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 사건을 분석하려면 공정·설비·인적 요인이 맞물린 공학적 분석이 선행돼야 하는데,
현장에서는 산업안전감독관의 전공·경력 편차, 순환보직 관행 등으로
전문성이 충분히 축적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지속돼
우리는 한국을 ‘산재 공화국’이라고 부르며 스스로를 비꼰다. 경제 강국, 문화 강국의 화려한 이미지와 달리 산업안전 수준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산업재해 사망률이 OECD 평균을 웃돌기 때문이다. 2024년 기준 노동자 1만 명당 산재 사고사망자 수는 0.39명으로, OECD 평균(0.29명)보다 많다. 올해 상반기 지표도 다르지 않았다. 2025년 1~2분기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287명으로 집계됐다. 이 지표로 한국 산업재해의 단면을 간추려 보면 이렇다.
소규모·건설·제조업, 하청·이주 노동자일수록
산재 사망사고에 노출되기 쉬워
첫째, ‘소규모·건설·제조업’ 편중이 뚜렷하다. 업종별로 보면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 가운데 건설업이 138명, 제조업이 67명으로 두 업종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규모별로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176명이 숨져 전체의 약 63%에 이른다. 대기업에서 발생한 사고에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면서 산재 사망사고의 절반 이상이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는다. 인력과 자본이 안정적인 대기업과 달리 중소 사업장은 단기간에 안전 투자를 충분히 집행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에 놓여 있다.
둘째,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고질적이다. 특히 하청노동자를 다수 고용하는 건설·제조업에서 두드러진다. 최근 3년간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 중 하청노동자 비율은 2022년 44.1%(284명), 2023년 43.5%(260명), 2024년 47.7%(281명)로, 소폭 감소 후 다시 상승했다. 산재 사망자 10명 중 4명은 하청노동자라는 뜻이다.
셋째, ‘위험의 이주화’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이주노동자 150만 명 시대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올 상반기(2025년 1~2분기)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내국인 249명, 외국인 38명으로 집계됐다. 통계에 충분히 포착되지 않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까지 고려하면 실제 이주노동자 산업재해율은 더 높을 수 있다.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떨쳐내고자 2022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안타깝게도 법 시행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산재 사망자 수가 유의미하게 줄었다고 보긴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형사처벌은 아주 결정적인 수단이 못 되는 것 같다”라며 경제적 제재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방향을 짚었다.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이 자본을 조달하고 시장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실질적 불이익을 체감하도록 ESG 평가나 정책자금을 받을 때 제한을 둬서 산업재해를 일회성 비용이 아니라 지속적인 가격으로 전환하자는 취지다.
이처럼 현행법의 실효성을 둘러싼 쟁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에 명시된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경영책임자”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비판이 있다. 일례로 노동자 23명이 사망한 아리셀 참사 재판에서 피고인 측은 실질적 경영책임자가 대표가 아닌 본부장(대표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면하려 했다. (그러나 2025년 9월 23일 법원은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 형량인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두고 갑론을박···
산재 예방 위한 노동자 작업중지권 보장도 주목
한편 「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을 벌써 꺼내 들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문제의 원인을 법의 결함보다 법원의 소극적 해석과 집행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원이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처벌하던 관행을 「중대재해처벌법」에 그대로 이입해 형량만 다소 높여 선고하는 수준에 머문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022년 1월 27일 법 시행 이후 2024년까지 약 3년간 누적된 재판 결과를 보면, 재판이 확정돼 유죄 선고된 15건 가운데 실형은 단 한 건(징역 1년)에 불과하다. 징역 1년은 「중대재해처벌법」이 규정하는 징역형의 최소치다.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되고 있어 법 취지에 맞는 양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물론 형사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현장 집행 역량도 필수다. 산업안전 사건을 분석하려면 공정·설비·인적 요인이 맞물린 공학적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산업안전감독관의 전공·경력 편차, 순환보직 관행 등으로 전문성이 충분히 축적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국내 산업안전감독관은 약 900명 수준이다. 이 중 절반은 공업직 산업안전감독관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순환근무하는 행정직 직렬의 공무원이다. 이에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의 사례를 참고해 산업안전을 독립적으로 다루는 행정기관을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으로 둬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제안도 있다. 실제로 ‘산업안전보건청’ 신설 논의가 문재인 정부 당시 떠올랐지만 아쉽게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보장 역시 사고 예방을 앞당기는 실용적 수단으로 주목받는다. 작업중지권이란 위험을 감지한 노동자가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할 권리다. 형사처벌은 재해가 발생하고 조건이 성립해야 집행되기 때문에 사후적이다. 의무를 이행해야 할 시점과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서 처벌받는 시점 사이의 간격이 길다. 반면 작업중지권의 경우 위험이 닥치면 노동자가 즉각 중지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 제2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는 지체 없이 관리감독자에 보고해야 하므로, 작업중지권이 마구잡이로 남용되는 상황은 차단돼 있다. 작업중지권이 적극 활용될수록 사업주는 반복되는 작업중지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선제적 개선에 나서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뿔뿔이 흩어진 중대재해 근절 대안을 한데 묶어 실행할 수완을 가진 주체는 결국 정부다. 7월 29일 정부는 산업재해를 주제로 한 국무회의 심층토론을 전 과정 생중계했다. 국무회의 토론이 실시간으로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을 방어하지 않고 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일”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실효성 있는 대책을 촉구하는 신호탄이 됐고, 9월 15일 ‘노동안전 종합대책’ 발표로 이어졌다. 산업재해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그것이 잠깐 스쳐 가는 여우비로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산재 공화국’과의 완전한 결별은 선언이 아닌 수치로 드러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