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 산업안전감독관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근무복을 입고 패트롤카 앞에 선 얼굴은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엄숙해 보이지만, 무언가를 설명할 때는 친절하고 웃음기가 넘친다. 민간에서 17년간 산업안전 업무를 하다 공직으로 온 이 감독관은 이런 두 얼굴로 엄정한 법 집행과 성심을 다한 사후 지도를 해 2024년 ‘올해의 산업안전감독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산업안전감독관’은 생소한데 어떤 일을 하나.
근로감독관 업무는 근로자의 임금 체불이나 부당해고 등을 담당하는 일반 업무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지도·수사 업무로 나뉘는데, 그중 후자를 담당하는 인력을 산업안전감독관(이하 감독관)이라고 부른다. 감독관은 고용노동부 소속 ‘특별사법경찰관’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사업장 점검과 감독, 산업재해 발생 시 조사 진행, 고소·고발 사건 수사, 민원 응대 등의 업무를 한다. 최근에는 ‘안전한 일터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돼 관내 고위험 사업장 점검·감독에 집중하고 있다.
민간에서 공직으로 오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2005년 한미약품 계열사인 한미정밀화학에 입사했다. 본업무에 안전 관련 업무까지 함께 보다가 회사가 안전 부문을 확대해 부서를 신설하면서 부서장으로 발령받았다. 안전관리자로 오래 일하며 일정 수준을 넘어서니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더라. 건방진 말로 들리겠지만 회사에 감독 나오는 감독관들을 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관의 역량 강화가 강조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산업 분야가 다양하고 감독관 중엔 행정직으로 임용된 분도 많다 보니 실제 현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제한적이다. 이를테면 똑같은 타입의 프레스지만, 공부하면서 사진으로 본 것과 명판도 없고 기름에 찌든 현장의 프레스가 같은 건지 알아보기 힘들다. 분명 안전검사 대상인데도 “이게 프레스 맞냐”고 물으면 사업장에서는 다른 장비라고 이야기하기 일쑤다. 알면 사용중지 명령을 내릴 상황인데 모르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거다.
영세업체들이 산재에 많이 노출돼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긴 하지만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단순히 문제점만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해야 안전설비 등을 좀 더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갖출 수 있는지 알려주는 한편 과태료 부과와 사법조치는 확실하게 하니 효과가 있더라. 이제는 사업장에서 궁금한 점이 생겨도,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알아서 먼저 전화한다. 또 제조업 상시근로자 2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관리자 선임이나 위탁 의무가 없어 소홀하기 쉬운데, 한 영세업체에 한 달 회식비를 물어보니 250만 원 정도라더라. 안전관리 전문기관을 활용하면 월 2회 15만 원쯤 든다. 회식비를 아껴 기관 위탁비용으로 쓰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그런 설득 끝에 안전시설 투자를 이끌어냈다던데.
지난해 한 염료 공장에서 근로자 두 명이 반응기 내부 세척을 위해 들어갔다가 질식사할 뻔한 사고가 있었다. 점검 나가 보니 시정 건수 30여 개에 시정비용이 1억7천만 원이더라. 업체에서 즉시·단기·장기 조치로 나눠 시정 보고서를 가져왔기에 단기는 즉시로, 장기는 단기로 일정을 앞당겼다. 지금은 모든 조치가 완료됐다.
중대재해 사건을 겪으신 적도 있나.
입사 1년이 채 못 돼 첫 사망 사건을 맡았다. 감전사였다. 다행히 전기공학 전공이다 보니 사고원인을 쉽게 조사할 수 있었다. 도급업체가 수급업체 뒤에서 지휘한 정황을 파악했고 사망 근로자는 수급업체 소속이었기 때문에 도급업체, 수급업체 각 1명씩 피의자(실제 행위자)로 지목하고 수사에서 범죄사실 등의 자백을 받아내 법인까지 모두 처벌받게 했다. 입건 자체도 그렇고 피의자 2명을 입건한 것도 군산지청에서 최초였다.
감독한 업체 중에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면.
배터리에 있는 니켈·구리·망간 등을 분리하는 금속제조 사업장이 있다. 이런 곳들에서는 방전을 제대로 하지 않고 배터리를 분해·해체하다가 화재 및 폭발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게다가 이 회사는 5인에서 시작해 500명이 넘는 규모로 성장하면서 공장까지 크게 지어 건설 현장 또한 감독 대상이었다. 위험상황 신고 및 산업재해 발생으로 여기를 1년 동안 76번이나 갔다. 신고를 받고 간 적도 있지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다른 곳에 점검 나갈 때도 수시로 들렀다. 그렇게 하다 보니 안전의식이 높아져 요즘엔 어떻게 알았는지 사업장 직원들이 내가 강의를 하러 가는 곳마다 들으러 오더라(웃음).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건 뭘까.
업체와 감독관의 소통이다. 사법조치하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게 대수가 아니다. 뭘 잘못했는지 인지할 때까지 충분히 이해시키는 게 중요한데, 사업장들은 궁금한 것을 물어볼 데가 없다. 그래서 명함에 핸드폰 번호를 넣고 휴일에도 좋으니 전화하라고 한다. 물론 에너지와 시간이 드는 일이지만, 그 사람은 어렵게 전화했을 테니까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알려주고 사업장에 가서 무료로 교육을 해주기도 한다.
현장에서 힘들었던 점은?
영세업체일수록 감독관을 안내하는 것부터 꺼린다. 요즘은 패트롤카가 있어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우리가 누군지 설명하고 회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부터 쉽지 않을 때도 있다. 또 산업 현장을 오가는 일인 만큼 감독관도 다칠 수 있는데, 그런 고려가 없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제언 한말씀 부탁드린다.
감독관 직무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솔직히 교육 방향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내용이 너무 어렵거나 이론 위주여서 현장 업무와 연관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전기·화공·기계·건축·보건 각 분야별로 충분한 자격을 갖춘 민간 경력직 공무원 1명씩을 차출해 교육기획 및 사고조사 전담팀을 만들면 좋겠다. 아리셀 참사와 같은 큰 사고가 발생하면 전담팀이 직접 가서 사고조사도 하고 사업장 대상 무료 컨설팅도 담당하는 거다. 이때 감독관들이 사업장으로 와서 함께한다면 자연스레 감독관 교육도 될 것이다. 또 감독관들이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사법조치 및 과태료 부과에 대해 사업장에서 이의 신청을 하고 검찰에서 검사 지휘가 내려오는 경우인데, 이때 수준 높은 전담팀이 이의 신청에 대한 의견서까지 작성해 준다면 감독관들도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화학회사에서 오래 일했고, 화학공학 박사학위 및 15개의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런 경험과 공부를 바탕으로 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에 가서 화학사고를 줄이고 예방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 또 현재 각 청 및 집중 지청에만 설치돼 있는 광역중대재해수사과에 가서 소신껏 수사해 보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