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수출 호조는 AI 수요 확대라는 긍정적인 대외 여건에 크게 기대 있다. 앞으로도 수출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산업 포트폴리오 재편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2025년 한국 수출은 불안한 통상 환경에도 기록적인 성과를 달성했다. 연초에는 미국이 관세장벽을 높이면서 수출이 부진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으나 AI 열풍이 반도체에 대한 폭발적 수요로 이어지면서 2025년 수출은 오히려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이는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 강화된 결과라기보다는 폭발적인 AI 수요라는 외부 요인에 기인한 ‘착시 현상’에 가깝다. 또한 미 관세의 충격이 관세부과와 출하 시점 간 시차, 관세부과를 앞둔 기업들의 물량 밀어내기(조기선적, front-loading) 등으로 완충된 점도 수출 호조에 기여했다. 우리 기업들이 관세 인상분을 가격에 전가하기보다 마진 축소를 감수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한 고육책 역시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미 관세에 대한 완충작용의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2026년 반도체 ‘맑음’, 자동차·철강은 ‘흐림’…
품목별 K자 양극화가 뚜렷해질 전망
2026년 한국의 전체 수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우려 또한 크다. 반도체 부문이 전체 수출을 끌어올리겠지만 자동차, 철강 등 비반도체 부문의 수출은 관세 영향 누적과 현지생산 전환 등에 따라 부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2026년은 수출의 품목별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한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보다 구체적으로 관세를 중심으로 주요 품목의 수출 여건을 짚어보면, 산업별로 해외 수요와 관세에 대한 노출도 및 대응력이 달라 품목 간 온도 차는 더욱 극명해질 것으로 판단된다.
반도체 수출은 견조한 AI 서버 수요가 지속되는 가운데 관세도 부과되지 않고 있어 큰 폭의 개선세를 이어가고 있다. 만약 향후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주요 경쟁국인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을 적용받기로 합의해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상당 기간 수출 호조세가 이어질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구체적인 관세율과 부과 범위는 여전히 불확실해 관세율이 예상보다 높거나 부과 범위가 IT 기기 전반으로 확대된다면 하방 압력이 높아질 우려도 잠재돼 있다. 또한 중국 반도체 업체가 최근 최고 사양에 근접한 D램 제품을 선보이는 등 추격이 거세다.
자동차 수출(부품 포함)은 2025년 관세라는 악재를 만나 1~11월 중 대미 수출이 2024년 같은 기간보다 13% 감소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전체 자동차 수출은 유럽시장 내 전기차 수요 확대, 수출 지역 다변화 노력 등에 힘입어 다행히도 2024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25%였던 관세율이 한미 간 협상을 통해 2025년 11월부터 15%로 낮아진 점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중장기 전망은 녹록지 않다. 기업이 관세를 흡수할 여력이 줄어들어 부정적 영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관세 회피 등을 위해 국내 완성차 업체가 미국 현지생산 비중을 확대하면서 국내 생산이 위축될 우려도 있다. 이는 기업 차원에서는 합리적 선택이지만, 수출 감소라는 딜레마를 내포한다.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50% 수준의 고율 관세는 그렇지 않아도 중국과의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크게 훼손시켰다. 실제로 2025년 1~11월 중 철강 제품 수출은 미국을 중심으로 전년 대비 5% 줄었다. 이러한 부진은 2026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또한 철강·알루미늄의 함량이 높은 기계류도 상호 관세에 추가로 높은 함량과세를 적용받고 있어 부담이 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EU 역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본격 시행 외에도 무관세 쿼터 축소 및 고율 관세 부과로 철강에 대한 장벽을 높이려 하고 있어 하방 리스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산업별 양극화는 기업 규모별, 지역별, 소득 계층별 양극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반도체산업은 대기업·수도권·고임금 인력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양극화는 그 자체로 경제적 불평등이 커짐을 의미할 뿐 아니라 특정 부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의 취약성이 커지는 문제를 초래한다. 따라서 우리 경제는 단기적인 수출 호조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예상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치밀한 산업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반도체 초격차 유지, 철강 구조조정, 국내 생산 인센티브 강화 등
건강한 산업생태계 조성이 관건
첫째, 반도체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산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이뤄내야 한다. 지금은 반도체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기술 패권 경쟁은 날로 격화되고 있다. 압도적인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재와 전력 확보를 무엇보다 우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조선·방산·원전, K컬처에 기반한 식품·화장품 등 차세대 수출 동력을 육성해 과도한 반도체 의존을 완화해야 한다.
둘째, 석유화학·철강 등 전통 주력산업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한다. 중국발 공급과잉과 관세장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석유화학 및 철강산업은 범용 제품 위주의 사업 구조에서 탈피해 현재 진행 중인 고부가가치·스페셜티(specialty) 제품으로의 사업 재편을 완수해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셋째, 제조업 공동화 방지 및 피해 최소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관세 회피와 현지 시장 공략 필요성, 연간 200억 달러 한도의 대미 투자 등을 감안할 때 미국 내 현지생산 확대는 거스르기 힘든 흐름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내 생산 기반을 지키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동시에 해외로 진출하더라도 국내 모기업과의 연결고리를 이어가 국내 산업생태계가 유지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