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0일 국민연금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월 소득 대비 보험료가 몇 퍼센트인지를 나타내는 ‘보험료율(내는 돈)’은 현행 9%에서 13%로 4%p 올랐다. 은퇴 뒤 받는 연금액이 젊을 때 벌던 평균소득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지를 뜻하는 ‘소득대체율(받는 돈)’도 현행 40%에서 43%로 3%p 올랐다. 일명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이다. 한국에서 연금개혁이 이뤄진 건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이후 18년 만이고, 보험료율이 오른 것은 1998년 이후 27년 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권력 공백기에, 모처럼의 여야 합의로 오래 미룬 개혁을 이뤄냈다.
보험료율 9→13%, 소득대체율 40→43% 인상하는
이번 연금개혁에 2030 세대 10명 중 6명은 부정적
그런데 진통 끝에 이뤄진 이번 연금개혁을 두고 특히 청년들의 평가가 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갤럽이 지난 3월 25~27일 전국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번 연금개혁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38%, ‘반대’는 41%였다. 그러나 20대와 30대는 ‘반대’한다는 비율이 각각 58%와 64%에 달했다. 2030 세대 10명 중 6명은 이번 개혁에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개혁신당의 3040 의원 8명은 3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강화된 혜택은 기성세대부터 누리면서, 그로 인해 추가되는 부담은 또다시 후세대의 몫”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연금개혁이 정말 청년에게 불리할까? 답은 양면적이다. 우선 기성세대만 혜택을 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소득대체율 인상의 효과는 이미 은퇴해서 연금을 받는 이들에겐 소급해서 적용되지 않는다. 아직 일하고 있는 세대에게 적용되는데, 은퇴가 얼마 안 남은 이들보다는 노동시장에서 일할 날이 더 많이 남은 젊은 세대에게 더 오래 적용된다.
물론 젊은 세대일수록 오른 보험료를 더 오래 감당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받는 돈(소득대체율)’은 3%p, ‘내는 돈(보험료율)’은 4%p 올랐으니 이득을 본다고까지 하긴 어렵다. 그러나 인구가 조금이라도 더 많을 때 보험료율을 올리는 편이 향후 예상되는 젊은 세대의 추가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이번 개혁으로 기금 소진 연도를 현행 제도를 유지했을 때의 2056년에서 2064년으로 8년 늦췄으니 젊은 세대의 부담을 다소간 덜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문제는 이번 개혁에서 보험료율뿐 아니라 소득대체율까지 올린 결과, 기금 소진 이후 보험료로만 연금액을 지급하려 할 때 해당 시기(2079년) 일하는 세대가 내야 할 최고 보험료율이 기존 36.6%에서 39.2%로 올라버렸다는 점이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더 많은 연금을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일하는 인구는 2020~2061년생으로 현재 청년보다도 어리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이다. 이번 개혁이 이러한 ‘후세대’의 부담을 높이고, 그만큼 현 청년 세대가 연금 받을 시기의 불안정성도 높였다는 점에서는 ‘미래세대에 불리한 연금개혁’이란 비판도 일리가 있다.
결국 연금 재정 상황만 고려하면 소득대체율 40%는 고정한 채 보험료율만 올리는 게 현실적이었지만, 2024년 4월 공론조사 결과 ‘더 내고 그대로 받는’ 방안보다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의 선호도가 약 13%p 더 높았던 점도 무시할 수 없었던 듯하다.
사실 ‘세대 간 형평성이 무너져 있다’는 비판은 이번 개혁안뿐만 아니라 연금제도 전반에 걸친 비판에 가깝다. 1988년 ‘보험료율 3%, 소득대체율 70%’에서 시작해 점차 보험료율은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낮춰온 상황에서, 저출생·고령화가 진행되며 후세대로 갈수록 적은 인구가 더 많은 노인을 부양해야 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는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보다 보험료는 적게 내고 연금은 많이 받아 갔다’는 말이 성립하는 측면이 있다. 무려 27년 동안 보험료율을 올리지 못한 정치의 책임도 크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 가입 기간이 짧게 남은 중장년의 보험료율은 더 빠르게 올리고, 가입 기간이 길게 남은 청년의 보험료율은 천천히 올리는 ‘세대 간 보험료 인상 차등’ 방안을 내놓았지만 ‘세대 갈라치기’라는 반발로 인해 이번 개혁안에는 담기지 않았다.
개혁 후에도 낸 돈보다 많이 받아···
향후 기초·국민·퇴직연금 연계로 노후 안전망 갖춰야
그렇다면 어차피 연금은 세대 간 ‘폰지 사기’에 불과하니 다시 되돌려야 할까? 혹은 아예 의무 가입을 해지하고 자유 가입으로 돌려서 각자도생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우선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연금을 못 받는 일은 없다. 또 개혁 이후에도 국민연금은 여전히 낸 보험료보다 많은 연금액을 받도록 설계돼 있으며 죽을 때까지 물가를 반영해 지급한다. 이런 민간 금융상품은 찾기 어렵다. 연금은 사회보험의 가장 기본이며, 공적연금을 운용하면서 가입을 자유에 맡기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미래세대 보험료율이 39.2%까지 오른다는데 무슨 소리냐고? 해당 수치는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점검하는 지표일 뿐이다. 그런 일이 없도록 추가적인 개혁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어떤 추가 개혁인가. 앞서 여야 3040 의원들은 고령층이 공적연금이나 사적연금을 받을 때 내는 세금인 ‘연금소득세’(2030년 1조1천억 원 규모)를 국민연금에 투입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렇게라도 기성세대의 연금에 대한 기여를 높여 연금제도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자는 얘기다. 이런 대안을 포함해 보험료뿐 아니라 국가 재정을 얼마나 연금에 투입할지, 그 과정에서 기성세대의 책임을 어떻게 현실화할지, 증세가 필요하다면 누구에게 어떤 세금을 더 걷을지 등을 논의해 볼 수 있다.
자주 잊지만, 연금개혁은 결국 노후 안전망을 더 튼실하게 하기 위함이다. 기존 소득대체율 40%라는 것도 40년 가입해 꼬박꼬박 보험료를 부었을 때의 이야기다. 20년 가입하면 20%다. 가입 기간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연금 보험료를 낼 수 있는 나이를 현 59세에서 64세까지로 늘리면 소득대체율 5%p 인상 효과가 있다.
국민연금에 가입했으나 사업 중단, 실직·휴직 등으로 소득이 없어 납부 대상에서 일시적으로 제외됐거나 13개월 이상 보험료를 체납한 사람이 지난해 11월 기준 342만 명(가입자의 11.4%)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등 ‘지역 가입자’는 사업주가 보험료 절반을 내주는 ‘사업장 가입자’와 달리 보험료율 13%를 온전히 본인이 다 감당하기에 부담이 크다.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세금으로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34만 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이라는 제도도 있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한 이들에게는 유일한 안전망이다. 기초연금 지급 대상을 좁히고 액수를 늘려서 빈곤 노인을 실질적으로 줄여야 한다. 또 회사가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하는 퇴직금을 퇴사할 때마다 타서 쓸 게 아니라 ‘퇴직연금’으로 만들어서 노후 자금으로 쓰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기초·국민·퇴직연금으로 노후를 두렵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나갈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1988년생으로 30대 후반인 나는 2053년부터 연금을 받는다. 지금 월 20만 원 가까이 연금 보험료로 빠져나가는데, 이렇게 60세까지 부으면 월 123만 원을 받게 된다고 한다. 바라건대 우리 공동체가 각자의 책임을 제때에 다해서, 먼 훗날 내가 노인이 된 시점의 일하는 세대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