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이 재평가되려면 자사주 매입 후 전량 소각한 메리츠금융지주 등 일부 모범적인 기업 사례처럼 이사회와 경영진이 자본비용에 대해 인식하고 이를 웃도는 자기자본이익률(ROE)를 달성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잉여 현금을 투자 활동에 사용할지 주주들에게 돌려줄지 결정해야 한다.
2025년은 한국 자본시장이 한 단계 도약한 해였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각종 법·제도가 도입됐고, 코스피는 역사상 최고점인 4천 포인트를 돌파하며 한국 증시는 2025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오른 시장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2025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증시는 장기간 전 세계에서 가장 수익률이 낮은 시장이었으며, 주된 원인으로는 낙후된 기업 거버넌스가 지목돼 왔다. 아시아기업거버넌스협회(ACGA)에 따르면 아시아 12개국 중 한국의 기업 거버넌스 순위는 오랜 기간 8~9위에 머물렀다.
2025년 이사충실의무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기업 거버넌스 개선 기대감으로 코스피 3천 선 도약
그러다 최근 들어 한국시장의 만성적 저평가와 낙후된 기업 거버넌스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만이 한계에 다다랐고, 주식 투자 인구가 1,400만 명 이상으로 크게 증가하며 정치권도 거버넌스 개혁에 많은 관심을 두게 됐다. 그 결과, 이사가 전체 주주를 위해 충실하게 일하고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이 「상법」에 명문화됐으며, 소수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의 집중투표제 의무화, 분리선출 감사위원 수 확대 등의 제도가 도입됐다. 여기에 더해 배당 성향이 높은 기업을 대상으로 배당소득 분리과세 제도가 시행됐으며, 자기주식 의무 소각, 의무 공개매수 제도 등의 도입이 추가로 논의되고 있다.
법 개정에 따른 기업 거버넌스 개선 기대감으로 2025년 초 2천 대 초반에 머물던 증시는 연중 3천 선까지 단숨에 도약했다. 주로 법 개정과 증시 재평가의 수혜가 예상되는 증권주나 지주회사가 오르면서 코스피 3천을 이끌었다. 그 후 증시는 파죽지세로 4천까지 올랐는데, 시장 참여자 다수는 코스피가 3천에서 4천으로 상승한 것을 거버넌스 개선보다는 AI와 반도체 붐에 힘입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일부 대형주의 주가 급등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이들 소수 종목을 빼면 오히려 전년 대비 주가가 하락한 종목도 많고 지수 상승의 체감 효과가 크지 않다.
2026년은 한국 증시가 체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인 기업 거버넌스 개혁이 이뤄지고, 기업의 이사회와 경영진이 스스로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변화한다면, 국내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 대거 투자하면서 증시의 구조적인 재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법 개정에 따라 소수주주가 주주권을 행사하기 더 좋아진 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이사회와 경영진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돼 온 가장 큰 원인인 후진적인 기업 거버넌스는 결국 경영진과 전체 주주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인데, 이는 기업의 낮은 자기자본이익률(ROE; Return on Equity)로 귀결된다. 기업의 지배주주와 경영진이 주주가치 중심의 경영 판단과 자본 배분을 하지 않아 기업 내에 과도하게 많은 현금이 쌓이는 등 비효율성이 커지면 ROE가 낮아진다. ROE가 자기자본비용(COE; Cost of Equity)보다도 낮아지면 주가는 순자산의 장부가나 청산가치보다도 저평가된다. 이것이 한국 기업들의 모습이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재평가되려면 자사주를 매입해 전량 소각한 메리츠금융지주 등 일부 모범적인 기업 사례처럼 이사회와 경영진이 자본비용을 인식하고 이를 웃도는 ROE를 달성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잉여 현금을 투자에 활용할지 주주들에게 돌려줄지 결정해야 한다. 효율적으로 집행된 자금은 기업의 성장을 이루는 원동력이 된다. 한국경제 저성장의 가장 큰 원인은 돈이 필요한 곳으로 흐르지 않고 기업에 쌓여 있는 소위 ‘동맥경화’와도 같은 현상에 있다.
따라서 ROE 개선을 통한 한국 증시의 구조적 재평가는 국가 경제의 성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코스피 5천 그리고 그 이상도 이런 방식으로 달성돼야 한다. 반면 대다수 기업이 ROE 중심 경영을 하지 않아도 AI 붐이나 모종의 이유로 일부 대형주의 주가가 오른다면 코스피 5천이 달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증시의 구조적인 재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AI 붐이 꺼지면 언제든지 주가는 제자리로 올 수 있다.
투자자 중심의 기업·자본시장 효율화가 혁신 기업 만든 미국,
일본은 자본비용 인식과 ROE 개선으로 저평가 해소
이미 코스피가 4천이기 때문에 2026년 코스피 5천 달성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미 일부 증권사들은
5천을 넘어서는 지수를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강조했듯 주가지수가 당장 5천을 달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달성하느냐다. 연기금과 행동주의 펀드 등 투자자를 중심으로 기업과 자본시장의 효율성이 개선되고 이에 따라 혁신 기업이 끊임없이 탄생하는 미국 증시에서 가장 많이 배워야겠지만, 불과 십수 년 전까지 한국과 더불어 아시아에서 기업 거버넌스가 가장 낙후된 것으로 평가됐으나 최근 커다란 개혁을 이뤄낸 일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와 거래소는 주가 상승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주가지수 목표치 대신 상장기업에 자본비용 인식과 ROE 개선을 통한 저평가 해소를 주문했다. 주가가 주당 순자산가치보다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 Price to Book Ratio) 1배 미만 기업은 거래소에 개선 계획을 제출하고 이를 이행해야 한다. 정부와 거래소 주도로 기관투자자의 의무(스튜어드십 코드)와 기업의 의무(기업 거버넌스 코드)를 도입하고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을 장려한 일본 증시는 최근 십여 년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폭의 지수 상승을 이뤄냈다.
바람직한 기업 거버넌스는 전체 주주와 경영진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ROE 중심의 경영이 필수다. 2026년 한국 증시는 얼마나 많은 기업의 이사회와 경영진이 자본비용과 ROE에 기초한 경영을 하는지에 따라 코스피 5천 그리고 그 이상을 달성할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다.
특히 2026년 3월에 열리는 상장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가 경영진의 태도 변화와 한국 증시의 구조적인 재평가 여부를 판단할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사의 전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도입한 「상법」 개정 이후 첫 번째로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인데, 기업의 경영진이 주주를 대하는 태도가 개선될지, 주주의 제안이 합리적이라면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는 모습이 나올지, 그에 따라 행동주의 펀드와 소수주주 연합 등이 어떠한 성취를 이루는지 지켜봐야 한다. 그 결과를 놓고 국내외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 거버넌스 개혁의 실효성에 대한 일차적 판단을 할 것이고, 그에 따라 2026년 한국 증시의 방향성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