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향후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에 의미하는 바는 지대하다. 그의 승리는 ‘트럼피즘’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사전적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트럼피즘은 미국 우선주의, 대중주의, 고립주의 등을 포괄한다. 트럼피즘을 구현하는 대외경제정책 수단으로 관세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다만 올해 4월 상호관세 부과가 구체화된 직후 국채시장을 중심으로 금융시장 혼란이 심화되면서 모든 관세가 90일간 유예되고 주요국과 관세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어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 관세 부과에 대해 미국 연방국제무역법원(CIT)이 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조치라고 판단하면서 관세부과 정책이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도 제기된다.
현 시점에서 미국의 관세정책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트럼프 대통령 이후에도 이러한 정책이 유지될지, 앞으로 통상질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새 정부가 출범했다는 점에서 향후 우리의 대외경제정책 방향을 고민할 중요한 타이밍으로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반복돼 온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
미국의 대외경제정책이 보호주의로 전환된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보인다. 세계화의 여파로 금융위기의 부정적 영향이 장기화됐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미국 유권자 사이에서 정책방향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시기적으로 미국에서 세계화에 불만이 쌓여가고 자국의 제조업 경쟁력에 관한 우려가 깊어지는 동안 중국 등 신흥경제가 부상했다. 2016년 대통령에 출마한 트럼프는 당시의 글로벌경제 상황과 이로 인해 변하고 있는 유권자층의 심리를 깊이 파고들었다. 그는 전통적인 공화당 정책 노선에서 벗어난 개방과 자유화 정책을 미국 제조업 몰락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미국의 느슨한 이민자정책에 맹공을 퍼붓고, 유럽 등 동맹국의 방위 분담을 강력하게 주장했으며, 우방국으로 여겨지는 무역 상대국에도 대규모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정책 대부분을 미국의 ‘안보’ 위기와 연계해 설명하고 추진했다.
2020년 바이든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의 대외경제정책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됐으나, 안보는 ‘경제 안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됐고 관세정책을 중심으로 한 보호주의 정책 대부분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확대됐다. 이민정책과 국경정책 역시 강화됐다. 2024년 대선에서 여론을 선도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큰 지지에 힘입어 승리했다. 트럼피즘이 생각보다 깊은 경제적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대선과 함께 상하원 모두를 장악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내세우는 자국 중심의 대외경제정책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 성장에 미국의 기여가 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미국의 대외경제정책이 항상 개방과 규범 중심의 통상질서를 지향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지한 채 우리나라 대외경제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문제 해결을 위해 대외적인 조정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주권 국가(nation-state)로서 유권자와 국내 정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미국 우선주의로 대표되는 사례를 살펴보자. 1920년대 후반 대공황으로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스무트-홀리법’으로 불리는 고율의 관세정책을 도입했다. 1960년대 중후반에는 복지정책 확대와 베트남전 장기화로 재정 상황이 악화됐고, 이와 동시에 서유럽과 일본의 성장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급증했다. 과도한 재정지출은 인플레이션을 촉발했으며, 증가하는 무역으로 중앙은행이 발행한 지폐를 금으로 교환하는 금태환 여력이 줄어들었다. 이에 닉슨 대통령은 1969년 동맹국들의 1차적인 방위는 각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선언했다. 또한 1971년 ‘닉슨 쇼크’로 불리는 달러 불태환을 선언했으며, 이어 대외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모든 수입품에 한시적으로 10%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의 자국 중심 정책은 1980년대 후반 다시 한번 나타난다. 1970년대 1, 2차 석유파동으로 미국은 고율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당시에도 무역수지 적자는 큰 이슈였는데, 레이건 행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적자가 동시에 늘어나면서 ‘쌍둥이 적자’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한 강력한 통화정책이 수행됐고, 이자율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이는 달러화 강세, 나아가 무역수지 적자 심화로 이어졌다. 무역수지 적자는 달러 가치 하락을 유도하기로 한 ‘플라자 합의’로 해결했다.
그리고 2025년 우리는 강력한 지지를 업고 재선된 트럼프 대통령을 맞았다. 글로벌 자국 중심주의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대외경제정책 방향을 생각해야 할까? 글로벌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에 대한 내성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K-연결성(connectivity) 확장’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무역수지 흑자에 집중하던 과거의 통상정책전략에서 벗어나 안보·산업·기술을 연계하고, 한국 스스로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역할을 모색하는 다차원적 접근을 의미한다.
핵심 기술 해외 투자 강화하면서 국내 투자도 유치,
양적 성장 지향 말고 글로벌 공급망 분절화에 대응을
먼저, 글로벌 물적·인적 자본 허브로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첨단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핵심 기술 분야의 해외 투자를 강화하고 국내 투자를 유치하는 양방향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1969년 닉슨 독트린 당시 한국이 국방력 강화와 중화학 공업 육성, 수출시장 다변화로 위기를 극복했던 교훈은 되새겨 볼 만하다. 핵심 공정의 거점뿐만 아니라 글로벌 핵심 인재를 양성하고 유치하는 허브가 돼야 한다.
둘째, 성숙해 가는 한국경제의 실정에 맞는 공급망 안정화 및 ‘K-통상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해야 한다. FTA 확대와 제조업 수출실적 중심인 과거의 양적 성장 지향에서 벗어나 글로벌 공급망 분절화에 대응해 다각화된 공급망 관리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안보적 관점에서 통상·산업·기술을 연계하는 고도화된 K-통상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에 걸맞게 상품수지뿐만 아니라 서비스수지, 본원소득수지를 아우르는 균형 잡힌 관리전략으로의 전환도 필요하다.
셋째, 신뢰받는 글로벌 플레이어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와의 협력수요도 높아진다. 한국경제의 위상은 과거와 다르다. 새로운 통상질서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지속적으로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유럽·일본 등과의 기술협력 및 제3국 진출 등에 대한 협력과 연대를 강화하고, 주요 개도국과는 높은 수준의 무역협정 체결과 협력 플랫폼 구축을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글로벌 사우스에 대해서는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비전을 가지고 개발협력, 생산 네트워크, 소비 네트워크에 이르는 장기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