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함께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 규제를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그간 스테이블코인은 대부분 디지털 자산 생태계 내에서 교환의 매개 수단으로서 사용됐으나, 최근 해외 주요국들이 단일 통화에 가치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지급 수단으로 규율하는 법제를 마련함에 따라 앞으로는 국가 간 송금이나 지급결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구체적인 내용과 수준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으며, 이에 따라 해당 국가 내 스테이블코인의 실제 활용도가 달라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규제체계에 따라 산업 활성화 여부 달라져···
EU, 유로화 연동된 코인 있지만 활성화는 아직
해외 주요국 중에서 가장 먼저 스테이블코인을 법제화한 곳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2022년 6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 「자금결제법」이 2023년 6월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단일 법정화폐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전자결제 수단’으로서 규율하고 있다. 「자금결제법」에 따르면 전자결제 수단의 발행자는 기존의 은행, 자금이동업자 및 신탁회사로 한정되며, 준비자산은 은행의 신탁에 보관되고 100% 은행 예금으로만 구성돼야 한다. 한편 일본 내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취급하려면 ‘전자결제 수단 등 거래업자’ 등록을 해야 하는데,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을 취급할 경우 채무액과 동일한 금액으로 매수할 것을 약정해야 하고 송금 1회당 이전 가능 금액은 100만 엔 이하로 한정된다.
이처럼 안정성을 중시한 엄격한 스테이블코인 규제로 일본 내 스테이블코인산업은 활발히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됐다. 2024년 홋코쿠은행이 은행 예금을 토큰화한 스테이블코인 토치카(Tochika)를 발행했으나 국내 결제용으로만 일부 사용됐다. 일본 3대 대형 은행이 주도하는 스테이블코인의 국경 간 송금 플랫폼 구축사업인 ‘프로젝트 팍스(Project Pax)’가 추진 중이기는 하나 본격적인 엔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아직도 발행되지 않은 상태다.
EU는 2023년 12월 「암호자산시장법(MiCA)」이 의회를 통과했고 2024년 6월부터 스테이블코인 규제가 시행됐다. 「암호자산시장법」은 자산준거토큰과 이머니토큰(EMT)을 구별하고, 단일 통화에 가치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인 EMT의 경우 기존 전자화폐 지침의 적용을 받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은행 등 신용기관이나 EU에서 인가받은 전자화폐 기관만이 EU 내에서 EMT를 발행할 수 있다.
한편 EU 역외에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이 역내에서 유통되려면 EU 인가를 받은 법인을 유럽 내에 설립하고 준비자산의 최소 60% 이상을 EU 내 은행에 예치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USDT의 EU 내 유통은 사실상 제한된 상태다. 유로화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으로 핀테크사인 스타시스가 발행한 EURS, 써클이 발행하는 EURC 등이 존재하고 「암호자산시장법」이 시행됐음에도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홍콩은 2024년 스테이블코인 발행 관련 규제 샌드박스를 거쳐 같은 해 12월 「2024년 결제체계 및 스테이블코인 조례안」이 의회에 상정됐고 올해 5월 최종 통과돼 8월 1일부터 시행된다. 홍콩 내에서 법정화폐 준거 스테이블코인(FRS)을 발행하는 자 또는 홍콩달러에 연동된 FRS를 해외에서 발행하는 자는 모두 홍콩금융관리국(HKMA)의 발행자 인가를 취득해야 하는데 홍콩 내 법인 설립, 최소 2,500만 홍콩달러(약 44억 원)의 납입자본 유지 등의 규제를 준수해야 한다. HKMA의 인가를 받지 못한 스테이블코인은 홍콩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나 판매가 금지된다. 2025년 법 시행 이전까지 홍콩에서는 공식적인 홍콩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홍콩 대형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가 홍콩텔레콤, 애니모카 브랜즈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홍콩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 중이다.
싱가포르는 규제 샌드박스 통해 2020년 최초 발행,
미국은 「지니어스법」 발효
싱가포르의 경우 2023년 8월 단일 통화 스테이블코인(SCS)에 대한 규제방안을 발표했고 현재 「지급서비스법(PSA)」 개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싱가포르달러 또는 G10 통화에 1:1로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지급서비스법」상 주요 지급기관(MPI)으로 인가를 받아야 하며, 준비자산 100% 보유 및 별도 금융기관 분리 보관, 월간 회계 감사보고, 5영업일 이내 상환 보장 등 엄격한 기준을 준수해야 ‘승인된 스테이블코인(MAS-regulated stablecoin)’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다른 자산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나 해외에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은 이번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며 이러한 비규제 스테이블코인이 싱가포르 내에서 사용되는 경우 기존 「지급서비스법」의 디지털 결제 토큰(DPT) 규제체계를 준수하면 되나 ‘승인된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명칭은 사용할 수 없다. 싱가포르에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의 대표 사례는 스트레이츠X가 발행한 XSGD인데, 2020년 싱가포르 통화청(MAS)의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최초 발행을 시작했고 이후 MPI 인가를 취득했다. 현재 알리페이 및 그랩과 제휴해 국내외 거래에서 지급결제에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그간 별도의 연방 스테이블코인 규제가 없어 각 주의 규제에 따라 송금업 라이선스 취득,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유통이 이뤄지고 있었다. 올해 1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행정명령으로 연방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조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지급용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하는 연방 차원의 법률인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2025년 6월 상원을 통과한 데 이어 7월 하원을 통과했다. 이 법은 달러에 가치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미국 내 발행뿐 아니라 해외에서 발행된 경우까지 규율 대상에 포함하고 있으며, 발행인 인가와 준비자산 보관에 대한 엄격한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미국 국채 수요 창출 및 달러 패권 유지를 도모할 것임을 명확히 밝혔으며, 미국 내에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세계 2위 스테이블코인 USDC의 발행사인 써클은 미국 각 주에 송금업 라이선스를 취득한 상태이며, 바이낸스 USD(BUSD)와 페이팔 USD(PYUSD)를 발행하는 뉴욕 신탁회사인 팍소스는 뉴욕주 금융서비스국(NYDFS)의 승인을 받아 월별 준비금 보고 및 회계 감사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 대형 은행인 JP모건은 2019년부터 자체 JPM 코인(JPM Coin)을 발행해 은행 간 B2B 국내·국제 결제에 활용하고 있다. 이는 고객 예치금을 담보로 한 디지털 예금토큰으로 실시간 채권결제 등 기업 간 정산에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스테이블코인 규제체계는 스테이블코인이 하나의 산업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와 금융감독 당국, 국정기획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 규제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명확하고 유연한 규제체계를 수립해 국내 스테이블코인산업이 활성화되는 기틀이 마련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