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청년정치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세대가 직면한 문제 를 해결하겠다는 확실한 대답을 주는 정치인이 없기 때문
대한민국 국회의 고령화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300명의 평균 연령은 57.4세로 46.7세인 중위연령보다 10세 이상 높다. 반면 올해 초 총선 결과 선출된 독일 연방의회 의원 630명의 평균 연령은 47.3세다. 프랑스 하원 역시 지난해 조기 총선으로 의회를 재구성했을 때 평균 연령이 50세가 되지 않았다.
평균 연령이 높다는 것뿐 아니라 젊은 의원의 수가 적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제22대 국회가 개원했을 당시 300명의 국회의원 중 40세 미만은 14명에 그쳤다. 제20대 국회에선 그 수가 3명에 불과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선 숫자가 힘이다. 우리나라 인구 피라미드는 이미 중장년층이 두터운 마름모꼴을 띠고 있다. 청년들은 유권자 수도 적은데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인도 얼마 없다 보니 연금개혁처럼 세대 간 이해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목소리가 과소 대표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 청년이 늘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특히 2020년대 들어 2030 무당층 비율이 크게 높아졌고, 이들의 표심을 잡는 게 주요 과제가 됐다. 각 당은 지도부에 청년 몫을 할당하는가 하면 공천 과정에서 청년 가산점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대 조치에도 청년정치인은 좀처럼 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강력한 연령규범이 작동하는 한국 사회···
불공정·불투명한 보상 체계가 청년정치 진입장벽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저조한 원인으로 흔히 꼽히는 건 돈이다. 정치는, 그중에서도 선거는 그 자체로 ‘돈 먹는 하마’다. 제22대 총선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자들은 평균 약 1억6천만 원을 썼다. 경선 비용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2030 세대가 감당하기에 분명 벅찬 금액이다.
하지만 청년정치인들에게 출마 비용은 부차적인 문제다. 원외 신인은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하면 1억5천만 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다. 득표율에 따라 쓴 비용을 돌려받기도 한다. 「공직선거법」은 출마자가 유효투표총수의 15% 이상을 득표했을 때 공식 선거운동 비용(기탁금) 전액, 10% 이상 득표했을 때 반액을 보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총선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 693명 중 496명(71.6%)이 선거운동 비용 전액을 보전받았다. 절반을 보전받은 사람은 17명(2.5%)이었다. 물론 군소 정당에서 출마하는 이들에겐 이 조건도 버거운 게 사실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 득표를 기대할 수 있는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는다면 비용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된다.
청년들이 정치 참여를 망설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돈이 아니라 기회비용에 있다. 정치라는 선택이 초래할 인생의 기회비용이다. 다소 느슨해지긴 했어도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강력한 ‘연령규범’이 작동한다. 일정 시기에는 취업, 결혼 등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상황이 이런데 한창 취업해 돈 벌고 경력 쌓을 20~30대에 정치에 뛰어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 경력은 기업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실패하면 돌아갈 곳이 없다. 청년기에 정치를 한다는 건 곧 정상적인 취업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기성세대가 출마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기회비용을 떠안아야 한다.
보상이 불확실하다는 점도 유능한 청년들의 정치 진입을 가로막는다. 민간 영역에선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인재들은 그런 영역에 몰린다. 국회와 정당은 그렇지 못하다. 직원 채용이나 공천 등에 일률적 기준이 없는 경우가 많다. 국회 인턴만 해도 그렇다. 운 좋으면 몇 개월 만에 9급 비서관 이상으로 승진하지만, 운이 나쁘면 법이 허용하는 최대 근무 기간인 22개월 내내 인턴만 하다가 그만두기도 한다. 정무직 당직자 인선 등에도 친소 관계 같은 외부 변수들이 적잖이 작용한다. 얼마만큼 노력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구체적 기준이 없는 까닭에 청년들로선 정치에 뛰어드는 게 꺼려질 수밖에 없다.
제도적 요인도 간과해선 안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직선거법」이다. 「공직선거법」은 정해진 기간 외에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그런데 현역 정치인은 일상적인 활동이 선거운동과 다름없지만, 청년을 비롯한 정치 신인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자신을 알리는 데 한계가 있다. 후원금에도 차별이 존재한다. 현역 국회의원은 선거가 있는 해에는 원외 인사의 2배(3억 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다. 이렇게 경쟁이 제약되다 보니 청년들로선 정치권에서 살아남으려면 비례대표나 우세 지역 전략공천 등 당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성 정치에 반기를 들기 어려워 정작 또래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이들의 지지에서 멀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청년정치인 늘리기 위한 노력 필요하지만
청년세대가 직면한 문제 해결 노력이 우선
청년정치인을 늘리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사실 그 자체가 해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청년들은 나이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지지하지는 않는다. 선거철 많은 정당이 청년정치인을 전면에 내세우곤 했지만, 그때마다 대표성과 자질 논란이 불거진 건 그런 이유에서다. 청년정치인이 과거에 비해 늘었음에도 2030 세대에서 무당층이 증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청년정치인이 없어서라기보다 자기 세대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확실한 대답을 주는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독일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Kurzgesagt)가 게시한 ‘대한민국은 끝났다(South Korea is over)’라는 영상이 청년층에서 큰 화제를 모은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영상에는 한국이 극단적인 저출생·고령화로 경제·문화·국방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큰 위기에 직면할 거란 내용이 담겼다. 외부 경고에 대한 청년층의 호응은 대단했다. 한국어로 쓰인 댓글 중에는 “가장 암울한 것은 한국의 정치인 중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댓글이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2030 세대는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중점 과제로 경제 활성화와 더불어 저출생 대응을 꼽는 걸로 나타난다. 이런 여론은 유독 청년들에게서 두드러진다.
한국 정치는 지난 수십 년간 ‘산업화 대 민주화’라는 구도로 경쟁해 왔고 이 구도는 지금도 유효하다. 많은 청년이 무당층에서 맴돌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의 청년은 대한민국에 산업화와 민주화가 모두 이룩된 뒤에 태어났다. 그리고 산업화·민주화 이후 나타난 새로운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저출생·고령화가 초래하는 인구소멸, 인구구조 변화로 심화되는 노동시장 불균형, 부양 부담 증가, 경쟁 심화 등 사회적·경제적 양극화다. 지금까진 누구도 여기서 비롯되는 청년의 우려를 불식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 정치가 이 문제를 놓고 경쟁하기 시작할 때 청년들도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로 호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