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소비는 실질임금 반등과 에너지 가격 안정 덕분에 일정 수준 회복이 예상되지만
그 속도는 가계의 미래 소득 불확실성, 높은 임대료와 금리 부담 때문에 완만한 수준에 머물 전망
2024년 이래 계속 회복세를 보였던 유럽경제는 2026년에도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나 여전히 기초체력이 취약해 1%대 초반의 낮은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의한 정책 불확실성과 이로 인한 글로벌 수요 둔화, 높은 실질금리, 지정학 리스크, 재정 확장의 한계 등 여러 제약 요인이 겹치며 유럽 특유의 ‘길고 느린 회복’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녹색·디지털·AI 전환과 방위산업 확대에 따른 투자 증대 등이 긍정적 성장 요인으로 작용해 중기적으로 유럽경제는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완만한 회복세 이어갈 2026년,
성장 제약 최대 요인은 글로벌 교역 환경 악화
유럽의 2026년 성장률을 제약하는 가장 큰 요인은 글로벌 교역 환경의 악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보호무역주의 확산, 글로벌 공급망의 지속적인 불안정성, 미중 간 전략경쟁 심화는 독일과 중부유럽 등 교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회복을 제약하고 있다. 교역 증가율이 코로나19 이전의 장기 추세에 못 미치는 현실 속에서 수출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의존하고 있는 유럽 제조업의 생산성 정체가 더해지며 성장 전망이 낮아지고 있다.
양적 긴축의 효과 또한 2026년 경기를 누르는 요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동안의 발 빠른 확장적 통화정책에서 한발 물러서서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더라도 금융 안정과 임금 상승 압력 대비를 위해 신중한 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높은 실질금리 수준을 고착시키고 기업 투자와 주택 부문 투자를 억제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국가채무 부담이 큰 일부 국가들의 경우에는 재정 확장이 제한돼 내수 진작 여력이 크지 않다.
2026년 소비는 실질임금 반등과 에너지 가격 안정 덕분에 일정 수준 회복이 예상된다. 하지만 그 속도는 가계의 미래 소득 불확실성, 높은 임대료와 금리 부담 때문에 완만한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기업 투자는 녹색 전환 및 디지털 인프라 투자 확대, 반도체·배터리·방산 등 전략산업 중심으로 일부 회복될 수 있으나 본격적인 투자 확대로 이어지기에는 여전히 금리와 수요 조건이 부담스럽다.
유럽이 꾸준히 추진 중인 탈탄소 산업정책, 디지털 전환 투자, 방위비 증액은 2026년 경제의 바닥을 지지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공공투자와 민간투자의 선순환이 나타나려면 금융비용 안정과 산업정책의 예측 가능한 집행이 필수적인데 이러한 주변 환경이 우호적으로 바뀌기에는 이르다고 판단된다.
유럽이 특히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대외 부문도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다. 트럼프발 관세정책의 부정적 효과가 2026년에는 본격적으로 나타나 미국 내 인플레이션 현실화와 이에 따른 고금리 및 강달러는 과거 대비 미국 경기의 상대적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유럽의 수출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 증가도 전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2026년 전 세계 무역량 증가율이 0.5%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은 유럽경제의 강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유럽경제의 장기 리스크로 지적되는 생산성 둔화는 2026년에도 개선되기 어렵다. 디지털 인프라 확충과 기술 투자 증가에도 제조업에서의 혁신 확산 속도는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느리고 노동시장 경직성도 생산성 확대를 제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역시 유럽의 잠재성장률을 낮추고 있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는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노동 투입이 줄고 이로 인한 임금 상승 압력이 지속되는 구조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또한 극우 포퓰리스트 세력의 부상, 재정지출과 이민정책을 둘러싼 회원국 간 갈등 등 정치적 불확실성은 기업 투자 심리를 약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정 건전성이 성장 제약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관광 등 서비스 중심으로 2% 이상 성장 예상
유럽경제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경제는 2025년 0.1~0.2% 성장이 예상돼 2023년 이래 보여 온 역성장을 간신히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6년 독일경제는 자동차산업 등 제조업이 부진한 가운데 약 1% 내외의 회복세가 전망된다. 글로벌 교역 둔화와 자동차·기계 산업의 경쟁력 약화, 전기차, 공급망 재편, AI 기반 제조혁신에서 더딘 구조 전환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다만 방산 투자 확대가 반등 요인이 될 수 있다.
프랑스는 재정위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절박하게 요구되는 구조 개혁 또한 단기에 단행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소비 회복과 서비스업 중심의 내수 성장으로는 한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 건전성 문제와 높은 공공지출 구조가 성장을 제약하는 가운데 첨단 제조 분야와 디지털·그린 전환에 대한 산업정책이 그나마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탈리아도 프랑스와 상황이 비슷한데, 공공지출 축소 등 재정 압박과 높은 국가부채로 완만한 성장이 예상된다. EU의 회복·복원력 기금(RRF)은 일시적 성장 보완재가 되지만 지속 성장을 이끌기는 어렵다. 관광업과 일부 서비스산업의 회복이 2026년 성장의 대부분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스페인은 관광·의료·환경 등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2%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 다만 부동산 경기 둔화와 높은 실업률이 중장기 리스크로 남아 있다. 브렉시트의 심각한 후유증이 계속되는 영국은 교역 구조의 비효율성, 노동력의 상시적 부족, 금융·부동산 시장의 조정 등으로 1%대의 완만한 회복세가 예견된다.
유럽의 완만한 경기 회복은 한국의 대EU 수출 성장 전망이 상당히 제한적일 수 있음을 뜻한다. 특히 자동차, 기계, 철강, 화학 등 독일 및 북유럽 제조업의 영향을 많이 받는 품목은 회복 속도가 더딜 가능성이 크다. 반면 유럽의 녹색·디지털·방위 산업에 대한 야심 찬 투자 계획은 한국 기업에 전략적 기회가 될 수 있다. 배터리·수소·AI·모빌리티·그린에너지 등 미래 산업에서 유럽은 공급망 협력의 이상적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다변화 전략의 대상으로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 유럽은 미래 규제의 발원지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디지털 및 AI 규제, 지속 가능성 보고 등 규제 강화에 대응하려면 한국 기업의 ESG, 공급망 및 환경규제 대응능력 강화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