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그리고 2010년대 들어 청년의 삶에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다. 2002년과 2016년 출산율 급감 사례는 우리 사회 청년의 삶 전반에 걸친 구조적 불안이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짐을 명확히 보여준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금 우리는 다양한 기대와 요구를 동시에 품고 있다. 새 정부 앞에 놓인 중대한 과제 중 하나는 저출생을 비롯한 인구 문제다. 다양한 정책적 해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먼저 우리 사회의 저출생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최근의 출산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의 ‘위기적 저출산’은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연간 출생아 수는 2001년 60만 명 선이 무너졌고 그 이듬해 50만 명 이하로 줄었다. 이는 당시 대학교 신입생 정원보다도 적은 숫자였다. 이러한 급락은 1997년 12월의 IMF 외환위기에서 비롯됐다. 당시에 시작된 구조조정, 대규모 정리해고, 비정규직 확산 등으로 청년층의 삶이 급격히 불안정해졌고 결혼과 출산이 미뤄졌다. 그로 인한 인구학적 여파가 2002년부터 가시화된 것이다.
이후 출생아 수는 등락을 반복하며 40만 명대를 유지했지만, 2015년 마지막 고점 이후 변동 없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8년 1명 아래로 떨어졌고 2023년에는 0.72명까지 하락했다. 지난해 출생아 수가 다소 늘었다고는 하지만 이를 반등세나 정책효과로 보기는 어렵다.
지방대 대규모 미달, 아르바이트 구인난 등
저출생 파장이 전 분야에서 현실화
합계출산율의 대하강이 시작된 2016년경에는 이전에는 없던 인구학적 현상들이 나타났다. 수도권으로의 청년 인구 순유입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신혼부부의 출산은 줄어들었으며, 결혼 후에도 자녀를 갖지 않는 무자녀 부부가 빠르게 증가했다. 한편 ‘헬조선’, ‘흙수저’와 같은 표현이 청년세대의 정서를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우리 사회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 시기부터 청년의 삶에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다. 2002년과 2016년의 출산율 급감 사례는 우리 사회 청년의 삶 전반에 걸친 구조적 불안이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졌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저출생 파장은 교육, 노동, 지역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2020년 대학 입시부터 지방대학에서 발생한 대규모 미달 사태는 적게 태어난 2002년생들이 대입 연령에 이르면서 일어난 일이다. 2022년부터는 아르바이트 구인난이 본격화하며 TV에는 ‘알바 플랫폼 광고’들이 넘쳐났는데, 20대 초반 인구가 감소하면서 생긴 인구 현상이다. 이제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시장에 본격 진입하게 되면, 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인력난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은 줄어든 청년들을 채우고자 더욱 많은 청년을 흡수하고, 지방의 청년인구 유출은 더 가팔라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방은 더욱 심각한 인구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다행히 2002년 이후 10년 이상 40만 명대 출생이 유지됐기에 당분간은 일정 부분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출생 급감기였던 2016년 이후 출생 코호트가 성인기로 진입하면 본격적인 충격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지방대 구조조정, 군 병력 부족에 따른 국방 개혁, 산업구조 개편, 교육체계 재설계 등 전방위적 대응이 불가피하다. 고령사회에서 노인복지 확대가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은 머지않아 현실의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흔히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더 많은 예산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반복된다. 한국의 GDP 대비 가족복지 지출은 2000년대 초반 OECD 평균의 5% 수준에 불과했지만, 저출산정책이 실행되면서 빠르게 증가해 2019년에는 OECD 평균의 약 66.7% 수준까지 다가갔다. 절대 수치는 여전히 낮지만, 지난 20년간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증가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출산율은 오히려 더 급격히 하락했다. 지금까지의 저출산정책은 경제학적 프레임에 기초하고 있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드는 총비용을 줄이면 출산율이 오를 것이라는 가정 아래 경제적 부담 절감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이 추진됐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지원 중심의 저출산정책이 성공할 수 없음을 확인했다.
저출산정책이 실패한 본질적 이유는 범정부적 정책 기조로 다뤄야 할 사회구조 문제에 단편적인 개별 지원사업들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회구조 개혁이라는 부담을 떠안는 대신 사업 나열식 접근을 선택했고, 부처는 예산 확대에 집중했으며, 전문가 집단은 자신들의 의도를 숨긴 채 정책에 특정한 이해를 관철하려 했다. 예컨대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이 포함돼 있는데, 과연 성폭력 예방 교육이 출산율을 올릴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청년의 생애 이행 가로막는 사회구조 장벽 제거하고
인구구조 변화로 닥칠 문제에 선제 대응해야
출산이 다시 늘어나려면 청년이 독립하고, 짝을 만나고, 가족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기르는 생애과정이 재개될 수 있도록 그것의 이행을 가로막는 사회구조적 장벽들을 제거해야 한다. 일자리의 질과 분배, 주거 비용, 사교육비 부담, 수도권 집중 현상 등 구조적 요인을 해결하거나 최소한 완화하지 않고서는 출산율 제고를 기대할 수 없다. 일자리는 새로 만들어 나눠야 하고, 집값은 청년의 근로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하며, 기회구조를 왜곡하는 학벌의 영향력이 줄어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은 더 많은 자원을 지방에 양보해야 하며, 지방에서도 청년들이 실질적인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유럽 등 해외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접근을 위해 출산율·사망률 등 인구 규모에 집중하는 인구정책(population policy) 대신 인구 규모와 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인구전략(demographic strategy) 설계에 집중한다.
앞으로 한국 사회의 인구전략은 세 가지 방향에서 추진돼야 한다. 첫째, 기존의 저출산정책을 확장하고 정교화해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둘째, 저출산을 유발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시민사회의 동의와 합의가 마련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인구 담론이 더 고도화돼야 한다. 셋째, 불가피하게 닥쳐올 인구 변화의 부정적 파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 세 가지 방향이 제대로 작동할수록 다음 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줄어들고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전환은 시민사회의 동의와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구 문제는 먼 훗날 갑자기 외부에서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결과이며 우리 모두가 그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인구정책에 전략적 지향을 담아내길 바라며 정치권 또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 주길 기대한다. 인구는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