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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잦아진 전쟁이 ‘뉴노멀’ 된 중동··· 셈법 더욱 복잡해졌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2025년 12월호
복잡다단한 중동의 변화가 새삼 놀랄 일은 아니지만 판을 뒤엎는 변화는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기존의 강대국이 무너지고 새로운 강자가 갑자기 떠오르면 신앙처럼 받들던 신념을 버리기 쉽지 않다. 트럼프 2기의 미국이 트럼프 1기의 미국이 아닌 것처럼 오늘의 중동은 2023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이전의 중동이 아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으로 뒤바뀐 중동 정세, 
이란 영향력 감소하며 튀르키예가 그 빈자리 채워


올해 중동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운 대격변을 겪었다. 지난 6월 이스라엘과 이란의 12일간의 전면전도 놀라운데 이 전쟁에 미국이 참전해 이란 본토 핵시설에 벙커버스터 14발을 투하한 것은 파격의 끝판왕이었다. 한편 중동 정세의 판을 바꾼 출발점은 2023년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하며 시작된 가자 전쟁이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끈질긴 공격에 하마스는 심대한 타격을 입었고, 하마스를 지원한 시리아의 친이란 정권은 붕괴돼 친미 정권이 수립됐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대규모 반격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 모든 변화는 이란 중심의 ‘저항의 축’을 약화해 이란의 역량을 반감시켰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은 역내 장기 전쟁 시대를 불러왔다. 이 전쟁이 휴전 상태로 종결된 만큼 언제든 재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이란 전쟁의 더 큰 함의는 이란의 영향력 축소가 역내 힘의 공백 상태를 가져왔고 이 공백을 다른 국가가 채우려는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튀르키예와 걸프 국가 중 하나가 이란의 공백을 채울 가능성이 높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튀르키예다.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로 이란의 국가 역량은 반토막 났고 이란이 행사했던 영향력은 튀르키예가 물려받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튀르키예는 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로 거듭나고 있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정세 안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이란을 반토막 낸 이스라엘은 명실공히 역내에서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부상했다. 압도적 군사력에 고무된 이스라엘은 지난 9월 하마스 지도부를 암살하기 위해 그들이 체류하던 카타르의 수도 도하를 공습하는 등 선을 넘는 행동을 감행했다. 카타르는 휴전 중재국이자 미국의 비나토 동맹국으로, 역내에서 가장 큰 미 공군기지가 운용되는 전략 국가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사과와 함께 다시는 카타르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카타르는 한술 더 떠 미국과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밀어붙여 성사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도 달성하지 못한 성과를 카타르가 먼저 이뤄낸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카타르에 이어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강한 군사력은 오히려 독이 된 듯하다. 2023년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은 이후 이스라엘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명목으로 ‘예방전쟁’을 벌이며 역내 불안을 가중하고 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자 이란이 역내 패권국으로 부상한 것처럼 이란의 약화는 튀르키예를 새로운 강자로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 정적인 이란은 물론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튀르키예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모든 변화는 지난 2년 동안 일련의 사건이 줄줄이 이어진 결과다.



IMF, “중동 국가의 내년 평균 경제성장률 3.7%”···
데이터센터 등 AI 사업 집중하며 원전 건설도 고려


내년에도 중동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이란은 미국, 유럽과 핵 협상은 없다며 강경하게 버티고 있다. 미국이 제시한 조건, 즉 우라늄 농축 중단은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만약 핵 협상을 통한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란이 이스라엘과 미국 두 국가와 다시 무력 충돌을 할 가능성도 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조직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한편 레바논 정부는 연말까지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천명한 바 있다. 이스라엘 역시 헤즈볼라가 다시 과거처럼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준으로 무장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중동 정세 변동의 승자는 이스라엘이다. 역내 가장 위협적인 정적을 어느 정도 무력화하면서 군사력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든든한 지원도 재확인했다. 패자는 이란이다. 병력과 재래식 무기는 따라올 국가가 없는 강국이었지만 이스라엘의 공격에 방공망이 무너지면서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냈다. 어부지리로 득을 본 국가는 튀르키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란의 영향력이 약해진 틈을 타 53년 시리아 독재 정권 붕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하마스를 설득해 가자지구 휴전을 성사했다. 에르도안은 역내에서 과거 오스만제국의 영화를 회복하겠다는 ‘신오스만주의’ 정책을 추구하면서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에도 눈을 돌리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이스라엘은 주변의 어떤 위협도 용납하지 않는 강경한 안보정책을 확립했다. 상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능력을 갖추기 전에 이스라엘이 먼저 위험을 제거하려 하는 만큼 중동은 이전보다 전쟁 가능성이 높아졌다. 잦은 전쟁이 ‘뉴노멀’이 된 것이다. 

최근 2년 사이 긴박했던 중동의 2026년 경제 전망은 그리 나쁘지 않다. IMF는 중동 국가의 평균 경제성장률을 3.7%로 전망하고 있다. 걸프협력회의(GCC) 국가 중에서 카타르(5.6%)가 가장 높은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고 UAE는 5%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역내 경제성장 속도가 빨라지려면 경제 다각화와 투자유치가 관건이다. 걸프 국가는 오랫동안 석유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고자 제조업·관광·금융·물류 등 비석유산업 비중을 키워왔다. 또한 스마트시티·재생에너지·AI·항공우주 분야에서 해외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최근 걸프 국가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분야는 AI 사업으로 미국의 투자를 기다리고 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인 만큼 원전 건설도 고려 중이다. 분명 우리에게 기회인 것은 맞지만 걸프 국가가 한국에서 투자처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업계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너무 높은 수익률을 요구한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지속적인 유가 하락으로 걸프 국가가 추진 중인 메가 사업이 탄력을 얻지 못하면서 역내 경기가 조금은 침체한 듯하지만 유가가 오르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새로운 중동은 과거보다 셈법이 복잡하며 군사 충돌이 잦은 불안한 중동이다. 여전히 새로운 중동을 인정하기 싫겠지만 먼저 변화를 인정하자. 그래야만 변화가 보이고 따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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