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으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물리적인 거리를 두거나 도시를 봉쇄했던 팬데믹 동안 전 지구인은 고립됐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는 고립의 경험이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라거나 사적인 문제라는 그간의 인식에도 의문이 생겼다.
개인화된 사회적 위험과 고립
복지국가는 산업화 사회에서 실업이나 빈곤, 질병, 장애, 고령화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 1에서 등장한 징검다리 건너기를 생각해 보자. 참가자들은 매 단계 조심스럽게 유리판을 선택한다. 유리판이 깨지면 아래로 떨어진다. 여기에 안전망이 있다면, 유리판이 깨져도 떨어지는 사람들을 떠받쳐 다시 게임에 참여하도록 도울 수 있다.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은 사회적 위험에 처한 국민을 떠받쳐 보호하고 기본적인 삶의 수준을 보장하는 복지국가의 제도적 장치다.
전통적인 복지국가는 가족과 평생 고용을 담보하는 직장이라는 보호기제를 가정하고 있다. 그런데 산업화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를 담보하지 못한다. 농경사회에서는 확대가족이 인접 지역에 모여 혈연으로 끈끈히 묶인 공동체에서 안정적인 노동력을 공급하고 세대를 건너 노하우를 전승하는 것이 유리했다. 기계로 공산품을 생산하는 사회에서는 공장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도시로 이동하려면 핵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편리했다.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면서 고용은 유연해졌다.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던 가족과 직장의 역할이 축소되고 해체됐다.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면서 노동이 세분되고 그만큼 사람들의 역할도 다양해졌다. 개인은 각자 분업한 소임을 수행하며 상호 의존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대해 사회통합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전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정받지 못하게 되면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고립돼 결국 사회로부터 이탈한다. 사회적 위험을 오롯이 부담하던 개인은 소외되고 아노미(anomie)를 호소한다.
관계가 단절된, 사회적으로 고립된 개인은 타인과의 일상적 교류뿐만 아니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지지체계도 결핍될 수 있다.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댈 수 있는 친구나 친지가 있다고 응답한 국민의 비율로 OECD에서 삶의 질을 구성하는 지표 중 하나다. 최근 한국에서 친구나 친지와 같은 사적 지지체계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80.5%로 5명 중 4명꼴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사적 지지체계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98.2%로 100%에 가깝다. 핀란드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진 다른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적 지지 비율 역시 90%를 넘는다(<그림> 참고).
OECD에 따르면 1990년 GDP 대비 2.5%에 불과했던 한국의 사회지출이 2024년 기준 15.3%까지 증가해 OECD 평균 21.2%와의 차이가 5.9%p로 줄었지만, 한국의 자살률은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4.1명으로 여전히 OECD 가입국 중에서 가장 높다. 사회적 고립은 산업화를 통한 고도 발전의 부작용이자 개인화된 사회에 부정합적인 복지국가의 이면이다.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는 것은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거나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을 의미한다. 하지만 의미와 그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역할은 다소 다를 수 있다. 외로움은 관계의 양이나 질이 충분하지 않아 만족스럽지 않은 주관적 인식이다. 외로움이 부정적인 경험인 것은 사실이지만 일시적일 수있고 고립된 상태와는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정책 과제로 설정하기에는 불안정하다. 영국은 2018년 고독 문제를 전담하는 외로움부를 만들어 매년 실태를 파악하고 외로움을 공론화하는 캠페인을 지속하고 있다. 어떤 철학자들은 고독을 능동적인 의지로 선택해 자기와 만나는 시간이라고 했고, 대중 속에서 실존적 자아를 잃지 않는 방법이라고도 했다. 흩어진 개인을 문화와 예술을 통해 결속할 수 있지만, 외로움을 해소하거나 고독을 선택한 이들에게 결합하기를 강요할 수는 없다.
한편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단절돼 살아가기 어렵다. 사회적 역할이 분화된 삶의 현장에서 경제적 보상과 무관하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 고독사한 현장에도 특수청소인력이 필요하다. 2022년 11월 신촌의 한 모녀는 각종 공과금과 월세까지 연체된 채 복지위기 가구로 발굴됐지만, 이사 후 주소지를 신고하지 않은 원룸에서 고립된 채 사망했다. 고립된 상태에서 문제는 얽히고설켜 도움 요청을 포기하게끔 한다.
사회적 고립에 대응하는 정책 전략은 단절된 개인의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원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장기적 방향을 두면서 기존 복지국가의 역할을 재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고립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의 접점이 필요하다. 이때 생애주기와 지역의 핵심어를 고려해야 한다. 실패를 거듭한 청년은 고립되고 은둔한다. 고독사는 50~60대 중장년에 집중돼 있다. 자녀가 독립하고 배우자와 사별하는 등 홀로 사는 노인가구는 2023년 기준 200만을 넘겨 전체가구의 9.7%에 달한다. 도움을 요청하기로 용기 낸 이들을 적시에 돕기 위해서는 지원의 문턱을 낮춰야 하는데, 이때 또래로 묶어 접근하는 것이 주효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하고 은둔하던 20대 청년이 노인복지관에 도움을 요청하러 가기는 어렵다.
공공의 맞춤형 통합 지원뿐 아니라
민간·시민사회의 중재자·조력자 역할 필요
고립됐던 동안 얽히고설킨 문제를 해결해야 평범하게연결된 삶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복합적인 문제를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에 의한 종합 지원 패키지가 필수다. 시군구와 읍면동 단위의 희망복지지원단에서는 경제적·의료적·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해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통합사례 관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체납 및 채무 등 45종 위기 정보를 이용해 복지 사각지대도 발굴하고 있지만, 증가하는 복지 수요와 난도에 비해 전담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정보시스템이나 협의체 등 공공뿐만 아니라 민간과 시민사회가 실질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전문가와 공급자가 설계하고 제공하는 복지사업과 고립된 개인을 연결하는 중재자이자, 복합적 문제를 해결하는 조력자가 될 것이다.
사회적 고립에 대응하는 복지국가는 결국 누구도 재고립되지 않는 지속 가능한 복지공동체의 회복을 지향한다. 외로움, 고독, 사회적 고립에 공감하는, 한 철 유행이 지나서도 유지되는 공동체로 되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주체가 협력해 복합적 욕구에 대응할 수있도록 다부처 지원사업을 재구성하고, 정책 지원과 고립된 개인을 잇는 생애주기별 게이트웨이를 세심히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 역량이 있는 정책결정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