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계의 전설이자 멀티코어 프로세서의 아버지라 불리는 짐 켈러는 지난해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AI가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를 맞이해 다음 세대에 무엇을 가르쳐야 하느냐는 질문에 “예술과 기초과학”이라고 대답했다. 초등학생에게 코딩교육을 강조하는 우리네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초등학생 코딩교육’과 궤를 같이하는 발상이 ‘산업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 배출’이다. 산업계의 이런 요구에 정부도 화답하면서 교육부는 대학을 마치 직업학교인 양 몰아붙여 왔다. 산업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는 달리 말하면 산업현장에서 즉시 퇴출당하기도 쉬운 인재다. 트렌드가 바뀌면 그런 인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인재는 비유적으로 말해 스마트폰에 즉시 깔아서 실행할 수 있는 앱과도 같다. 유행 지난 앱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경쟁하는 앱이 더 좋은 성능을 발휘하면 사용자는 미련 없이 기존의 앱을 지운다.
반면 그런 앱들을 작동시키는 스마트폰과 OS는 기계를 바꾸지 않는 이상 지속된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능의 다양한 앱을 필요에 따라 작동시킬 수 있다. 플랫폼의 위력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전자일까 후자일까. 지금은 어지간한 코딩은 AI가 할 수 있어서 빅테크의 적잖은 개발자들도 직장을 잃고 있는 시대다. 여기서 살아남는 인재는 특정한 지식이나 기능을 가진 20세기형 인재라기보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정보를 습득해 필요한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플랫폼형 인재다. 그래서 기초과학이 중요하다. 기초과학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지식 창출의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닌 ‘선도자(first mover)’를 한국의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어떻게?’다. 기초과학은 이 질문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기초과학의 특정 지식 자체가 아니라, 기초과학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방법론을 메타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기초과학의 결과물이 즉시 특정한 기술로 직접 전화되기도 한다. 통계물리학의 확산모형은 생성형 AI 알고리즘에 그대로 적용되기도 했다.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인 중첩과 얽힘은 양자컴퓨터를 작동시키는 원동력이다. 오래전에는 물리학자들이 핵분열 현상을 보고 폭탄을 머릿속에 떠올렸고, 불과 6여 년 만에 원자폭탄을 실전에 사용했다.
지식 창출 플랫폼, 기초과학 교육으로
선도자 되기 위한 기반 구축을
보다 넓게 생각해 보면 우리를 둘러싼 땅과 산, 바다, 대기, 동식물, 미생물 등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기초과학의 몫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한반도 주변의 모든 사항을 주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일종의 안보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초과학의 이런 ‘떡고물’에만 관심을 둔다. 그러나 기초과학의 진정한 가치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작동 방식, 방법론이다.
새 정부의 과학정책은 어떻게 펼쳐질까? 이재명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을 보면 “기술 패권의 시대, 첨단 과학기술로 세계를 주도하는 과학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라는 공약이 ‘경제:과학’ 항목에 들어가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서에도 연구개발(R&D) 관련 공약이 ‘경제·산업’ 항목에 포함됐다. 과학 또는 기초과학을 여전히 경제나 산업 발전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풍조는 민주당뿐만 아니라 역대 거의 모든 정권이 버리지 못한 구습이며, 헌법 조문에서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몇 년 전 개헌 논의가 일었을 때 일부 과학기술인 단체와 커뮤니티에서 해당 조항을 고치자는 의견이 나와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바로 헌법 제127조 1항으로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과학기술이 독자적인 가치와 존재 이유를 인정받지 못하고 경제발전을 위한 수단에 머물러 있다. 이런 태도는 ‘선도자’ 전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면 누군가는 항상 우리 경제 규모에, 우리 인구 규모에, 우리 국가 역량에 지금 이 정도가 딱 적당하지 않은가 반문하곤 한다. 만약 한국의 기초과학이 원래 세계 정상급이었고 많은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면 남들 하는 만큼, 지금까지 하던 만큼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한국이 반도체나 조선에서 세계적인 능력을 갖춘 것은 인구 비례나 경제 규모 대비를 훨씬 넘어선 압도적인 자원을 투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군대에 빗대서 생각해 보자. 인구 5천만의 나라에서 유럽 전체를 능가하는 기갑부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과연 인구나 경제 규모 대비로 적절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말도 안 되는 비대칭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바로 우리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생존전략을 수립할 때는 우리 인구나 경제 규모, 국가 역량 같은 ‘현재 우리의 처지’가 우선적인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러다 다 죽는다. 생존전략은 지금 우리의 처지와 무관하게 우리를 위협하는 주변 상황을 최우선적인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기초과학도 마찬가지다. 개도국이나 중진국 또는 선진국 초입국가로 만족하겠다면 굳이 선도자가 될 필요는 없다. 없는 형편에 기초과학은 사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인간 지성의 경계를 넓히는 임무를 수행하는 기초과학을 피해갈 수 없다.
과학은 경제 논리에 종속돼선 안 되고
그 존재 이유와 독자성 인정해야
새 정부에 당부한다면, 다른 어떤 정책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기초과학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다. 일단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 효과적인 정책은 어떻게든 따라오게 마련이다. 대학에서 죽어가는 관련 학과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고, 연구자들의 열악한 연구 환경이나 진로를 개선할 의지도 생길 것이며, 외국의 우수인력을 유치해 안정적으로 한국에 정착할 수 있게 하는 정책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주의 노선을 걷는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이 과학은 경제 논리에 종속되면 안 된다. 그 자체의 존재 이유와 독자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10조 원 안팎이 들어간 대형입자가속기나 우주망원경은 경제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물건들이다. 이들의 존재 이유는 역설적으로 ‘당장의 비실용성’이다. 부디 이재명 정부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실용주의 노선을 취하더라도 과학 분야에서만큼은 지극히 비실용적인 선택을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