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일반적인 모델이 아니라 업종 특성을 반영한 산재 예방 모델을 중소사업장에 확산하고, 특히 노사 동수로 산재보험조합을 구성·운영하면서 노사 자율의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해 대응
1995년, 한국의 10만 명당 산재 사고사망자 수(fatal occupational injury)는 34.1명이었다. 당시엔 일하다가 사망하는 일이 빈번하고 흔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안타까운 수치다. 2024년에는 10만 명당 3.9명으로 줄어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의 산업안전 수준이 크게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독일, 일본, 영국 등 산업안전 선진국들의 10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가 1명 전후인 것과 비교하면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다.
한국의 사고사망자 비율이 높은 원인에 대해서는 그동안 다양한 진단이 있었다. 산업안전보건 관리체계와 관련해 제도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이해당사자인 노사의 산재 예방 노력은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는 문제, 2000년대 이후 원청의 재해율은 낮아진 반면 하도급 부문의 재해율은 높아진 현실, 아울러 고령근로자 및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산재 취약계층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으나 보호조치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 등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물론 산업안전 선진국들도 처음부터 근무 중 사고로 사망하는 근로자의 비율이 낮았던 것은 아니다. 독일의 경우 1994년 10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는 3.7명이었으나 2022년에는 0.7명(독일연방통계청)으로, 일본은 1995년 5.29명에서 2024년 1.35명(일본중앙노동재해방지협회)으로 크게 감소했다. 즉 현재 한국의 사고사망자 비율은 30년 전 독일과 일본의 중간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사고사망자 수 비율을 대폭 낮춘 산업안전 선진국의 산재 예방 대책에서 한국의 업무상 사고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한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산업안전보건청에서 사고원인 자체 조사하고
원인분석에 기반한 규제 시행
산재 사망사고 감소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제시한 대표적인 국가로 영국을 들 수 있다. 1969년 영국의 10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는 3.9명으로 최근의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이 수치가 더 줄어들지 않고 대형 산재사고들이 이어지자 정부는 안전보건 행정에 주목했다. 이에 1970~1972년 소위 ‘로벤스 위원회’의 활동을 바탕으로 「일터에서의 안전보건(Health and Safety at Work)」이라는 제목의 기념비적인 보고서가 작성된다. 보고서의 핵심은 지나치게 많은 규제가 체계적이지 못하고 복잡하며, 이에 따른 행정도 파편화됐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존의 ‘지시적 규제’에서 ‘자율 규제’로 산재 예방 철학의 방향 전환을 요구했고, 이를 기반으로 1974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데 이어 산업안전보건청(HSE)이 설립됐다.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 강조하고 있는 노사 자율적 ‘위험성평가(risk assessment)’ 방법론이 도입됐다.
이와 같은 1970년대 초 영국의 대응은 오늘날 한국에서 규제 중심의 산재 예방 대책으로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노사의 자율성을 축소하고 수동적으로 예방 대책이 수용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기서 말하는 자율은 ‘무규제’가 아니라 자율에 상응하는 책임을 노사가 함께 부담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은 독립적인 행정기관인 산업안전보건청에서 사고원인을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원인분석에 기반한 규제를 시행한다. 아울러 역량이 부족한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는 간소화된 지침을 제작해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독일의 경우에는 산재 예방을 위해 2007년 통합된 독일법정재해보험기구(DGVU)가 출범했다. DGVU의 특징은 기관 명칭과 달리 산재보상뿐만 아니라 예방과 감독업무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장 위험평가와 안전교육, 보험사와 연계한 예방사업(보험료 감면 인센티브 등)과 감독사업을 병행하므로 산재 예방 활동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막강하다. 산재 예방과 감독, 산재보상 행정이 분리된 한국의 제도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각 운영방식의 장단점이 있을 텐데, 독일 사례에서처럼 예방과 보상의 연계방안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측면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현재 한국에서는 중소사업장 산재 예방이 중요한데, 독일의 경우 업종별 산재보험 조직이 업종별로 특화된 산재 예방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반적인 모델이 아니라 업종 특성을 반영한 산재 예방 모델을 중소사업장에 확산하고, 특히 노사 동수로 산재보험조합을 구성·운영하면서 노사 자율의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해 대응한다는 점은 배울 만하다.
일본, 정부 주도의 산재 예방정책과
기업 차원의 자율적 안전관리 활동을 융합
마지막으로 일본의 사례에서는 정부 주도의 산재 예방정책과 기업 차원의 자율적 안전관리 활동의 융합이 눈에 띈다. 일본 정부는 5년마다 ‘노동재해방지계획’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체계적인 사고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령근로자와 정신건강, 폭염 대응 등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 이슈들에 대한 중기 대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거시적인 정책 방향은 정부가 주도하지만 기업과 노조, 전문기관의 자율적인 산재 예방 활동이 강조된다. 특히 근로자들의 자율적인 ‘안전 서클 활동’을 통한 위험요인 발굴과 개선 노력은 근로자 참여형 모델로 한국에서도 참고할 만하다. 아울러 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업종별 재해 예방 단체의 활동이 활발하다. 업종별 위험의 유형과 대응방안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한국에서도 업종별 협회나 단체 등을 통한 업종 차원의 산재 예방 노력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있고, 최근에는 한국의 대중문화 및 음식문화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산업안전 부문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이제 한국의 경제 및 문화 수준에 어울리는 산업안전 수준을 확보하기 위해, 즉 업무 중 사고로 사망하는 비율을 대폭 낮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범용 산업안전 대책보다는 업종·직종 특성에 맞는 산재 예방 대책과 노사의 자율과 책임을 통한 안전문화 형성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모든 근로자가 안전하게 일하다가 건강하게 은퇴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