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역의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발행에 이어 지역화폐 사업에 대한 국가 지원을 의무화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는 등 ‘지역’을 살리는 정책 수단의 하나로 ‘화폐’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영국, EU, 일본 등 해외 지역화폐 모델 대다수가 공동체나 마을 단위의 좁은 공간적 범주에서 민간 주도로 유통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법령에 기반해 전국 범주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주도로 사업을 이끌어간다는 데 차이가 있다.
한국적 맥락에서 지역화폐 사업의 의의는 정부 재정으로 할인이나 할증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특정한 사용처(가맹점)로 돈이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업의 성패는 재정 투입의 지속 가능성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익이 사라지면 주민들은 사용이 불편한 지역화폐를 쓰는 대신 아무 제약이 없는 법정화폐를 선택할 것이다. 공동체 원리가 아닌 인센티브를 동력으로 하는 지역화폐 재정 지원은 양날의 검인 셈이다.
새 정부가 이 사업에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지역화폐 또는 지역사랑상품권이 대기업 유통점과 온라인 플랫폼에서 지역 가맹점으로의 매출 이전을 돕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영업, 소상공인이 처한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역화폐 사업에 부정적인 이들은 사용처가 제한돼 재정 승수효과가 낮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초점이 빗나간 평가다. 이 사업은 고사 직전에 놓인 소상공인 및 자영업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긴급 처방이고 따라서 매출 이전이 이뤄졌다면 정책 목표를 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충남 부여군에 따르면 지역화폐 ‘굿뜨래페이’ 유통을 통해 가맹점 매출이 20∼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화폐가 ‘세금으로 할인받는 상품권’으로 전락하지 않고 정책 목표에 따라 지역을 ‘살리는’ 돈이 되게 하려면 지자체가 사업 주체가 돼 지역 상황에 맞는 맞춤형 정책을 개발하고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중앙이 정한 기준에 지방이 무조건 따르도록 가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지자체가 가맹점 지정 기준, 할인율 조정 등 화폐 운영 원칙을 주체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현재 정부의 지원은 ‘매칭’ 방식이어서 살림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지자체는 지역화폐 발행 규모가 작아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정책 의지가 있어도 재정 상황이 나쁘면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사업에 뜻과 의지를 가진 지자체가 소외되지 않도록 지원 방식을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
고향사랑기부제 등 다른 정책과의 연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대표적인 방법이 기부금 답례품을 지역화폐로 제공하는 것이다. 기부자가 답례품으로 제공된 지역화폐를 들고 지역을 방문하면 음식점, 숙박시설 등 지역 주민들의 소득이 증가하고 지역경제가 활기를 띠게 된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공익형 직불금, 양육수당, 농민수당 등 현금성 지원 예산을 지역화폐로 발행해 유통량을 늘려나가야 한다. 유통량이 많을수록 화폐 승수효과가 커지기 때문이다.
지역화폐는 소비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한 수요 측면의 처방이다. 지역 내 화폐 선순환으로 부(가치)의 외부 유출을 막고, 주민간 신뢰를 형성해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목표다. 다만 지역화폐 정책이 지방소멸을 완화하는 촉매제로 기능할 수는 있어도 그자체로 소멸의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지역의 발전 잠재력을 깨울수 있는 공급 측면의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 지방소멸 완화와 균형발전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린 후 이를 달성하는 수단의 하나로 지역화폐를 배치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