극복 등 기술적 과제를 해결해야 하며, 이는 기초과학과 공학 모두에 높은 난도의 도전을 요구한다. 어떤 이들은 양자기술을 ‘이뤄질 수 없는 꿈’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러한 불확실성과 도전을 넘어선 곳에 양자기술의 우월성이 기다리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미 앞다퉈 양자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글로벌 양자기술 교육·정보 업체 큐레카(Qureca)의 2021년 추정에 따르면, 각국의 양자기술 투자 규모는 중국 100억 달러, 미국 12억 달러(정부 기준), 유럽 11억 달러, 프랑스 22억 달러, 일본 4억7천만 달러, 대만 2억8천만 달러, 싱가포르 1억900만 달러 등으로 집계됐다. 반면 당시 한국의 투자 규모는 3,700만 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디지털산업의 성공에 안주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는 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양자(兩者) 양자(量子) 경쟁이 과열되면서 양자기술을 국가 전략기술로 인식한 미국은 중국과 관련된 양자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등 기술경쟁이 국가안보 문제로 확장됐으며, 이에 우리나라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2023년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2024년 11월 발효)하고 2024년 ‘퀀텀 이니셔티브’를 마련했으며, ‘디지털을 넘어 양자로’라는 기치 아래 양자기술 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 큐레카가 추정한 대한민국 정부의 양자기술 투자 규모는 23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기존 산업의 전문인력이 양자기술 인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기회 마련해야
궁극의 기술이라고 할 양자기술을 쟁취하기 위해 정부는 산학연 양자 생태계 발전을 비롯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현재 전국 3개 권역에 양자대학원을 지정해 인력 양성에 나서고 있다. 양자대학원의 신규인력 양성은 적어도 5년 이상 걸리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세계적인 정보통신산업을 일으킨 전문인력이 풍부한 만큼, 이들에게 양자기술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반도체 팹 전문가, 회로 전문가 등 양자기술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엔지니어들에게 양자기술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하면 자연스럽게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주요 양자기술 기업들은 다양한 분야의 엔지니어들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양자기술에 대한 접근이나 인식은 여전히 제한적인 편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이 자사 기술의 양자기술 적용 가능성을 인식하게 된다면, 현재의 소재·부품·장비 문제를 넘어서 세계 양자기술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엔지니어들을 양자 분야로 끌어오려면 먹고살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데 대학이나 출연연 일자리로는 부족하므로 결국 기업이 미래 먹거리로 양자에 투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자기술의 전망과 의미를 기업인들과 사회 전반에 널리 알리고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정부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처럼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양자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모두가 애쓰고 있지만, 이를 활용해 가치를 창출할 양자기업이 없으면 인력과 기술 모두를 외국에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양자기술과 함께 다가올 새로운 미래에 적극 도전하기를 기대한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70년이 걸렸다. 양자기술은 아직 30년 정도밖에 안 됐으니 초창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길게 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