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특집
극단적 양극화에 만능치료제는 없다
임운택 한국사회학회장,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2025년 07월호
한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과 양극화는 이제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비상계엄 선언 후 갈라진 광장 한편에서는 부정선거를 앞세운 다양한 음모론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심지어는 2021년 미국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 습격을 떠오르게 하는 2025년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폭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폭력은 단순히 일회용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는다. 분노에 기반한 거침없는 행동주의는 이제 국가권력마저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 

비상계엄 사태로 증폭됐을 뿐이지 양극화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지 오래다. 양극화 주제는 민주주의 가치와 규범, 민주화 역사 부정, 사회복지의 가치, 외국인 혐오, 젠더 갈등, 성소수자 차별, 기후변화 등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에는 급진적 진보가 소수자로서 헌법의 경계를 오가는 사회운동을 주도했다면, 오늘날은 극우 성향 집단이 국가권력의 별다른 제재도 없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극단주의와 양극화가 확산되는 경로도 우려스럽다. 소수의 활동가는 가짜뉴스와 의도적으로 고안된 부정적 슬로건을 내세워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로 스스로를 위장하고 지지자들의 격한 감정을 자극하면서 그들의 표현상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다른 집단을 겨냥한다. 이들은 기존의 레거시 언론마저 불신하고, 유튜브 등으로 포퓰리즘적 선동을 일반화하며 공론장을 무력화한다. 우려되는 것은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소수 활동가의 음모론에 불과한 주장을 오히려 정치인들이 적극 활용하고 증폭한다는 점이다. 

나날이 급진화되고 있는 우익 집단을 보면 대체로 ‘우리와 그들’의 은유를 활용한다. 이는 단순히 집단의 위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층’, ‘외국인(특히 중국인)’, ‘사회복지 수혜자’, ‘성소수자’ 등 타인에 관한 증오를 조장하면서 자기 집단의 단결을 강화한다. ‘옳은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이라는 옵션도 강조한다. 여기서 자기 집단의 주체적 관점, 즉 자신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항상 대한민국을 위협에 빠트리게 한다는 외부와 경계선을 그으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간다. 
 

정치체제에서 소외감 느끼는 ‘보이지 않는 집단’,
온라인 커뮤니티의 증오·선동 유혹에 노출되기 쉬워


소수의 활동가보다 우려되는 점은 양극화가 단지 두 극단이 아닌 세 개의 집단으로 나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극단’, ‘보이지 않는 집단’ 그리고 ‘체제 안정주의자들’이다. 사회적 극단은 체제를 거부하고 엘리트를 불신하는 소위 분노하는 집단이다. 이들에 의해 선택된 일부 엘리트는 대체로 반규범적 인물들이다. 체제 안정주의자들은 경제성장과 신자유주의의 수혜자로 세계주의 및 다른 집단과의 타협에 열린 집단이다. 두 집단 모두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이상이 있지만 오직 열린 집단만이 대화 의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소위 청년세대를 포함한 보이지 않는 집단이다. 보이지 않는 집단의 일부는 전반적으로 사회경제적 상황에 잘 적응하고, 세대 갈등(규범, 자산 증식, 사회보험의 책임 등)을 문제로 인식하지만 사회에 잘 통합돼 있다고 느끼는 안정된 계층이다.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집단은 현재의 정치체제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거리는 두는 사람들이다. 양극화로 비치는 갈등 속에서 이들에게 사회 문제는 더 개인화되고 있다. 자신을 지켜주는 집단의 대표성이 약하기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공되는 증오와 선동 유혹에 노출되기 쉽고 정치적 불신은 커져만 간다.

정치적 양극화를 만들어내는 원인은 대체로 사회 갈등이다. 자본주의에서 그 갈등은 전통적으로 자본과 노동, 국가와 시장, 좌파와 우파 사이의 사회경제적 갈등선을 따라 전개됐다. 20세기 중반 이후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노사관계를 제도화하고 조세정책을 정비해 복지국가를 구축한 주류 정당이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라는 외부 변수가 주요하게 작용했지만, 큰 틀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따라갔다.

냉전 종식 이후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새로운 갈등선이 생겨났다. 신자유주의 시장문화는 새로운 문화적 갈등선을 만들어냈다. 신자유주의의 승자와 패자들이다. 승자들은 높은 인적·사회적 자본을 갖춘 신중산층으로, 국민국가를 낡은 유물로 여기고 개방적 다문화, 양성평등,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 성인지적 언어를 존중하며 기후정책을 중요시한다.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로서 강력한 국가를 옹호한다. 

이 두 이념화된 집단은 문화적 분열로 갈라져 있다. 두 집단 간의 문화적 분열은 규범적으로 더 이상 연결되기 어렵고 진실 대 거짓, 도덕 대 부도덕, 과학 대 반과학의 이분법으로 굳어졌다. 박탈감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에게 극단적 행동 이외에 유일한 발언권은 투표용지다. 민주주의 연구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이를 20세기 노동계급의 ‘종이돌(paper stone)’이라고 지칭했다.

극단적 양극화를 해결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만능치료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회복에는 시간, 관용, 합리적 반대가 필요하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공론장을 강조한 이유다. 그러나 오늘날 소셜미디어는 공론장의 기능을 현저하게 왜곡하고 있다. 한때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회로 이해됐던 것과는 달리 증오와 선동, 급진적 견해를 증폭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 파리저가 일찍이 경고했듯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에코 챔버(echo chamber; 밀폐된 시스템 안에서만 이뤄지는 의사소통으로 신념이 증폭·강화되는 현상)를 가속화하고 이용자들의 확증편향적 사고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새로운 공론장 문화 만드는 이성과 도덕성 회복이
양극화 해결에서 규제보다 큰 힘 발휘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AI에 대한 다양한 투자가 논의되고 있는데 AI와 윤리, AI와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에코 챔버에 대한 규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무책임한 증오 발언을 규제하는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이 서둘러 제정돼야 한다. 독일, 일본, 영국 등 주요 국가에서도 이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법률적 논의로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과학이 도덕을 합리화하리라는 칼 포퍼의 기대는 현실화하지 못했다. 따라서 규제보다 더 큰 힘은 소셜미디어에서 새로운 공론장 문화를 창출하는 이성과 도덕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조한 지도 십 년이 넘었다. 민주주의 교육에서 새로운 시도와 인내, 관용이 요구된다.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