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에 따른 낙인으로 청년이 사회적 고립에 내몰 리지 않도록 제도 마련하고 공동체 기반의 연대 모델 도입해 나가야
자신의 부채와 금융 고민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서로 위로하는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 서로 연대하게 돕는 것만으로도 청년의 회복 도울 수 있어
일상적인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청년들이 생활비 대출로 내몰리고 있다. 2022년과 2023년 ‘대구지역 청년부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구 청년들은 고물가, 고금리 상황에서 경제 여건이 나빠졌는데, 1년 사이 월 지출이 6.3%, 월 부채 상환 비용이 6.4% 증가했다. 한편 2023년 조사 대상 청년의 35.9%가 빚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이들의 평균 부채액은 5,187만 원이었다. 더불어 “생활비 부족으로 금전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청년 역시 21.9%에서 32.3%로 1년 만에 10%p 이상 늘었다. 물가 상승, 금리 인상, 취업 지연, 주거 불안정 등 구조적인 환경이 청년 생활을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구 청년 32.3%가 생활고 경험···
저신용·저소득 청년 부채, 고립으로 이어지기 쉬워
부채의 질적 악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채무가 있다고 응답한 청년 10명 중 4명은 2, 3금융권의 대출을 이용했는데, 주로 생활비와 미납요금 납부 용도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2, 3금융권은 시중은행보다 이자율이 높고 사금융 이용이 개인 신용도 하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1금융권에 비해 대출 상환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실제로 청년 채무자가 이용한 생활비 대출과 미납요금 대출 연이율은 각각 평균 12.1%, 13.1%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활비 대출 관련 정책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낮은 신용점수와 소득 수준으로 고금리 대출을 받는 청년의 경우 빚이 또 다른 빚을 낳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렇게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빚을 지게 되는 현실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미흡한 제도와 사회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기엔 사회의 책임과 역할이 너무도 크다고 본다.
청년 부채는 단순한 재정 문제를 넘어 삶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이 만난 많은 청년채무자는 자신을 “빚을 갚기 위해 일하는 기계”로 여기며 삶의 희망을 잃고 있다. 이들은 빚을 갚느라 사회와의 연결이 끊어지고 빚을 말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더욱 고립된다. 채무에 대한 낙인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청년채무자가 겪는 심리적 부담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청년 부채는 상환에 대한 불안에서 삶의 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청년채무자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한편, 사회적 소외와 고립을 방지하기 위해 청년 부채를 ‘공동체의 문제’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 청년 부채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규정하고 청년 스스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방식을 탐구하는 대안 금융 협동조합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은 이러한 필요성에서 만들어졌다. 디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첫째는 사회 제도를 통한 문제 해결, 둘째는 공동체 기반의 연대 모델 도입이다. 청년 문제를 청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서 조사하고 제안하고 실험하는 것이다.
먼저, 사회 제도 마련을 위해 2018년부터 매년 ‘대구지역 청년부채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역 청년 부채 문제를 지속적으로 조사해 온 사례로, 정책 제언의 근거 자료로 활용된다. 이 조사는 청년 부채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제도 개선 필요성을 보여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정량적 데이터를 확보함으로써 더욱 설득력 있는 정책 제안을 가능하게 했다. 대표적으로 대구광역시는 2022년 ‘청년 기본 조례’에 청년 권익을 위한 시책으로 ‘금융생활 지원’ 조항을 신설했고,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 청년지원센터에서 금융교육과 부채 상담 프로그램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는 시민의 참여와 연대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재능 및 일손 나누기로 ‘디딤돌’ 마일리지 쌓아
최대 200만 원 담보 없이 대출받고 자율이자 지출
또 다른 해법은 ‘관계금융’이라는 새로운 모델이다. 디딤은 청년 간 신뢰와 참여를 바탕으로 한 소액대출 모델을 운영 중인데, 재능이나 일손을 나누는 활동으로 ‘디딤돌’ 마일리지를 쌓고, 이를 기반으로 최대 200만 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담보 없이, 조합원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자율이자를 돈, 재능, 노동 등 내고 싶은 방식으로 낸다. 예컨대 요가 강사는 요가 수업을, 김밥 가게 운영자는 김밥 만들기 수업을 열어서 디딤돌을 쌓는다. 이런 활동은 단순히 신용점수가 아닌 관계에 기반한 신뢰를 형성하는데,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알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쌓는 관계가 금융의 기준이 될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현재까지 디딤은 60명의 청년에게 총 5,600만 원을 대출했고 상환율은 95%에 이른다. 이는 관계를 통한 연대가 실질적인 대안금융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대출 과정에서 작성하는 상환계획서는 청년이 자신의 재무 상태를 점검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아가 표적집단면접(FGI), 부채상담소, 빚해결페스타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채무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서로 만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빚해결페스타에서는 청년들이 자신의 빚 이야기를 털어놓고, 이를 바탕으로 부채 해결을 위해 관련 전문가와 상담할 수 있도록 연계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청년층의 경제 상황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경제적 어려움이나 채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부채와 금융 고민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서로 위로하는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 서로 연대하게 돕는 것만으로도 청년의 회복을 도울 수 있다.
디딤은 금융기관이 아닌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운영하는 공동체 금융 플랫폼으로서 최근 기존의 프로그램들을 확장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현재 대구에서만 진행되는 청년금융 실험은 언제 어디에서든 시도할 수 있어서 다른 지역으로도 쉽게 확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다양한 청년단체 및 공공기관과 연계하면 지역사회 전체의 금융 포용성을 높이는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청년층이 겪고 있는 생활고와 부채를 개인의 선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청년이 고통받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로 인한 생활비 부담 증가와 취업난, 실질임금 후퇴는 아직 경제적 기반이 없고 돈에 대한 가치관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청년이 주식 열풍, 부동산 투자에 휩쓸리게 하며, 그 피해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청년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는 미비한 실정으로, 청년층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